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광주민중항쟁이 21년이나 지난 광주는, 여전히 법과 민주주의, 인권이 상실된 그런 땅이다. 도급계약을 위장한 불법 파견근로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 파업을 폭력으로 짓밟는 경찰, 그래서 하청노동자의 ‘설움’만 더하는 그 현장이 광주 하남공단에 위치한 캐리어(주)이다.

계절상품인 에어컨을 생산하는 캐리어는 계절적 요인과 인건비 절감 차원에서 최근 몇 년간 정규직 신규채용을 기피한 채 6개 업체와 도급계약을 맺고 하청노동자들을 계속 늘려왔다. 성수기에는 정규 생산사원 800여명과 엇비슷한 규모인 700여명의 하청노동자군(群)이 형성됐다. 그렇게 늘어난 하청노동자들이 지난 2월 노조를 만들고 4월16일부터 파업에 들어간 것은 정규직과 같은 일을 하면서도 5∼60% 낮은 한달 65∼80만원 가량 임금을 받고 비인격적인 차별대우를 받아온 것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표시였다. 하지만 파업이 한 달이 넘게 진행되는 과정에서 정규직과의 갈등과 경찰이 개입된 폭력행위가 크게 불거져 정작 사태를 촉발시켰던 각종 차별과 그 원인이 된 불법행위는 부각되고 있지 못한 상황이다. 그러나 사태 해결을 위해서라도 이를 냉정하게 진단하고 대책마련에 나설 필요가 있다.

도급형식의 파견근로, 최저임금법 위반 등 곳곳에 위법 소지

캐리어 사태에서 우선 지적돼야 할 것은 캐리어와 6개 하청업체간 도급계약이 형식에 불과할 뿐이고, 실제로는 불법파견근로가 행해져 왔다는 점이다.

캐리어(주)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들은 동일한 작업라인에 정규직 노동자와 여러 개의 하청업체 노동자들과 뒤섞여 배치된 뒤, 정규직 조반장으로부터 모든 작업지시는 물론 잔업, 특근 명령에서 근태관리까지 직접 받아왔다.

도급계약이라면 도급업체 관리자가 자기 회사 소속 노동자들에게 직접적인 작업지시나 출결·근태 등을 관리하고, 특정한 라인이나 기계를 맡아 일정한 물량 또는 정해진 기간동안 생산을 담당해야 한다. 이 때 원청업체가 작업지시나 근태관리를 담당할 경우 단순히 노무를 제공받는 파견근로계약이 성립되는데, 현행 ‘파견근로자보호등에관한법률’에서는 제조
업의 직접 생산공정에 대한 파견근로를 금지하고 있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계약에 해당된다.

더구나 주야간 근무조 교대시에도 동일한 업무를 정규직과 번갈아 맡는가 하면 소속 업체가 서로 다른 하청노동자들끼리 교대해 왔다. 이는 특정한 기계나 업무에 대해서도 이를 담당하는 하청업체가 구분되지 는 것은 물론, 정규직과 하청노동자간 구분조차 제대로 돼 있지 않다는 뜻으로 도급계약을 위장해 불법파견을 해 왔다는 점을 말해주고 있다.

불법행위는 이 뿐이 아니다. 하청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임금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캐리어사내하청노조(위원장 이경석·29)에 따르면, 지난해 9월1일부로 정부 고시 최저시급이 1,865원으로 인상됐음에도 하청노동자들의 지난해 9월분 임금은 기존 시급인 1,775원을 기준으로 지급됐다. 따라서 기본급여와 상여금, 잔업 20시간을 기준으로 했을 때 차액은 1인당 적어도 3만1,500원인데도 8개월여 지난 현재까지 한 푼도 지급되지 았다. 더구나 여성조합원들의 경우 아직도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시급 1,757.5원을 받고 있다. 따라서 지난해 9월부터 누락된 임금은 1인당 2∼30만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며, 성수기에 잔업 특근한 부분까지 적용한다면 그 액수는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또한 노조가 지난 4월12일 전남지방노동위원회의 조정종료 결정에 따라 조합원 90% 찬성으로 합법파업에 들어갔음에도 캐리어(주)는 새로운 파견업체를 통해 15∼20명씩 대체인력 투입을 시도해 이를 막는 하청노동자들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대체인력 투입은 여름을 앞두고 한창 에어컨을 생산해야 하는 4월 하청노조의 파업으로 생산공정률이 30%대로 떨어지자 생각해 낸 고육지책이었겠지만, 현행 노동조합및노동관계조정법상 쟁의행위로 중단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새로운 인력을 채용하거나 도급 또는 하도급 줄 수 없기 때문에 명백한 불법행위이다.

노동자 내 계층분화와 노동자 연대의 과제

캐리어 사태는 이처럼 폭력사태로 불거지기 전부터 제조업체에 만연된 도급계약을 위장한 불법파견근로 등 각종 불법의 씨앗을 안고 있었다. 이러한 작업조건들은 또한, 정규직들이 하청노동자들을 ‘일을 부려야 할 사람’ ‘나와는 신분이 다른 사람’으로 인식하게 하고 하청노동자들에 대한 차별도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노동자 내 계층분화를 더욱 촉발시키
기도 했다.

이같은 계층분화는 ‘고용안정’이라는 이해를 놓고 서로 대립을 하는 모습으로 변질됐고, 정규직 노조원들이 하청노동자들을 제지하고 나서는 직접적인 이유가 되기도 했다.

따라서 캐리어 사태의 핵심이기도 한 불법파견 등 각종 불법행위들을 근절하지 는 한 자본의 분할통제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며, 노동자들간에 계층분화는 더욱 심해져 제2, 제3의 캐리어사태를 촉발시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무차별적으로 확산되는 비정규직 채용과 이들에 대한 각종 차별에 맞서 정규직 노동자들이 함께 싸우지 는다면 자신 역시 하청노동자들과 같은 처지에 놓일 수밖에 없으며, 결국 다함께 역사의 패배자가 될 뿐이다.

이정희 워킹보이스 취재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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