경기도 시흥시에는 시민호민관이라는 독특한 옴부즈맨 제도가 있다. 옴부즈맨 제도라는 게 일종의 민원조사관인데, 시흥시는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달리 호민관이 상근하면서 독임제로 운영한다. 비상근에 합의제로 운영하는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 제도와는 권한·책임 수준이 비할 바가 아니다. 초대 시흥시 호민관을 지낸 임유씨는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다”고 말한다. 그가 호민관 시절 보고 듣고 만난 시민들의 얘기를 <시민은 억울하다>(한울)는 책으로 냈다. <매일노동뉴스>가 일부 내용을 발췌해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 두 차례 게재한다.<편집자>

“신고서에 닭 먹이를 ‘사료’라고 썼기 때문에 ‘사료화 시설’이랍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잘게 부수고 말리는 기계가 어떻게 사료를 만드는 생물학적 재활용시설에 해당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인근 도시 양계업자들은 모두 다 신고필증을 받았다는데 왜 우리 시만 신고필증을 내주지 않는 겁니까.”

시 공무원의 몽니 탓에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는 K씨가 1년에 걸친 ‘벽과의 싸움’을 시종일관 차분하게 풀어놓는다.

K씨 : 지난해 겨울, 천정부지로 치솟는 사룟값에 애를 태우다가 인근 식당에서 음식물 쓰레기를 가져와 닭 먹이로 쓸 생각으로 큰돈을 들여 재활용 기계(분쇄 및 건조)를 구입했습니다. 몇 해 전 똑같은 시설에 대해 신고필증이 교부된 전례도 있었고 기계를 만든 회사가 설치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장담하기에 신고필증이 나오지 않으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을 못 했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를 들며 차일피일 신고필증 교부를 미루던 담당 공무원이 최근 들어와서는 ‘사료화 시설’이기 때문에 아예 신고필증을 교부할 수 없다고 합니다. 아무리 설명해도 들으려 하지 않으니 어떡하면 좋겠습니까.

그는 차분했다. 항의는 설명에 가까웠다. 그래서였는지, 그의 얘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오히려 내가 더 화가 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로는 공무원의 거부 논거가 빈약해서였지만, 어떻게 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이나 교부를 미뤄 왔는지 바로 그 이유가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대개 민원인의 주장을 처음 접할 때는 반신반의하기 마련인데 이상하게 이번 경우는 민원인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모두 진실처럼 들렸다. 꼭 뭐에 홀린 듯 말이다. 진정성이 묻어나는 그의 태도 탓일 게다.

여하튼 의기투합의 단계까지 진입한 우리 두 사람은 한참을 공무원의 행태에 대해 찧고 까불어 댔다. 그런데 불현듯 ‘담당 공무원이야 그렇다 치고 저 사람은 도대체 왜 1년이 지나도록 가만히 있었던 거야.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하는 조금은 생뚱맞은 생각이 스치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니 사연이 더 궁금했다. 바로 물으려 했으나 어딘가 모르게 부자연스러운 구석이 보여 주저하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눈치가 보였는지 그가 먼저 입을 열었다. “기계를 도입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암 선고를 받았습니다. 치료를 병행하다 보니 자연 일 처리에 속도를 내지 못했습니다.” 의문이 다 풀리자 갑자기 급해졌다. 담당 공무원 얘기를 들어야 했다.

호민관 : 똑같은 ‘음식물 쓰레기 재활용 기계’를 도입했는데 A축산에는 허가를 내주면서 B축산은 허가를 내주지 않는 이유가 뭡니까. A와 B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공무원 : 차이가 있습니다. A는 돼지를 키우고 B는 닭을 키웁니다.

허, 이럴 때 숨 쉬라고 콧구멍이 두 개인가 싶었다. 이런 것도 농담이라고 하나 생각하니 순간 빈정이 확 상했다. 이내 정색을 하고 따져 물었다.

