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지원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최근 삼성의 인력 구조조정이 이슈가 되고 있다. 10% 넘는 인력을 정리한다는 계획인데 숫자로 따지면 1만명에 가까울 것으로 보인다. 구조조정 대상은 본사만이 아니다. 상징적 수준의 생산만 계획하고 있는 광주공장(가전)이나 구미공장(휴대전화)에서도 이미 인력감축이 대대적으로 진행됐다. 삼성전자가 올해 9월까지 20조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고 있고, 다른 계열사들도 경영상황이 크게 안 좋은 게 아닌데도 이렇다.

KT는 이미 지난해와 재작년에 9천명에 가까운 노동자를 해고해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새 경영진의 전략에 따라 무리한 해고를 대규모로 하려다 보니, 그 과정에서 각종 인권침해가 이뤄졌다. 해양플랜트 사업으로 적자를 본 현대중공업은 올해 초 1천명 이상을 희망퇴직 형태로 해고했다. 대우조선해양과 삼성중공업도 대규모 구조조정을 예비하고 있다. 이 밖에 두산그룹·SK그룹·GS그룹이 인력감축을 진행 중이다. 정부 고용정책 때문에 대놓고 한 번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지 못할 뿐 매우 지속적으로 구조조정이 광범위하게 이뤄지고 있다.

재벌들이 구조조정에 나서는 건 당장 경영위기가 닥쳐서가 아니다. 삼성이야 두말할 나위 없고, 나머지 재벌도 일부 적자가 난 사업들이 있지만 그렇다고 대규모로 해고를 할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재벌들이 이렇게 구조조정을 하는 이유는 세계경제와 한국경제에 대한 전망 때문이다. 한국경제의 장기 저성장은 이미 기정사실화됐고, 세계경제 역시 중국의 성장률 저하와 유럽의 끝 모를 불황으로 침체가 꽤 오래 계속될 것으로 재벌들 대부분이 전망하고 있다. 선제적 구조조정을 해야 이윤을 확보할 수 있다고 재벌그룹 경영진들이 판단하고 있다는 얘기다.

경제 전망에 따른 선제적 구조조정은 개별기업 차원에서 이로울지 모르나 나라경제 차원에서는 재앙이다. 대기업과 그 하청회사들의 고용이 함께 줄어 노동자들의 소득이 감소하는 것은 물론, 대기업들의 전망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 소비를 줄이기 때문이다. 소득 자체가 감소하고, 소득 중 소비가 차지하는 비중도 감소한다. 그 결과 예상보다 내수가 더욱 침체해 기업들은 더 많은 인력을 줄이게 된다. 악순환이 점점 더 크게 반복된다.

정부는 보통 이런 상황을 미리 방지하기 위해 정부 주도 투자를 늘리거나 사회적 복지를 강화해 시민들의 소비수준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정부의 경제적 책임성을 높여 기업들의 구조조정 욕구를 줄이고, 시민 다수의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감소시켜 현재 소비를 늘리는 정책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오히려 반대로 일반해고 요건완화를 통해 대기업들이 더 손쉽게 해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국가 부채를 줄인다는 명분으로 정부의 사회복지 지출을 오히려 줄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지난해까지 강조하던 기업소득의 가계소득으로의 이전이나, 적극적 임금인상 같은 정책은 오히려 올해 필요한데 아예 사라져 버렸다. 가계소득 정체와 가계부채 증가속도가 위험한 상황임에도 부동산 시장을 활성화시키겠다며 전월세 폭등만 부추기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서는 우파 경제학자들마저 우려를 하고 있다.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갈팡질팡 우왕좌왕 경제정책으로 시민들의 분노가 커지자 정부는 느닷없이 국정교과서를 매개로 반공의제를 쟁점으로 만들었다. 현재 검정 국사교과서들이 좌익 편향이라는 비판이다. 국사교과서에서 주체사상을 가르친다, 김일성을 미화했다 등 유치한 내용들이지만 현재 상황으로 보면 이 반공 쟁점이 모든 사회의제를 덮고 내년 총선까지 갈 기세다.

생각해 보면 박근혜 정부의 가장 초지일관한 정책은 출범부터 지금까지 ‘반공’이긴 하다. 경제위기 문제도, 청년고용 문제도, 고령화 문제도 모두 반공이슈로 해결하며 지금까지 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 정도 되면 반공 경제학이라고 불러도 될 법하다.

경제학은 시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경제학이다. 좌파 강경 노조의 쇠파이프질로 청년고용 문제가 발생했고, 좌파 교과서로 역사를 배운 시민들이 반기업 정서를 가지고 있어 기업들이 어려워졌다는 것이니, 비꼬자면 박근혜 정부의 경제학은 "모든 문제는 용공세력으로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반공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논리를 담고 있다.

현 정세는 한국의 장기 저성장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이냐를 결정하는 게 핵심이다. 박근혜 정부는 노동자가 모든 희생을 짊어지도록 제도를 만들고 있고, 재벌들은 이미 선제적 구조조정이라는 전쟁을 시작했다. 국정교과서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라도 지금 우리가 집중할 건 재벌들의 선제적 구조조정을 중단시키고, 장기 저성장 시기를 재벌과 부자들이 책임지게 할 제도개선책이다.

노동자운동연구소 연구실장 (jwhan77@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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