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영전구 광주공장에서 집단 수은중독 사태가 발생했다. 2명의 노동자가 산업재해 신청을 하면서 알려진 사건은 현재 의심환자만 21명으로 늘어난 상황이다. 형광등을 제조했던 광주공장을 철거하는 과정에서 잔류수은에 노출된 이들이다. 철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수은중독을 앓고 있는데 이런 집단 중독 사건은 매우 드물다. 3명의 수은중독자가 산재를 승인받은 이래로 15년 만이다. 기체 흡입자까지 있어 피해자가 더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1988년 온도계 공장에서 수은 주입작업을 했던 15세 소년 문송면군이 수은중독으로 사망하면서 우리나라에서 산재 제도가 사실상 태동했는데, 수은 관리는 그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수은 관리 허점을 어떻게 보완할 수 있을까.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 금지 정교하게 짜자

▲ 은수미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미나마타병’으로 알려진 수은중독은 가장 대표적인 후진국 질병이다. 그럼에도 노동자들이 한꺼번에 수은에 중독된 사태가 15년 만에 다시 발생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유해하거나 위험한 작업의 경우 고용노동부 장관의 인가를 받아야만 도급을 줄 수 있다. 이에 따라 산업안전보건법 시행령도 도금작업과 수은·납·카드뮴 등 중금속을 제련하거나 가공하는 작업의 도급을 금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유해물질 취급 공정의 철거작업에 대해서는 별다른 규정이나 지침이 없다. 그 결과 작업 중 노동자가 재해를 입어도 공사를 발주한 원청이 아닌 하청업체가 법적 책임을 지는 경우가 많다. 남영전구 사례와 같이 원청이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제5항에 따라 하도급 노동자에 안전·보건에 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법률은 “유해·위험 화학물질 제조·사용 설비를 개조·분해하는 작업을 도급하는 경우”라고만 적시하고 있다. 남영전구가 생산 작업을 이미 3년 전에 중단했고, 해당 작업이 철거작업이었기 때문에 법 적용을 피해갈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우선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제5항에 철거작업을 명시해 남영전구 유사사례 발생을 방지하기 위해 법·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향후 산업안전보건법상 도급 금지 업무와 관련된 사업을 행한 작업장 철거작업에 대해서는 다단계 하도급을 줄 수 없도록 하는 방안도 모색해야 한다.

산재 신청 즉시 노동부 통보받아야

▲ 한정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2000년 폐기물처리업체에서 3명이 중독된 이후 15년 만에 수은에 집단 중독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남영전구는 형광등 생산을 중단하고서도 수은을 취급했던 생산설비를 장기간 방치했으며 수은 함유에 대한 어떠한 정보도 주지 않아서 이를 처리하는 5단계 하도급 전 과정에서 아무런 보호장비도 없이 작업이 이뤄졌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무차별적으로 수은에 노출된 것이다. 이 중 2명이 7월 산재신청을 했고 나머지 노동자들도 수은중독을 호소하고 있으나 노동부에서는 수은중독 사실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수은은 노출기준이 정해져 있는 화학물질이자 유해인자다. 남영전구는 산업안전보건법 28조에 따라 철거업무를 도급해서는 안 된다. 법상 의무가 지켜지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적합한 노동부의 조치가 있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번 사건의 경우처럼 집단 수은중독 사태가 산재 신청 2개월이 지나도록 노동부가 이를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은 문제다. 현재는 산재 승인이 나야만 노동부에 통보되는데, 업무상 질병의 경우 요양신청서가 접수되면 즉시 노동부에 통보돼 곧바로 필요한 조치가 취해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노동부 역할·책임 고민하는 계기 되길

▲ 유성규 공인노무사(노무법인 참터)

노동부는 대한민국 노동자들의 생명과 건강을 책임지는 유일한 정부 부처다. 그러나 이번 집단 수은중독 사건을 보고 있노라면, 과연 대한민국에 노동부가 존재하는지 의문스러울 따름이다. 이윤 극대화는 기업의 속성이다. 따라서 외부의 규제와 감독이 없다면 기업은 노동안전보건을 등한시하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산업안전보건법이 제정된 것이고 정부는 그 집행 권한을 노동부에 부여한 것이다.

