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종남 대표노무사(노무법인 이유·임금노동정책연구소)

대상판결/대법원 2015.9.10. 선고 2015두41401 판결

1. 들어가며

2006년 9월11일 정부가 추진한 노사관계선진화 방안은 ‘노사정’ 합의를 통해 노동법 개악으로 이어졌다. 당시 노동유연화 전략에 따른 근로기준법 개정 내용1) 중 하나가 현행 근로기준법(근기법) 제27조 ‘해고사유 등의 서면통지’ 규정으로 2007년 7월1일 시행됐다. 이 규정이 시행되기 전에는 서면이나 구두 또는 전화 등으로도 해고가 가능했다.2) 정부는 사용자가 일시적인 감정으로 근로자를 해고하는 경향이 있는 만큼 서면통지 의무화를 통해 해고시 신중을 기하도록 해 근로조건 보호를 강화하겠다는 것을 법 개정 이유로 들었다. 근기법 제27조가 시행되면서 해고 ‘사유’를 서면으로 통지할 때 어느 정도 특정해야 하는지(사유의 특정 정도)3)와 해고통지를 명시적으로 ‘서면’이라 규정하고 있음에도 대상판례 사건과 같이 ‘이메일’을 이용해 해고통지를 한 경우에도 ‘서면에 의한 해고통지’로 인정할 수 있는지 여부가 문제돼 왔다.

2. 대상판례 검토

가. 서면통지의 방법에 대한 하급심 판례의 흐름

근기법 제27조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해고하려면 해고사유와 해고시기를 ‘서면’으로 통지해야 효력이 있다고 규정했으나 ‘서면’의 정의를 별도로 정하고 있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해 ‘이메일’이 ‘서면’에 해당하는지 여부에 대해 하급심 판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요 판례를 보면 “법조항상 ‘서면’이란 종이로 된 문서를 의미하고, 전자문서는 회사가 전자결재체계를 완비해 전자문서로 모든 업무의 기안·결재·시행 과정을 관리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 이외에는 위 법조항상 ‘서면’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해석하는 것이 문언 및 입법취지에 부합한다고 판단된다”(서울행정법원 2010.6.18 선고 2010구합11269판결)고 하거나, “근로자와 사용자가 근로자의 해외연수 기간 중 이메일로 교신해 왔고,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해고사실을 기재한 이메일만 발송한 것이 아니라 해고의 사유가 담긴 ‘인사위원회 의결통보서’도 첨부해 발송했으며 근로자가 종전과 같이 이를 정상적으로 수신해 확인했다면 위 ‘이메일’에 의한 해고통지는 ‘서면’에 의한 통지로서 유효하다”(서울중앙지방법원 2009.09.11. 선고 2008가합42794 판결)고 판시했다.

위 판례는 근기법 제27조의 ‘서면’이라는 문언의 의미를 고려해 ‘종이문서’에 의한 해고통지를 원칙으로 보면서 사업장의 업무체계를 고려해 전자문서를 통한 해고통지가 가능하다거나, 단순히 이메일에 해고사유를 기재한 것이 아니라 첨부문서를 이메일에 첨부해 발송한 것에 대한 유효성을 긍정한 것이었다.

나. 대상판례 검토

하지만 대상판례는 근기법 제27조의 ‘서면’이란 일정한 내용을 적은 문서를 의미하고 이메일 등 전자문서와는 구별됨을 전제로 하면서, ‘전자문서’에 대해 서면에 의한 해고통지의 일정한 유효 요건을 밝히고 있다.

