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쉬운 해고. 일반해고를 두고서 노동자들이 하는 말이다. 노사정 대표자들이 합의하고서 이틀이 지난 9월15일,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의결했다. 언론은 드디어 노사정이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한 합의문을 도출했다고, 마침내 최대 쟁점이었던 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에 관해 합의에 이르렀다고 보도했다. 정년까지 고용이 보장된 ‘철밥통’이니, 근속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인상되는 연공급제의 고임금이니, 귀족노조니 하며 미친 듯이 몰아대더니 결국 정부는 일반해고가 포함된 노사정 합의를 관철해 냈다. 이로써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혁안이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으로 노사정위의 ‘사회적 대타협’이 됐고, 일반해고를 도입하겠다는 권력의 의지가 노사정위 의결로 이 나라에서 노사정의 의사로 돼 버렸다. 비록 민주노총이 빠진 채 한국노총만 참여한 노사정 합의였지만, 노사정위원회법에 의해서 노사정위의 의결로 이 나라에서 노사정 합의로 인정돼 버렸다. 이를 근거로 박근혜 정부는 가이드라인이든 입법이든 추진할 것이니 이제 이 나라 노동자들은 자신의 고용문제에서 일반해고를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그래서인가. 오늘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이 나라 노동운동은 ‘일반해고는 노동자에게 지옥문’이라고 주장하며 투쟁을 외치고 있다. 혹시 박근혜 정부·새누리당 권력이 추진해 온 합의라서 그 내용을 살피지 않은 채 일반해고를 쉬운 해고라고, 지옥문이라고 비난하고 투쟁을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정부가 합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비난을 잠재울 수 있을 테니 민주노총의 11월14일 총파업·총궐기 투쟁도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2. 그러니 일반해고에 관한 합의문을 꼼꼼히 읽어 봐야겠다. 노사정 합의문에서 일반해고에 관해서는 “근로계약 해지 등의 기준과 절차 명확화”라는 제목으로 합의를 했다. 여기서 노사정은 “노사 및 전문가 참여하에 근로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그 제도개선시까지의 분쟁 예방과 오남용 방지를 위해 노사정은 공정한 평가체계를 구축”하며,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하고서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히 협의를 거친다”고 합의했다(Ⅱ.3-2). 이상이 일반해고와 관련된 합의 내용의 전부다. 이번 노사정 합의를 두고서 가장 논란이 됐던 것 중 하나가 이 일반해고 제도다.

3. 먼저 주체에 관해서 보면, 노사정은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고 정하고 있어서 노사정이 합의이행 주체로 기재돼 있다. 노사정이 명확히 한다고 하고 있을 뿐, 노사정의 ‘합의’로 그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고는 정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이렇게 “노사정은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고 합의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히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이를 통해서 보면 일반해고 기준과 절차를 노사정 합의에 의해서가 아니라 노·사·정이 각기 하고, 입법 등을 통한 제도개선시까지의 분쟁 예방 등을 위해 정부는 행정지침(가이드라인)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합의문에서 열어 둔 것이라고 읽힌다. ‘노사와 충분한 협의’ 부분은 협의만 거치면 노사와 합의 없이도 정부가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합의라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노사정위는 노사정 간의 합의기구다. 아무리 노사정 대표들로 위원을 구성해서 의결하는 기구로 법이 정하고 있다고 해도 ‘노’ 없이 사와 정만으로 다수결로 의결해서 노동관계 정책을 관철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니 일반해고 제도 도입은 노사정위에서 노사정의 합의로 처리됐어야 할 사안이었다. ‘노’의 대표 없이 합의될 수 없는 사안이었다. 그런데도 이번 노사정 합의는 일반해고에 관해서 합의 없이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을 내리고, 일반해고 제도를 도입할 수 있도록 하는 근거로서 정부가 이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고 말았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정부에 자신들을 대표하는 한국노총과 충분히 협의해서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달라고 정부에 애원할 수밖에 없게 되고 말았다.