노동부의 역할은 산재가 발생한 기업에 쫓아가 처벌하는 것에만 있지 않다. 또 다른 중요 역할은 기업을 지도·감독해 산재 발생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다. 그러나 유독물질인 수은을 다루는 기업에서조차 노동부는 자신의 역할을 다하지 않았다. 늘 그래 왔듯이 수많은 노동자들이 쓰러지고 난 뒤에 나타나 처벌만이 자신의 역할인 양 이야기한다.

물론 집단 수은중독을 야기한 기업은 마땅히 처벌돼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자신의 역할을 방기한 노동부 책임이 면책되는 것은 아니다. 도둑이 담벼락을 넘는데도 경찰이 이를 멀뚱멀뚱 보고 있었다면, 도둑에 대한 처벌과 별개로 그 경찰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

대한민국은 노동자들이 수은에 중독돼 쓰러지고 한 해 1천800명이 넘는 노동자가 산재로 사망하는 나라다. 노동부가 노동시장 구조개선에 쏟아붓는 노력의 10분의 1만이라도 노동안전보건에 나눈다면 현실은 훨씬 나아질 것이다. 이번 집단 수은중독 사고를 계기로 노동부가 자신의 역할과 책임이 무엇인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길 바란다.

남영전구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 필요

▲ 조기홍 한국노총 산업안전보건본부 실장

남영전구 광주공장 설비 철거작업에 투입된 노동자들이 집단으로 맹독성 물질인 수은에 노출돼 고통받고 있다. 정말이지 후진국에서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사태의 책임은 맹독인 수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남영전구에 있다. 남영전구는 설비철거 작업 전에 수은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노동자들이 수은에 노출되지 않도록 하청업체인 우리토건과 안전보건협의체를 구성해 안전보건 대책을 마련했어야 한다.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도 이번 사태에 책임이 있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도급사업 시의 안전보건·조치) 규정에는 철거·해체작업에 대한 규정이 빠져 있다. 근본적으로 유해위험물질에 노출될 수 있는 해체작업에 대한 법적인 규제를 마련하지 못했다. 따라서 산업안전보건법 제29조 도급시의 안전보건 조치에 해체·제거작업 등이 포함 될 수 있도록 범위를 확대하고 안전보건에 대한 원청기업의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또한 유해위험업무에 대해서는 도급을 금지해야 한다. 근로복지공단의 경우 수은이라는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노동자가 산재 신청을 했는데도 이를 노동부에 보고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직업병 인정과 관련한 역학조사 신청조차 하지 않은 것은 제도 운영상에서 큰 문제점을 드러냈다. 따라서 향후 유해화학물질로 인한 산재신청이 접수될 경우 이를 바로 노동부에 신고하고 역학조사가 신속히 진행될 수 있도록 제도개선이 필요하다. 법적인 미비와 행정상의 방치로 인해 더 이상 노동자가 고통을 받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또한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원청기업인 남영전구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정한 법집행이 이뤄져야 한다.

특수고용직 산재 적용, 위험업무 하도급 금지해야
 

▲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국장

피해자 21명 중 장비운전기사가 9명이다. 이들은 특수고용노동자여서 산재보상조차 받을 수 없다. 노동자냐 아니냐를 따져 가며 보호대상을 구분하는 전근대적인 체계로는 산재 사각지대는 계속 발생하게 될 것이다

현행 산업안전보건법은 수은 같은 화학물질 정보를 철거회사에 제공하는 것을 의무화하지 않고 있다. 사건을 발생시킨 이유 중 하나다. 수은중독 사건이 발생했지만 정부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사업주에게 산재사고 보고의무를 부여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재해 보고를 3일 이상 휴업한 경우만 하는 현행 산재 보고제도의 근본적 개선이 필요하다.

수은 취급 업무는 산업안전보건법상 유해위험업무 하도급 금지 대상에 포함돼 있다. 그러나 이름뿐이다. 노동부의 관리 감독이 없다. 특히 이번처럼 철거작업의 경우는 금지 대상에도 속하지 않는다. 과거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논의시 노동부는 위험 작업의 도급과 재하도급 금지를 추진했다. 하지만 한국경총 등의 반대로 도급인가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규제 수위를 낮췄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위험업무의 도급과 재하도급 금지를 전면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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