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동탄압, 민생파탄 박근혜 정권 퇴진을 위한 공동투쟁단이 25일 오전 서울 금천구 마리오아울렛 앞에서 율동을 추며 해고자 복직 촉구 집회를 마무리했다. 윤성희 기자
▲ 윤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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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는 '다시 일하는 기쁨'이라는 현수막이 곳곳에 걸렸다. 시간선택제 일자리와 중장년·여성일자리 박람회가 열렸다. 반면 건너편 정부서울청사 앞에는 일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서 있었다. 전국 각지에서 정리해고를 당한 노동자들이었다.

정리해고 철회와 정규직화를 위해 농성을 벌이고 있는 9개 노조(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콜트콜텍지회·기아차지부 사내하청분회·동양시멘트지부·마리오아울렛분회·사회보장정보원분회·세종호텔노조·아사히사내하청노조·하이텍알씨디코리아지회) 조합원 50여명은 지난 24일부터 이날까지 농성현장을 돌며 정리해고 철회와 노동탄압 저지·박근혜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공동행동을 벌였다.

첫날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공동투쟁 선포 기자회견에서 이인근 콜텍지회장은 "정리해고는 이제 긴박한 경영사정이 아닌 노동탄압의 도구로 쓰이고 있다"며 "이번 행동이 그에 맞선 공동투쟁을 여는 포문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농성 첫날은 못 잤다. 부러워서…"

공동투쟁단은 하이디스의 인사노무자문을 맡은 서울 종로구 김앤장법률사무소 앞에서 정리해고 철회를 촉구하는 선전전을 했다. 사무소 출입문에는 이미 셔터가 내려져 있었다. 노동자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어제 열심히 만들어 왔다"며 피켓을 늘어놓았다. 동양시멘트지회 조합원이 기념사진을 찍어 주기도 했다.

이지연(35)씨는 올해 3월 하이디스 공장폐쇄와 정리해고 과정에서 해고됐다. 하이디스는 이씨의 첫 직장이었다. 19살에 전남에서 올라와 첫 월급과 상여금을 받아 처음으로 머리염색을 하고 부모님 선물도 보냈던 기억이 선연하다. 하이디스의 전신인 현대전자 시절이었다.

"그때는 회사가 잘나갔어요. 계속 그럴 줄 알았는데…." 이씨가 쓰게 웃었다. 그 후 회사는 부도를 냈고, 이를 인수한 중국기업 비오이는 2006년 핵심기술을 유출한 뒤 철수했다. 2008년 정리해고가 단행됐고 600여명이 잘려 나갔다. 이씨는 "남은 직원들이 물량 감당하느라 화장실도 못 가고 방광염 걸려 가며 일했다"며 "그렇게 일군 회사에서, 그것도 1천억원 흑자를 낸 상황에 우리더러 나가라는 걸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고 반문했다.

배재형 전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 사망을 계기로 노사교섭이 열리고 있지만 회사측이 최근 제시한 안은 대만 이잉크사 현지 관계사로의 취업알선뿐이다. 김경수(47)씨는 "대만이나 중국까지 가서 연봉 1천만원 받고 일하라는데, 여기 연봉의 3분의 1만 받고 가족을 부양하라는 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사실상 복직을 포기하라는 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고노동자들은 올해 5월부터 대만 영사관이 있는 서울 중구 동화면세점 앞에서 노숙농성을 벌이고 있다. 여성 조합원들은 벌써 두툼한 겨울용 패딩을 껴입었다. 종로경찰서가 농성장에 천막 설치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씨는 "농성 첫날은 사람들이 부러워서 잠이 안 왔다"고 토로했다. "지나가는 사람들은 다 출근하거나 퇴근하는 걸 텐데, 우리도 얼마 전까지 그랬는데…." 자동차 소음보다 부러움이 더 컸다.

이지연씨는 출근하고 싶다는 말이 입버릇이 됐다. 그래도 농성장을 떠나지는 않겠다고 했다. 그는 "나도 당하기 전에는 이렇게 수많은 해고가 벌어질 줄 몰랐다"며 "지금 싸우는 사람들이 지치기 전에 많은 사람들이 알아 주고 문제를 함께 바꿔 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비정규직, 자꾸 빼앗기는 노동

동화면세점 앞에는 저녁식사인 시래기국밥이 준비돼 있었다. 하나씩 받아든 그릇에서 뜨거운 김이 올라와 쌀쌀한 밤공기를 녹였다. 음식을 준비한 협동조합 '다른 세상을 꿈꾸는 밥차, 밥통'측은 "정육점 사장님에게 정리해고 철회 투쟁하는 노동자들 먹일 거라고 했더니 특별히 좋은 고기로 주셨다"며 "다들 힘내시고 내일 아침에는 뜨끈한 황태해장국을 준비하겠다"고 사람들을 격려했다.

문화제에서는 노조들이 각각 준비한 공연들이 이어졌다. 노래 중간에 가사를 잊어버린 조합원들 덕에 웃음이 터졌다. 서로 간 사연과 싸우겠다는 다짐을 나누며 숙연해지기도 했다. 김경래 동양시멘트 부지부장은 "회사는 정규직화 판정을 받자마자 우리를 해고했다"며 "최근 투쟁지원금이 2천만원이나 모금되고 노조 만들기 전에는 몰랐던 각계 연대의 힘을 확인하면서 힘차게 싸워 가고 있다"고 말했다.

동양시멘트 사내하청노동자들은 올해 2월 고용노동부로부터 위장도급 판정을 받았지만 그 직후 집단해고를 당했다. 노동자들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제기했고, 9월부터는 동양시멘트를 인수한 서울 종로구 삼표 본사 앞에서 노숙농성을 하고 있다.