4.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은 법이 아니다. 노동자권리를 제한할 수는 없다. 노동부의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은 본래 법률의 위임에 의한 시행령·시행규칙 등 행정입법처럼 국민에게 일정한 권리와 의무가 발생할 법적 효력이 있는 법규범(법규명령)이 아니다. 일반해고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단지 노동부가 법과 판례를 따라 만든 내부 지침에 불과하다. 아무런 법적 효력이 없는, 그에 따를 필요조차도 없는 행정지침이다. 이런 행정지침은 해당 행정관청이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담당자의 업무집행 필요에서 작성되는 업무매뉴얼에 불과하다. 노동부도 노동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그 업무처리를 위해서 행정지침을 만들어 사용할 수는 있다. 과거부터 해고, 취업규칙 변경, 임금 등에 관해 많은 행정지침을 마련해서 노동부는 노동법 관련 업무를 수행해 왔다. 그러나 취업규칙 변경, 임금 등과는 달리 해고에 있어서는 노동부가 행정지침을 마련할 필요는 줄었다. 근로기준법 제23조 해고제한규정 위반을 형사처벌하는 걸 폐지한 지 이미 오래다. 그런데도 굳이 노동부는 입법이 아니라 일반해고에 관해 행정지침을 마련해서 이 나라 사업장들에서 활용토록 하겠다고 하고 있다. 만약 그 행정지침이 법과 판례를 해설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불필요해서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고, 법과 판례의 법리를 벗어나 보다 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면 위법해서 역시 쓸데없는 짓을 한 것이다. 그러니 국가기관인 고용노동부는 쓸데없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5. 사실 이번 합의에서 일반해고를 제도개선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자체가 심각한 것이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합의문에서는 “근로계약 해지 등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하겠다며 “근로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하고 있다. 노사정은 근로계약 해지, 즉 일반해고에 관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기로 합의한 것이라고 이번 합의를 두고 언론은 대대적으로 보도했고, 정부와 새누리당은 성과라며 환호했다. 행정지침(가이드라인)은 법이 아니니 법의 기준을 위반 일반해고에 관한 가이드라인은 무시하면 그만이다. 노동부를 찾아가지 않고 곧바로 법원을 찾아가면 될 일이다. 심각한 것은 제도개선 대상에 포함시켰다는 것, 즉 일반해고를 제도로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제23조에서 정당한 이유 있는 해고와 정리해고만 규정하고 있다. 현행법에서는 사용자가 노동자를 일반해고한다고 해도 제23조에서 정한 바에 따라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할 수 없다. 성과부진자라고 해도 노동자가 근로계약상 근로를 정상적으로 제공할 수 있다면 사용자가 해고하는 것은 정당할 수가 없다. 도저히 근로계약상 근로를 정상적으로 제공하기 어려운 정도라면 정당한 이유가 있는 해고로서 근로기준법 제23조를 위반하지 아니한 해고로서 정당하다. 나아가 노동자의 업무수행을 이유로 한 일반해고가 사용자의 경영사정에 의한 정리해고로 평가될 수 없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이처럼 근로기준법상 해고제도로 충분하다. 오히려 문제는 정리해고가 남용되고 성과부진자로 몰아 퇴출시키는 부당해고가 빈번히 문제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와 별개로 근로기준법상 해고제도를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해고로 인정되는 일반해고의 기준을 명확히 하겠다는 것이라면 굳이 입법할 필요가 없다. 괜히 시끄럽게 논란이 될 일을 벌이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총파업·총궐기 등의 반대를 무릅쓰고 이를 도입하겠다고 하는 것은 현행법 기준보다 일반해고 정당성 요건을 강화하거나 완화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무엇일까. 현재 성과부진자 퇴출제도로 해고를 남용하는 사용자를 규제해서 노동자의 고용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일까. 만약 권력의 의지가 그런 것이라면 노사정 합의 과정에서 노동자 대표에게, 합의 이후에 그 합의를 선전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사실을 노동자에게 알려 주는 것만으로도 얼마든지 비난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아니었다. 권력이 노동자의 투쟁을 무릅쓰고 불필요한 짓을 할 까닭이 없을 테고, 일반해고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겠다고 말하고 있지 않으니 권력의 의지는 명백하다. 쉬운 해고제도의 도입 말고는 없다. 그러니 쉬운 해고에 맞서 노동자권리를 위해 나아가야 하는 노동운동은 투쟁을 외치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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