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용원 공인노무사(공공운수노조 법률원)

멀리서 손님이 찾아왔다. 따님과 함께 상담실로 들어온 모습이 다소 의외였고 말씀하시는 내내 시선과 목소리의 떨림이 전달됐다. 아마도 법률원에 오기 전 고용노동부에서 받았던 억울함과 분노가 아직도 채 가시지 않은 듯 보였다.

사연은 이랬다. 장애인생활시설에서 오랫동안 재활교사로 일하면서 24시간 주·야간 교대로 입소자분들을 케어하는 일을 하셨다. 그러던 중 사회복지시설에 대한 정부 방침을 넘어서까지 일을 시키는 사용자에게 개선을 요구했다고 한다.

하지만 사용자는 이를 받아들이려하지 않았고 급기야 이분은 노동부에 진정을 하게 됐다고 한다. 노동부 근로감독관 역시 일정 부분 법 위반 사실을 인지하고 임금체불로 검사에게 의견을 올렸지만 정부 예산을 받는 시설이라는 이유로 무혐의 처분을 했다는 것이다.

그 일이 있은 후 시설 사용자는 노동부로 갔다는 괘씸죄를 적용해 노동자를 야간업무에서 빼 버리고 주간에만 일을 시키는 보복을 했다고 한다.

노동자 개인이 노동부의 문턱을 넘어 권리구제를 받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 사건처럼 막상 어렵게 노동부 문턱을 넘어도 임금체불 고의성이 없고 국가예산을 받는 기관이라는 이유로 처벌을 할 수 없다며 무혐의 처분해 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고의가 없고 국가예산으로 움직이면 임금을 체불해도 되고 근로기준법을 위반해도 된다는 말이 되니 내 귀가 의심스럽다.

노동부는 언제부턴가 근로관계의 민감한 사안을 해결하려 들거나 법적 판단을 하는 데 있어 존재감이 없다. 통상임금에 있어서 그렇고, 휴게시간에 대한 처리부분이나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에 대해서도 입장이 없다. 오죽하면 감독관은 언제나 메아리처럼 법원에 가서 민사로 다투라고 하소연한다. 답답할 노릇이고 그 와중에 죽어나는 것은 노동자들뿐이다. 아마도 지금의 감독관들은 과거 노동부 출석명령이 경찰서에 불려가는 심정과도 같았던, 그래서 그 권위로 사용자를 윽박지르던 시절이 그리울 것 같다.

하지만 시대는 변했고 그 권위가 나간 빈자리에 전문성이 자리 잡아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물론 감독관 뒤에 앉아 있는 검사들의 처지야 무슨 말이 필요할까.

노동부는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신속하게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럼에도 너무나 보수적이고 사용자 일방의 주장이 먹히는 경우가 많아 꺼려지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래서 노동자와 상담을 하면서도 사실관계가 명확하지 않다면 굳이 노동부로 향할 것을 권하지 않는다. 내가 알기로 임금체불 같은 근로관계에서 입증책임이 사용자에게 있음에도 노동부에서 조사를 받다 보면 오히려 노동자에게 소명하라고 다그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평소 일을 하며 사용자와 대등한 관계도 아니고 하물며 근로관계에 대한 대부분의 자료를 사용자가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자에게 입증하라고 책임을 떠넘기는 것은 억울한 진정인만 양산할 뿐이다.

여기에 감독관의 나약한 의지도 한몫 거든다. 사실관계 진술이 첨예하게 대립하거나 근로자가 그 입증을 다하지 못하는 경우 현장에 나가 파악할 필요가 있는데 그럴 의지도 여력도 없는 것 같다. 심지어 이 사건처럼 노동부에 진정한 것을 이유로 명백하게 근무형태에 불이익을 줬음에도 노동부는 움직이려 들지 않는다.

이쯤 되면 노동부가 누구를 위해 존재하는지 회의마저 든다. 노동부가 근로관계에 있어 약자인 노동자의 억울함을 들어줬으면 하는 바람은 지나친 것일까.

아마도 바람이 차갑게 불어오는 어느 날 그 노동자는 다시 자신의 억울함을 외면했던 노동부로 다시금 향할 것이다. 그리고 그 뒤엔 법률원의 활동가가 뒤따를 것이다. 얼마만큼 그 노동자에게 힘이 돼 줄지 모르지만. 그렇게 우공이 산을 옮기는 심정으로 노동자 편에 서서 뚜벅뚜벅 걸어가려 한다. 조금 더 나은 노동자 세상을 꿈꾸며.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