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노동시장 구조개혁이라는 노동개혁의 주된 내용이라며 심란하게 굴더니, 지난달 13일 노사정 합의가 있고 나서는 사업장마다 본격적으로 도입을 추진하는 것인지 더욱 소란하다. 지금 이 나라는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임금피크제가 청년일자리를 창출해서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방안이라고 요란하게 공익광고를 해 댄 터라 도입에 반대하는 자는 아무리 노동자를 위한다고 해도 기득권을 편드는 낡은 진보라고 낙인 찍히고 만다.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에 반대하는 노조는 아무리 조합원을 위한다고 주장해도 기득권을 지키는 귀족노조라고 매도당하고 만다. 공공기관 168곳에서 도입돼서 도입률이 53.2%라고 기획재정부가 밝혔던 것이 이미 지난 10월1일의 일이었다. 기재부에 따르면 공기업은 30곳 중 26곳(86.7%)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했고, 준정부기관 86곳 중에서는 69곳(80.2%), 기타 공공기관 200곳 중에서는 73곳(36.5%)이 도입했다. 평균적으로 이들 기관 직원들은 퇴직 2년7개월 전부터 임금피크제에 들어가고 정년 60세를 기준으로 퇴직 1년 전에는 임금피크제 도입 직전연도 임금의 68.2%, 2년 전에는 74.4%, 3년 전에는 81.3%를 받게 된다. 그리고 지난 9월2일 고용노동부는 8월 말 현재 30대 그룹 계열사 378곳 중 212곳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해 도입률이 56%라고 밝힌 바 있는데, 지금은 더 많은 사업장에서 도입됐을 것이다. 이렇게 오늘 이 나라에서 정부와 사용자는 임금피크제를 개혁을 위해 도입해야 할 과제로 성공적으로 몰아가고 있다. 그렇다고 순조롭기만 한 것은 아니다. 코레일에서는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철도노조가 지난 8일 임시대의원대회에서 쟁의발생 결의를 하고 쟁의행위를 위한 절차에 들어갔다. 현대자동차·기아자동차에서도 임금피크제가 포함된 임금·단체협약에 타결하지 못하고 노조 선거 뒤로 교섭이 미뤄졌다. 지방의료원·국립대병원 등 공공의료 분야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라는 정부의 압박에 보건의료노조와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물론 노조가 사용자와 임금피크제 도입에 관해 합의해 주지 않았다고 해서 임금피크제 자체를 반대하고 있는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사용자가 제시한 임금삭감률에 반대해서 합의에 이르지 못한 경우도 있다. 어쨌든 지금 이 나라는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그 도입 반대로 한바탕 소동이다. 그래서인지 노동자권리 타령으로 사는 내게도 임금피크제는 남의 일이 아니다.

2. 지난주 사용자가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면서 노조의 동의를 받지 않고 노동자의 동의를 받아서 하고 있다는 문의가 왔다. 현대차그룹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을 이런 방식으로 추진하고 있다고, 그래도 되는 거냐고 묻는 전화였다. 노조로부터 온 문의는 아니었다. 한 신문사 노동담당 기자로부터였다. 현대차·기아차노조는 선거 중이니 동의를 받을 새가 없다고 사용자는 이러는가. 이 나라에서 현대차·기아차야말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야 정년을 연장할 수 있는 사업장이 아니다. 최근 5년 이상 매년 수조원의 당기순이익을 벌어들인 사업장에서 그걸 실현하기 위해 노동해 온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할 일은 아닐 것이다. 이런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노동자의 노동으로 실현한 회사 순이익을 노동자의 몫이 없이, 아니 노동자의 몫조차도 빼앗아 차지하겠다는 악행에 지나지 않는다.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서 장년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해야만 하는 사업장도 아닌데 노조의 동의도 없이 임금피크제를 도입한다고 하니 그래도 되는 거냐고 이들 사업장 사용자에게 문의하고 싶었다.

3. 사업장에서 임금제도는 노조가 있는 사업장이라면 회사의 제 규정 말고도 임금 등 단체협약에서 정하고 있다. 그런데 임금피크제도는 이런 임금제도를 변경하는 것이다. 그러니 조합원들에게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자 한다면 노조와 교섭하고서 단체협약을 통해서 해야 한다. 정년을 60세 미만으로 정하고 있다고 해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정년이 연장되는 기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임금에 관해 아무런 정함이 없는 상태라고 취급하고서, 회사가 맘대로 그 임금수준을 정할 수 있는 것이라고 볼 수는 없다. 60세 미만으로 정한 정년이 정년연장법(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이 내년 1월1일부터 시행됨에 따라 60세 정년으로 간주된다. 이때 근속에 따른 자동적인 호봉승급이 적용되지 않는 사업장이라고 해도 적어도 60세 미만으로 정해진 기존 정년의 임금이 60세까지 연장된 기간에 지급돼야 하는 것이다. 근로계약 기간이 도과된 이후에 새로이 근로계약을 체결하지 못해서 임금에 관해 아무런 정함이 없이 근로를 제공하는 노동자에게 지급될 임금은 그 노동자가 근로계약 기간이 도과되기 직전의 것일 수밖에 없다. 즉 아무런 정함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이미 기존에 지급해 오던 임금 수준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노조와 교섭해서 임금 등 단체협약 체결을 통해 새로이 연장되는 기간에 적용될 임금수준에 관해서 정해야 하는 것이고,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정해서 지급할 수 없는 것이며, 기존의 임금수준을 저하해서 지급할 수는 있는 법은 없다. 이때 비조합원이라도 단체협약 등에 따라 조합원의 근로조건을 적용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한다.