호민관 : 민원인이 도입하려고 하는 재활용 기계는 폐기물관리법상 폐기물처리시설에 해당하지 않는 것 같은데, 왜 주무관께서는 폐기물처리시설로 보셨나요?

공무원 : 폐기물처리시설 중 하나인 재활용시설에 생물학적 시설 항목이 있는데 하루 처리량이 100킬로그램 이상인 사료화 시설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민원인은 자신의 기계가 사료화 시설이고 하루 처리량이 2.1톤이라고 신고했거든요. 그러니 저로서는 폐기물처리시설로 볼 수밖에 없었던 겁니다.

호민관 : 단순히 분쇄하고 건조하는 것이 전부인데 생물학적 재활용시설로 보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주무관님 논리대로라면 기계적 재활용시설 중에서 20마력 미만의 분쇄 시설은 폐기물처리시설로 보지 않는데, 민원인 기계는 15마력이니 폐기물처리시설로 보지 않을 수도 있겠네요.

공무원 : 제가 사료화 시설로 본 게 아니라니까요. 지금이라도 분쇄 시설로 신고서를 고쳐 오면 신고필증을 발급해 줄 수 있습니다. 참 이상하네, 최종 의견이 아니라고 했는데 고쳐 오면 될 것을 왜 호민관한테까지 갔는지 몰라.

호민관 : 알겠습니다. 그런데 민원인은 “폐기물 업무를 맡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업무를 잘 모르니 함께 공부한다는 생각으로 검토하자는 공무원 말만 믿고 1년 반이 넘도록 온갖 서류를 제출했는데 인제 와서 느닷없이 불가 판정을 내렸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신고를 받아 주겠다고 하셨으니 더는 긴 얘기는 하지 않겠습니다만, 허가 업무는 공부하는 자리가 아니라는 점만은 분명히 아셨으면 합니다.

이 일이 있고 며칠이나 지났을까, 민원인이 내 방을 다시 찾았다. 연신 고맙다며 ‘신고필증’을 흔들어 보였다. “잘된 일이다”, “축하한다”, 몇 마디 덕담이 오갔지만 기분은 영 개운치 않았다. 허망하다고 할까, 아님 괘씸하다고 할까. 이렇게 쉽게 풀릴 일을 왜 저리 애간장을 태웠을까 생각하니 맥이 다 풀리고 화가 치밀었다. 어처구니없다는 말을 이럴 때 쓰는구나 싶었다.

“그건 그렇고, 사룟값이 줄면 좀 살림이 나아지십니까?” 아무리 계산해도 수지타산이 맞지 않아 보여 딴에는 걱정한답시고 한 말이었는데 제대로 빙충맞은 얘기가 돼 버렸다. 주워 담을 수도 없어 하릴없는 눈동자만 굴리고 있는데, 이윽고 그가 말문을 열었다.

“글쎄 말입니다. 차근차근 매출을 늘려야지요.”

순간 정적이 흐르고, 나는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말은 이미 비수가 돼 버렸으니, 제발 나의 오지랖이 그의 상처를 후벼 파지 않기를 바랄 뿐이었다.

[폐기물관리법]

동·식물성 잔재물, 음식물류 폐기물, 유기성 오니, 폐식용유, 왕겨 또는 쌀겨를 자신의 농경지의 퇴비나 자신의 가축의 먹이로 재활용하려는 자는 시설·장비를 갖추어 시도지사에게 신고하여야 한다.(제46조 및 동법 시행규칙 별표5의2 및 별표16)

‘폐기물처리시설을 설치하려는 자’는 환경부장관의 허가·승인·신고 등을 받아야 하지만 기계적 재활용시설 중 ‘동력 20마력 미만’은 신고 대상에서도 제외된다.(제2조 및 제29조 그리고 동법 시행령 별표3)

내 땅에 웬 물길

사례 1 : “당신 땅으로 개천이 흐른다고 상상해 보시오. 환장하지 않고 배기겠나.”