시멘트 원석 운반장비 기사인 이재형(43)씨도 그중 하나다. 그는 중소 시멘트회사 정규직이었으나 회사가 자금난에 문을 닫아 실직했다. 이후 동양시멘트 협력업체에 들어갔다. 자신이 촉탁직이라는 것을 입사 후 6개월이 지나서야 알았다. 이에 항의했다가 결국 11개월 만에 정리해고를 당했다. 그런 다음 온 곳이 동양시멘트 사내하청업체였다. 아이 넷을 키우고 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14년을 묵묵히 일했다. 그런데 자꾸 빼앗기기만 했다. 성과급이 슬그머니 사라지고, 한 끼당 고작 2천500원인 식대도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정규직들에게는 연간 72만원의 체력단련비가 보장됐다. 하지만 비정규직들의 임금인상 시기는 9월에서 12월로, 이듬해 1월로 자꾸만 미뤄졌다. 비정규직들이 노조를 만들고 직접고용을 촉구하는 배경이다.

삼표측은 이들과의 교섭에서 정규직화가 아닌 올해 정규직 퇴직자수만큼의 신규채용 응시자격을 주겠다고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 탈퇴와 근로자지위확인 소송 취하가 단서로 붙었다. 올해 3월 조합원 일부에게는 총 6억원의 손배·가압류까지 청구됐다. 실업급여는 대부분 이달 중으로 끊긴다. 이재형씨는 "할 수 있는 데까지 해 보고 싶다"고 했다. "한곳에 정착해 애들 키우면서 살고 싶었습니다. 뭔지도 모르고 노조를 했지만 우리가 잘못한 건 없지 않습니까. 다들 이런 일은 안 당해야 하잖아요."

외주화는 확대되고 노동권 보호 못 받아

마리오아울렛은 지난해 시설관리업무를 외주화하고 시설팀 직원들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회사는 이를 거부한 직원들에게 대기발령을 하고 임금을 깎은 뒤, 총무TFT에 배치해 막일을 맡겼다. 최대 100킬로그램까지 나가는 화분 800개를 맨손으로 옮기거나, 한여름에 건물 외벽을 도색하는 일이었다. 임상현(36)씨는 아직도 그때를 잊지 못한다.

"물류창고에서 화분을 날라와요. 그러면 저쪽에서 관리자들이 발로 자기 앞을 툭툭 칩니다. 화분을 거기 놓으라는 거죠."

버텼지만 끝내 정리해고를 당했다. 시설관리 업무가 점점 외주화되는 추세에서 용역업체를 전전하다 어렵사리 얻은 정규직 일자리였다. 입사한 지 1년 만에 이 같은 일이 벌어졌다. 해고자들은 올해 6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서 부당해고 판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복직하지 못하고 있다. 26일이면 중앙노동위원회의 재심 판정이 나온다. 임씨는 "중앙노동위 위원들이 '판정에서 이겨도 회사가 소송까지 갈 텐데 그냥 화해를 하라'고 하더라"며 "법으로 이겨도 노동자는 아무런 보호를 받지 못하고, 회사는 법을 어겨도 아무런 손해도 안 보는 법·제도가 너무 불공평하다"고 안타까워했다.

"먼저 해고된 사람 역할은 먼저 싸우는 것"

25일 오전 여의도 새누리당사에 도착한 공동투쟁단을 맞은 것은 20일째 단식 중인 해고자, 방종운 콜트지회장이었다. 새벽녘 쏟아진 빗물에 젖은 천막농성장에 앉은 그의 얼굴이 초췌했다. 그는 콜트·콜텍을 두고 "강성노조가 회사를 망하게 했다"고 발언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방 지회장도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지회는 2011년과 이달 콜트·콜텍 폐업을 노조 탓이라고 보도한 두 언론사에 소송을 제기해 정정보도문을 받아 냈다. 그러나 집권여당은 다르다. 지회 자문변호사도 "여당이 정치적 압력을 행사할 텐데 소송은 신중히 고려하라"고 했을 정도다.

그래도 방 지회장은 단식을 멈추지 않고 소송을 계속할 생각이다. 김무성 대표의 발언이 콜트·콜텍을 빌미로 새누리당 노동법 개정안 통과를 노린 것으로 판단하기 때문이다. 그는 "먼저 해고된 사람으로서 미래 노동자들까지 나락에 빠뜨리는 노동악법 문제를 알려 내고, 당장은 국정교과서에 이목이 쏠려 있다 해도 사람들이 이 문제에서 비껴가지 않도록 알리는 게 내 역할"이라고 말했다.

농성장 앞에서 새누리당 규탄집회를 하던 공동투쟁단이 방 지회장을 향해 격려의 박수를 쳤다. 그의 얼굴에 빙그레 미소가 퍼졌다.

한편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파이낸스센터 앞에서 비정규직노동자대회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3천여명의 비정규 노동자들이 모였다. 공동투쟁단도 대회에 참여해 기간제법·파견법 개악 중단을 비롯한 노동시장 구조개혁 폐기를 촉구했다.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해고자인 남기웅(33)씨는 "아사히글라스가 구미에 고용을 창출한다면서 면세혜택을 받고 돈을 벌어갔는데 비정규직들은 쉼 없이 잘려 나가기만 했다"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비정규직 문제에 손을 놓으면 우리 같은 일이 또 벌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남씨는 "복직하면 일단 연애부터 해 보고 싶다"고 웃었다. 불안 없는 노동과 평범한 일상에 대한 바람이 거기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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