그런데 노조가 없거나, 노조가 있어도 임금제도에 관해 회사 제 규정에서 정해 온 사업장의 경우는 어떻게 되는가. 이러한 사업장에서 임금피크제 도입은 회사 제 규정으로 정해진 기존의 임금제도를 변경하는 거고, 이 나라에서 지금 도입하는 임금피크제는 임금을 삭감하는 것이니 근로조건의 불이익변경이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이익하게 변경하는 경우에는 해당 사업(장)에 노동자의 과반수로 조직된 노동조합이 있는 경우에는 그 노동조합의,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에는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도록 정하고 있다(제94조제1항 단서). 따라서 과반수노조가 있다면 취업규칙 변경절차에 관한 근로기준법 규정에 따라 그 노동조합의 동의를 거쳐야 한다. 노조가 노동자 과반수로 조직돼 있지 않은 사업장이라면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야 하고 이때 동의는 집단적 회의방식에 의한 것이어야 한다. 이 근로기준법의 취업규칙 변경절차를 조합원에 대한 임금피크제 도입을 둘러싸고 노조가 이를 주장한다는 자체가 문제가 있다. 조합원에게 적용될 임금제도는 당연히 교섭을 통해 임금 등 단체협약을 통해서 정해야 하는 것이 노조의 일이다. 그런데도 노조가 회사 제 규정에서 조합원에게 적용될 임금제도를 정하도록 방치했다는 것이니 나는 이런 노조에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이 나라에서는 너무도 당연하게 이것이 문제가 되고 있으니 문제다. 그나마 노조를 혐오하는 이 나라에서는 노조라도 있어서 이렇게 문제라고 비난받을 수 있다는 걸 감지덕지해야 하는 지경이다.

과반수노조가 있음에도 근로기준법의 취업규칙 변경절차를 무시하고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고 하고 있다니.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해 이렇게 취업규칙을 변경하는 경우라면 도대체 뭔가. 과반수노조의 동의 없이, 노동자들의 동의로 사용자가 임금피크제에 관한 취업규칙 변경을 시도하고 있다면 그 사업장에 조합원 범위에 속하지 아니하는 관리직 등에게 별도로 적용되는 취업규칙이 있고 그걸 변경하는 경우일 수 있다. 대법원 판례는 별도의 취업규칙이 적용되는 대상자인 노동자들이 동의의 주체라서 그 과반수 동의로서 변경할 수 있다고 판시해 왔다(대법원 1990.12.7 선고 90다카19647 판결 등). 이른바 간부사원인 관리직은 노사가 체결한 단체협약에서 조합원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단체협약이 적용되지 않고 사용자가 조합원들과는 별도로 정한 회사 제 규정, 즉 취업규칙이 적용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 경우에는 위 판례의 법리를 이용해서 사용자가 과반수노조를 무시하고 그 관리직인 노동자들의 동의만으로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가 있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드물다. 관리직 등이 조합원 범위에서 제외하고 있더라도 회사 제 규정은 조합원 범위에 속하는 노동자와 단일하게 정해서 적용되는 게 일반적이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는 회사 제 규정은 노조와 교섭을 통해 체결한 단체협약을 회사 제 규정에 반영해 규정하기 마련이고, 당연히 그 불이익변경에 있어서는 과반수노조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혹시 그럼에도 지금 과반수노조의 동의 없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추진하는 것이라면 근로기준법 위반을 무릅쓰고 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대법원 판례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에 관한 근로기준법 위반의 취업규칙이라고 해도 그 변경 전의 기존 노동자에게만 적용되지 않을 뿐이고 변경 후에 취업한 노동자에게는 변경된 취업규칙이 유효하게 적용된다고 판시해 왔다(대법원 1992.12.22 선고 91다45165 전원합의체 판결 등). 그러니 이를 믿고서 사용자는 신규입사자만이라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려는 것일 수 있다. 그러나 오늘 이 나라에서 청년실업이 문제될 정도로 신규채용이 많지 않으니 이건 어차피 적용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럼 정부가 임금피크제 도입을 대대적으로 몰아붙이고 있어 사용자에게도 이것이 압박이 되고 노조가 반대하니 어쩔 수 없이 이렇게라도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있다고 표시하려고 하는 것인가.

4. 전화 통화를 마치고나서 무슨 일이 있는 것인지 뉴스를 검색했다. ‘현대차그룹, 비노조원 대상 임금피크제 전면 도입 추진’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있었다. 역시 간부사원이라 불리는 관리직 노동자에 관해서였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노조가 없어서, 그리고 노조가 있어도 제대로 반대를 조직하고 있지 못하니 임금을 삭감하는 임금피크제 도입은 국가 권력과 사용자 자본의 맘대로다. 근로기준법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노동자 과반수 동의를 규정하고 있어도 그건 개혁을 외치는 권력과 사용자의 의지를 관철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못하고 있다. 근로조건을 삭감하는 것이 권력과 사용자의 당연한 일인 양 임금피크제 도입을 위한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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