비 온 후의 밭두렁은 질퍽하기가 무른 밀가루 반죽 같았다. 모처럼 닦은 구두를 버리지 않을 요량으로 양복바지 밑단을 발목까지 접고 조심스레 걸음을 내디뎌 봤지만 헛수고였다. 미간의 짙은 주름살로 인해 괴팍해 보이기까지 한 초로의 농군이 저만치서 나를 반겼다. 그가 안내한 문제의 수로는 사나운 소리를 내며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최소한 어른 키 정도는 돼 보이는 높이에 폭은 어림잡아도 2미터는 족히 넘어 보였다. 밭 크기가 200평이라는데 수로가 수십 평은 잡아먹고 있었다. ‘나’라도 기막힐 일이었다.

민원인 : 제가 이 땅을 산 지 5년이 넘어가는데, 처음에는 저 수로가 나라 것인 줄 알았습니다. 근데 얼마 전 측량을 해 봤더니 제 땅이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시청을 방문해 “수로를 메우고 대체 수로를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지요. 아 근데, 자연스럽게 형성된 물길이라며 제 얘기는 귓등으로도 듣지 않는 겁니다. 아니, 내가 만든 수로도 아니고 비만 왔다 하면 범람하는 저 수로를 시가 아니면 누가 정비한단 말입니까.

호민관 : 지적도를 보니까 제가 걸어온 밭두렁 옆으로 국가 소유 구거가 있던데 왜 물길이 이쪽으로 났나요.

민원인 : 저도 자세히는 모릅니다만, 인근 주민들 얘기로는 제 밭 위로 논이 있었는데 그 논 주인이 몇 해 전 논을 밭으로 만들기 위해 복토를 했다고 합니다. 그 바람에 산에서 흘러온 물을 하천으로 이어 주던 농수로가 사라졌고 졸지에 제 밭에 수로가 생긴 거랍니다. 말씀하신 구거도 그 시점부터 사실상 폐천이 됐고요.

호민관 : 구거를 수로로 만들면 될 것 같은데 왜 시는 이를 거부하죠?

민원인 : 지금은 물길이 하천으로 바로 가로질러 가는데 구거를 이용하면 ‘ㄴ’ 자로 가야 하기 때문에 공사비가 엄청나게 많이 든다고 합디다. 웬만하면 수로를 이설해 주겠는데 아무 잘못도 없는 시가 그렇게 많은 돈은 들일 수 없다나 뭐라나요.

시의 책임이 어디까지인가가 쟁점인 듯 보였다. 논의 형질변경 과정이 적법했는지부터 살펴봐야 할 것 같았다. 설령 시의 잘못이 아니라고 해서 재난 예방과 구제 책임까지 없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건 그다음에 다투어도 될 일이었다.

호민관 : 논의 형질변경 허가서를 읽어 보니 “배수로 등은 설계도에 의거 견고하게 시공토록 하고 주변에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하라”라는 조건이 명시돼 있던데, 결국 이 조건이 이행되지 않아 민원인에게 피해가 갔으니 시가 관리 책임을 져야 하는 것 아닙니까.

공무원 : 사실 10년이 지난 일인지라 이번 사태의 직접적 원인을 밝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논을 밭으로 바꾸면서 붙였던 허가 조건을 이행하지 않아 그런 것인지, 아니면 다른 이유 때문인지 솔직히 누가 알겠습니까. 그렇다고 시가 나 몰라라 하겠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지금은 재난 예방적 관점에서 문제를 풀기 위해 노력 중에 있습니다.

호민관 : 그런데 지목상 구거에다 수로를 이설하는 것은 반대하셨다면서요.

공무원 : 그건 불가능합니다. 예산이 2억원이나 소요됩니다. 그 정도면 비슷한 수로 여러 곳을 정비할 수 있는데 어떻게 몇 십 미터밖에 되지 않는 수로를 옮기는 데 쓰겠습니까.

호민관 : 그럼 대체수단이라도 강구하셔야죠. 보상을 해 주든가, 아니면 관로를 지하에 묻고 수로를 메워 주든가 말입니다. 제가 알기로는 민원인에게 관로 매설 방식을 제안하신 적도 있다면서요.

