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를 찾기 어려운 흑자회사에서 노동자들이 무더기로 해고된 지 반년이 넘게 흘렀다. 경기도 이천 소재 LCD 생산업체 하이디스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달 17일로 정리해고가 단행되고 꼭 200일에 접어든다. 그 사이 한 명의 노동자가 스스로 세상을 등졌다. “해고는 살인이다”는 비극적 구호는 결국 현실이 됐다.

대주주가 있는 대만으로 복직투쟁을 떠났던 노동자들은 테러리스트 취급을 받으며 강제출국 당하는 수모도 겪었다. 노동위원회는 이 회사의 흑자해고에 대해 “공장이 낡으면 노동자를 정리해고 할 수 있다”는 이상한 논리로 노동자들을 두 번 울렸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3일 이상목(42) 금속노조 하이디스지회장을 전화 인터뷰했다.

- 해고노동자들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을 것 같다.

“돌아보면 고 배재형 전 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그래도 조합원들이 꿋꿋하게 버텨 주고 있다. 말도 안 통하는 대만에 가서 경찰에 연행되고 불법체류자 수용소 격인 이민소에 억류됐다가 강제로 출국당했을 때는 ‘노동자를 위한 나라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정투쟁에 동참했던 여성노동자들이 대만경찰에 알몸수색을 당하는 등 인권침해가 심각했는데 한국정부 당국자들은 ‘어쩔 수 없다’는 태도로 일관했다. 한심하기 짝이 없다.”

- 얼마 전 경기지방노동위원회가 하이디스 정리해고에 대해 정당한 해고라고 판정했는데.

“어이없는 판정이다. 심판에 나왔던 회사측 관계자는 ‘흑자인데 왜 서둘러 공장을 폐쇄했느냐’는 질문에 제대로 답변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경기지노위는 ‘낙후된 공정의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최소 1조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점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이 사건 해고에 긴박한 경영상 필요가 있었다고 보인다’고 결론 내렸다. 회계상 공정부분과 특허부분이 구분돼 있지도 않은데 지노위가 무엇을 근거로 판단했는지 납득이 안 된다. 영업이익이나 특허수익을 포괄적으로 보지 않고 그저 공장이 낡아서 해고가 정당하다는 논리다. 대만 이잉크사가 하이디스를 인수한 뒤 투자하지 않아서 공장이 낡은 것인데, 그걸 해고의 이유로 삼다니….”

- 쌍용자동차나 하이디스, 최근에는 오스람코리아까지 외투기업의 먹튀 문제가 심각하다.

“하이디스만 놓고 보면 외환위기 때 외화벌이 한답시고 국내 알짜기업을 헐값에 내다판 게 발단이다. 근본적으로는 국내 재벌들이 국내 투자를 하지 않아서 빚어진 일이다. 국내 기업이 사내유보금 쌓기에 열중할 때 해외 투기자본들이 몰려들어 와 구조조정하고, 임금 깎고, 각종 특혜까지 다 누렸다. 그런 뒤 '단물 빠지면 튀는' 패턴이 굳어졌다. 이런 구조가 만들어지기까지 국내 대형로펌들이 한몫했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국내 실정에 어두운 외투기업이 현행법과 규제를 교묘하게 피하도록 안내하고 걸림돌이 되는 법은 로비력을 동원해 없애 버리는 데 일조하지 않았나.”

- 먹튀 문제에 대한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 더 문제다.

“하이디스에 중국계와 대만계 외투자본이 연이어 들어왔다. 이들은 일자리를 늘리거나 유지하려는 노력은 전혀 하지 않았다. 희망퇴직을 반복하며 직원을 줄이고 줄이다 올해 정리해고까지 왔다. 우리나라에는 이미 많은 외투자본이 들어와 있다. 풍전등화다. 먹튀자본에 대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정부도 국회도 손 놓고 있을 일이 아니다.”

- 정부가 일반해고 요건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정부는 ‘정당한 해고’라고 강변하는데.

“10명의 직원을 대상으로 인사평가를 하면 적어도 1명은 저성과자가 된다. 1년에 1명씩 해고하고, 그 자리를 비정규직으로 채운다. 10년이면 전체 직원이 비정규직으로 교체된다. 정부도 기업도 사람을 돈으로, 비용으로 보고 있다. 비용에 사람을 맞추겠다는 ‘부당한’ 세상에서 노동자들은 살아가기가 너무 힘들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