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새누리당이 추진하는 취업규칙 변경 지침(가이드라인)은 9·15 노사정 합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해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겠다며 단체협약까지 포함하고 있다.

과반수 노조 동의 등 집단적 동의절차를 배제하는 취업규칙 변경 지침 도입, 그리고 지금은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만 내세우고 있지만 저성과자 해고제도 도입과 연결돼 있고 다른 노동조건 저하 확대와도 연관돼 있다. 단체협약의 경우 올해 초 나왔던 단협 시정지도 지침 같이 대법원 판례에 위배되는 ‘인사경영권’ 논리를 동원해 노동조합의 단협을 통한 관여를 배제하려는 것으로 보인다. 취업규칙 변경 지침에 담길 내용을 공청회 등을 토대로 추정해 보면 다음과 같다.

"임금피크제는 이러이러한 요건을 갖춰서 하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니, 집단적 동의절차를 안 거쳐도 된다. 직무성과급제 도입은 불이익 변경이 아니다. 불이익한 부분이 있더라도 경영권 사항이므로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변경이다."

하지만 근로기준법 제94조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과반수노조 동의, 과반수노조가 없으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하여 절차상 집단적 동의절차를 두고 있다. 이른바 사회통념상 합리성론은 근기법 94조 같은 규정이 없던 일본에서 판례로 도입된 것일 뿐 명문 규정이 있는 우리나라 법체계와 맞지 않다. 예를 들어 전 국민 100%가 동의하는 매우 좋은 법률이라고 하더라도 국회의 법률제정 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효력이 없듯이, 아무리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는 취업규칙이라도 근기법 94조의 집단적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으면 효력이 없는 것이다. 대법원도 논리가 궁색해서인지 매우 엄격하게 제한적으로만 인정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럼에도 고용노동부는 이를 확대 적용해 임금피크제와 임금체계 개편 등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에 심대한 영향을 끼치는 사항에 대해 "이런 요건만 갖추면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니, 집단적 동의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된다"거나, 아예 "직무성과급제 등은 사회통념상 합리성이 있으니 사용자가 일방시행해도 된다는 지침을 만들겠다"고 강변하고 있다.

노조 조직률과 단협 적용률이 10% 정도인 한국에서 나머지 90%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대부분 취업규칙으로 정해진다. 그렇기 때문에 불법적인 취업규칙 변경 가이드라인 강행은 90%의 노조 없는 미조직·비정규직과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자들에게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두 번째로 유심히 봐야 할 것은 노동법상 ‘근로자대표’를 노사협의회 근로자위원이 대신하도록 하는 법 개정안을 노동부가 준비 중에 있다는 점이다. 정리해고 협의와 탄력적 근로시간제 서면합의 등 근기법뿐만 아니라 각종 노동법에는 ‘과반수노조, 과반수노조가 없으면 근로자 과반수를 대표하는 자’ 즉 근로자대표를 두고 있다. 과반수 노조가 없는 사업장의 노사협의회의 경우 사용자측 근로자, 인사·경영파트 근로자들이 근로자위원으로 참석해 형식적으로 노사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 근로자대표 권한을 주겠다는 얘기다. 노동조건 변경에 사용자의 일방통행 허가권을 주겠다는 것이 아닌가.

2010년 기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단협 적용률은 53.5%다. 한국은 10%, 독일은 61.05%, 프랑스는 92%로 집계된다.(OECD, 2014. 9. 「Economic Policy Reforms 2014 Going for Growth Interim Report」)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낮고 단협 적용률도 낮다. 노동자들이 노동조건을 결정하는 데 있어 유일한 대표인 노조가 조직돼 있지 않은 데다, 대표적 산별노조 등이 체결한 단협 확장 적용도 안 되는 탓에 단협에 의한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노동조건 대등결정의 원칙이 현실에서 구현되려면 정부가 추진하는 불법적인 취업규칙 변경 지침(가이드라인) 중단과 근기법 94조 집단적 동의절차의 엄격한 준수, 획기적인 노조 조직률 제고를 위해 이를 막는 제도·관행의 개선, 지역적 구속력 조항 개정을 통해 대표적 산별노조가 체결한 단협의 효력을 확장하는 제도를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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