공무원 : 사실 민원인이 맨 처음 민원을 제기했던 작년에 관로 매설 방식이 검토됐었는데, 그때는 민원인이 거부했습니다. 왜 내 땅에 관로를 묻느냐면서 말입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지금은 민원인이 이를 수용하더라도 저희가 매설해 드릴 수가 없습니다.

호민관 : 왜요? 예산도 받아 놨겠다, 민원인이 동의하면 지금이라도 매설할 수 있는 거 아닙니까?

공무원 : 기술적으로 불가능합니다. 전문가 말로는, 수로관을 매설하면 토사 유입으로 인해 관로가 막혀 제2의 물난리가 날 수 있다고 합니다. 현재로서는 개거식(양 벽면을 콘크리트로 타설해 만든 U자형 수로) 외에는 대안이 없습니다.

기술적 검토가 필요했다. 자문위원을 대동하고 현장을 재차 방문했다. 수로관을 묻으려면 매우 큰 사이즈를 묻어야 하는데, 그러면 매설한 관로가 표면으로 돌출할 수밖에 없어 매설 후 농지로 이용하겠다는 민원인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 역시도 개거만이 유일한 해답이라고 설명했다. 퇴로가 막혔다.

민원인 입장에서는 씨알도 안 먹힐 소리였다. 땅에 수로가 생긴 건 기막힌 일이지만 백번 양보해서 관로를 묻고 수로를 메워 주면 아쉬운 대로 농사를 지을 수 있겠다고 한 것인데, 수로 이설도 관로 매설도 아닌 그냥 수로만 ‘예쁘게’ 고쳐 주겠다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이런 걸 대안이라 내놓았으니 그가 동의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시의 난처한 입장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었다. 그렇지만 뭐랄까, 시민의 아픔을 해결할 생각이라기보다는 기계적 대응에 치중한다는 느낌만은 지울 수가 없었다. 어쩌겠는가. 이럴 땐 한계를 고백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는 법이다. 소송이 유일한 해결책이라 전하고 나는 빠지는 수밖에.

사례 2 : “왜 멀쩡한 나라 땅 놔두고 내 논을 하천으로 만드느냐고요.”

최씨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이곳은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 같다고 했다. 어김없이, 개발제한구역이 물매를 맞았다. 그러고 보니 그의 말마따나 어딘지 모를 음습한 기운이 마을 구석구석을 감싸고 있었다.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비정형의 논밭과 추레한 모습의 공장들만이 초겨울 한낮의 스산함을 더했다. 회색빛 벽돌과 검은색 차양막 그리고 낡은 녹색 지붕으로 이루어진 정말이지 공장 같지 않은 공장의 담벼락을 끼고 개천이 흐르고 있었다. 멀리뛰기로 건널 수 있을 정도의 좁은 폭이었으나 양 벽면이 콘크리트로 이뤄져서 그런지 꽤 넓어 보였다. 이럴 땐 개천이 아니라 하천이라 불러도 될 듯싶었다. 최 씨가 바로 그 개천을 가리켰다.

“우리가 지금 서 있는 이 둑하고 저 개천이 제 땅입니다.”

최씨 : 10년 전에 이 땅을 샀습니다. 우리가 서 있는 곳 바로 뒤로 쳐진 펜스 안쪽 땅도 그때 같이 산 것입니다. 보면 알겠지만, 제 땅 ○○번지 대부분이 배수로입니다. 언제인지 모르겠지만, 나라에서 정비도 한 모양입니다. 개인의 재산을 지켜 줘야 할 국가가 도리어 국민에게 피해를 준 형국인데, 이게 말이 되는 겁니까. 어떻게 남의 땅에다가 배수로를 만들 생각을 했는지 도대체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호민관 : 지적도를 보니까 펜스 안쪽 땅 중에는 국가(농림부) 소유 구거도 포함돼 있던데요. 점용허가는 받으셨나요?