즉 대법원은 전자문서 및 전자거래 기본법(전자문서법)을 원용해 전자문서의 효력을 인정하는데(전자문서법 제4조제1항), 출력이 즉시 가능한 상태의 전자문서는 사실상 종이형태의 서면과 다를 바 없고 저장과 보관에 있어서 지속성이나 정확성이 더 보장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전자문서’를 통해 서면에 의한 해고통지의 역할과 기능을 충분히 수행하고 있는 경우에 그 유효성을 인정했다. 우선 ‘이메일의 형식과 작성 경위 등에 비추어 사용자의 해고 의사를 명확하게 확인할 수 있고 이메일에 해고사유와 해고시기에 관한 내용이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으며 해고에 적절히 대응하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어야’ 하며, ‘근로자가 이메일을 수신하는 등으로 그 내용을 알고 있는 이상’, 이메일에 의한 해고 통지도 근기법 제27조의 ‘입법취지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인 사안에 따라’ 서면에 의한 해고통지로서 유효하다고 했다. 대상판례 사건에 있어서는 “참가인이 원고에게 이메일로 보낸 ‘징계결과통보서’에는 해고사유와 시기가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기재돼 있고, 원고가 이에 적절히 대응할 기회를 부여받은 이상 근기법 제27조가 정한 서면에 해당한다”고 설시하고 있다. 그렇다고 위 대상판례에 비추어 이메일에 의한 해고통지가 곧바로 유효한 것이 아니며, 이메일에 해고사유와 해고시기가 구체적으로 기재돼 있지 않고 이러한 내용을 근로자가 이메일을 수신하지 못한 상황이라면 서면에 의한 해고통지로 볼 수 없는 등 개별 사안에 따라 구체적이고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대상판례를 통해 근기법 제27조의 입법취지를 다시 읽어야 한다. 분명 근기법 제27조는 민법상 의사표시 효력을 노동법 영역에서 제한한 것으로 사용자의 해고 남발을 방지하는 즉 ‘서면’이라는 종이문서로 해고통지를 해야 ‘효력’이 발생된다고 해서 사용자에게 좀 더 까다로운 해고통지 방법을 강제하고 ‘노동’을 보호하려는 것이 그나마 입법취지에 가까운 해석일 것이다. 시대가 변한다고 해서 노동의 보호가치를 후퇴시킬 수는 없는 노릇인데도, 이번 대법원 판결에 대해 전자통신장비 발달 등에 따른 기업 현실을 반영한 진일보한 판결이라고 평가하는 입장도 있을 수 있다. 판례를 산업발달의 편리가 사용자의 사적이익 추구의 편의를 위한 것이라고 해석한다면 이는 첨단화된 자본에 편승한 반노동자적인 위험한 해석론일 것이다. 무릇 근기법상 ‘서면’으로 강제하고 있는 제 규정들4)들을 ‘전자문서’로도 가능하다고 본다면 근기법의 제정 목적이 상실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3. 나가며

최근 노사정은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명분으로 대타협을 이뤘다며 노동법 개악을 시도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전체 임금노동자를 대변할 수 있는 노동자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다. 이 나라 미조직 노동자들의 권리를 정부와 교섭하고 결정할 수 있는 계급적 조직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대상판례 사건은 미조직 노동자에 대한 해고 사건이다. 이메일이든 서면이든 사용자에게 해고의 자유를 인정하는 인식과 사고가 사법부가 말하는 인사권 남용이라는 법리에 작동되는 원리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노동법에 대항할 수 있는 조직체는 노동조합으로, 단체협약이라는 새로운 규범을 통해 사용자의 해고 자유를 제한하고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미조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을 결성해야 하는 이유이며 노동자가 투쟁해야 하는 목적이기도 하다.
 

각주
1) 근로기준법상 부당해고시 벌칙 조항 삭제와 이행강제금을 도입, 경영상 해고시 사전통보기간 60일에서 50일로 단축, 근로계약 체결시 근로조건의 서면명시 등이다.

2) 근로기준법상 해고의 법적 성질은 상대방이 있는 단독행위라는 점에서 그 의사표시가 상대방에게 도달하는 때 효력이 발생하고, 그 의사표시 방법은 서면·구두 또는 전화 등 어떠한 방법으로 알려도 상관없다(대법원 1997.9.26. 선고 97누1600판결).

3) 이에 대해서는 “사용자가 해고사유 등을 서면으로 통지할 때는 근로자의 처지에서 해고의 사유가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어야 하고, 특히 징계해고의 경우에는 해고의 실질적 사유가 되는 구체적 사실 또는 비위내용을 기재해야 하며 징계대상자가 위반한 단체협약이나 취업규칙 조문만 나열하는 것으로는 충분하다고 볼 수 없다”고 한 대법원 판결로 해고사유의 특정 정도와 기준을 마련했다(대법원 2011.10.27. 선고 2011다42324 판결).

4) 근로기준법 제17조 근로조건명시, 제30조 노동위원회 구제명령, 제51조·제52조 등 변형근로시간제, 제57조 보상휴가제, 제58조 근로시간계산의 특례, 제61조 연차유급휴가사용촉진, 제67조 미성년자 근로계약, 제90조 도급사업에 대한 예외, 제94조 취업규칙 신고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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