그러면 안 되는 일이지만, 순간 나도 모르게 그의 아픈 곳을 찔렀다. 물길이 나 있는 걸 알고서 땅을 샀을 것이라는 의혹이 들면서부터 왠지 모르게 그의 한마디 한마디가 귀에 거슬렸다. 선입관…. 나의 질문은 삐딱해지고 있었다.

최씨 : 내 땅을 빼앗겼으니 나라 땅이라도 제가 이용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지금이라도 국가에서 보상을 해 주면 당장에라도 펜스를 옮길 겁니다.

호민관 : 보상이라면….

최씨 : 원래 구거에다가 배수로를 만들고 제 땅은 메워 주면 되는 거지요. 그게 힘들다면 구거와 제 땅을 맞바꿔 주든가요. 이도 저도 아니면, 제 땅을 수용하면 될 일입니다.

나도 사람인지라, 간혹 지나치게 탐욕스러운(이 또한 편견의 산물인 경우가 많지만) 사람들을 만나면 의욕을 잃곤 한다. 최씨의 경우가 그랬다. 측량을 했더니 본인 소유 땅으로 현황도로가 침범한 것 같으니 시가 이설해 주지 않으면 도로를 막겠다고 하질 않나, 땅의 대부분이 하천인데도 공장용지로 재산세를 부과했다며 바로잡아 달라고 하질 않나, 아무튼 그의 요구는 많았다. 사실관계나 파악한 후 비난이든 거절이든 하자는 생각에 마지못해 담당 공무원을 불렀다.

호민관 : 하천을 정비하면서 소유관계도 확인하지 않고 하나요? 소하천정비법을 보니까, 소하천구역으로 지정할 때는 고시는 기본이고 개인 소유자들의 토지나 건축물 등은 수용하게 돼 있던데 말입니다.

공무원 : 말씀이 맞습니다. 그런데 저희 과에서는 2009년에 그 지역을 하천구역으로 지정했습니다. 민원인 땅은 구역으로 지정도 되기 전에 누군가 정비를 했던 모양입니다. 당시 서류가 있으면 저도 속 시원히 정황을 설명해 드릴 수 있을 텐데 그러지 못해 죄송합니다. 다만 소유자의 동의를 받지 않고 공사를 할 수 있었겠느냐는 의문은 솔직히 듭니다.

호민관 : 어느 부서인지는 모르지만, 시가 공사한 것만은 분명한 것 같은데요. 만약 농어촌공사가 공사를 했다면 시에 등록했어야 하는데 확인해 보니 등록이 돼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농업용 배수로가 아니라 하천정비 차원에서 시가 공사를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얘깁니다.

공무원 : 예, 그럴 가능성이 제일 높아 보입니다.

호민관 : 어떤 이유에서건, 수용이나 사용 동의 없이 개인 땅을 수로로 만든 것은 잘못입니다. 늦었지만, 보상 절차를 밟든가 원상회복 조치를 해 줘야 할 것 같은데 어떻습니까?

말은 그렇게 했지만, 실제 시가 취할 수 있는 선택지가 그리 많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특히 최씨가 원하는 구거부지와의 교환은 법적으로 불가능했다. 교환의 전제는 구거가 더는 구거가 아니어야 하는데, 개천에 붙어 있는 구거까지 소하천구역으로 지정돼 있어 교환 대상인 ‘폐천부지’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결국 나의 주문은 수용(사용)과 이설 중에 선택하라는 최후통첩과 다를 바가 없었다. 물론 주문을 수용하지 않고 “소송하라”라고 버티면 그뿐이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번 경우는 시가 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달리 거부할 논거를 찾지 못했던 모양이다. 수용과 이설, 이제는 선택만 남게 됐다.

단상 그리고

지적도에 나와 있는 지목과 실상이 다를 때가 종종 있다. 지목은 도로인데 가 보면 밭이고, 논이 분명한데 실제는 도로로 쓰이는 경우가 그렇다. 구거라고 표시돼 있는데 막상 가 보면 물길은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분명 밭이어야 하는데 개천이 떡하니 자리 잡고 있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이러한 황당한 경우도 그 유형이 하나가 아니다. 대체부지가 있느냐 없느냐로 나뉜다는 얘기다. 명목과 실질이 뒤바뀌기는 했어도 인접한 곳에 대체가 가능한 부지(도로·구거 등)가 있으면 명목을 실질로 혹은 실질을 명목으로 바꾸면 문제가 해결되지만, 만약에 국가가 소유하고 있는 도로나 구거가 인근에 없는 경우라면 개인 사유지가 지목과 달리 도로나 구거로 사용되고 있는 사람들은 그야말로 만인과의 싸움에 내몰리게 된다. 전자의 경우는 국가라는 대화 상대라도 있지만, 후자의 경우는 인근 주민 전체와 전쟁을 치르는 것 말고는 다른 방도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버젓이 국가 소유 도로와 구거가 인접해 있는데도 현장을 가 보면 사유지를 도로와 구거로 쓰는 경우가 허다하다. 행정이 무신경했던 탓이리라. 바로 이 지점에서 행정에 대한 불만이 싹트는데 나를 찾는 고객(?)의 태반이 이 경우에 해당한다. 왜 나라 땅은 놔두고 내 땅을 쓰느냐는 것이다. 말인즉 맞다. 그런데 시의 얘기를 듣다 보면 무조건 비난할 수만은 또 없게 된다. “어디 한두 군데가 그래야지 바로잡든 할 것 아니냐”는 탄식에 고개가 끄덕여지기 때문이다. 예산, 늘 돈이 문제였다.

앞의 두 사례는, 민원인들이 땅을 살 때부터 이미 물길이 있었다는 점 때문에 이른바 ‘순수성’을 의심받았다. 개인의 이익 추구가 무슨 죄도 아니고 게다가 꼭 순수해야 할 이유도 없지만(순수한 경우는 또 어떤 것인지도 잘 모르겠지만) 최소한 물길의 존재가 땅 가격에 반영됐을 것이라는 점에서 나는 합리적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그런 땅만 골라 싼값에 사들인 뒤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하는 전문가의 모습을 그들에게서 봤던 모양이다. 바로 그 대목에서 나는 멈칫했다. 혹여나 나의 활약(?)으로 인해 선량한 시민들만 결과적인 피해(세금을 낭비하는)를 보는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앞섰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찌하랴. 나는 시민을 판단할 권한이 없는 사람인 걸. ‘그저, 설사, 말이 안 되는 일이라도, 억울하다면 억울한 것이고, 공익을 명백히 해하지 않는 한 나의 주문은 오로지 민원인만을 향해야 한다.’ 그리 믿고 또 그리 갈 뿐이었다.

[소하천법정비법]

소하천은 시장 등이 지정하며, 소하천을 지정하는 때에는 총리령으로 정하는 바에 따라 그 명칭과 구간을 고시하여야 한다.(제3조)

시장은 시행계획에 따라 소하천의 정비를 시행하기 위하여 필요하면 그 시행계획이 실시되는 구역에 있는 토지·건축물 또는 그 토지에 정착된 물건의 소유권이나 그 토지·건축물 또는 물건에 관한 소유권 외의 권리를 수용하거나 사용할 수 있으며, 수용 또는 사용에 관하여는 공익사업을 위한 토지 등의 취득 및 보상에 관한 법률을 준용한다. (제12조)

[농어촌정비법]

농지 보전이나 농업 생산에 이용되는 저수지·양수장·관정 등 지하수 이용시설, 배수장·취입보·용수로·배수로·유지·도로·방조제·제방 등과 같은 농업생산기반시설을 관리(개수·보수와 준설 포함)하는 자는(농업기반공사 등) 그가 관리하는 농업생산기반시설을 시장 등에게 등록하여야 한다.(제2조 및 제17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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