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센트 워크(Decent Work)가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심화하는 양극화와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고착화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와 복지, 사회발전에 관한 그랜드 디자인이 없다는 얘기다. 디센트 워크가 주목받는 배경이다. 디센트 워크는 1999년 후안 소마비아 전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이 주창한 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주제다.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디센트 워크와 유사한 ‘디센트 브라질’을 선거구호로 사용해 인기를 끌었다. <매일노동뉴스>가 디센트 워크란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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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순서]
① 디센트 워크 : 노동개혁의 그랜드 디자인
② 디센트 서울 : 좋은 일자리에서 노동권 보호까지
③ 디센트 코리아 : 청년에게 일할 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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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노총(ITUC)이 정한 좋은 일자리를 위한 세계행동의 날(World Day for Decent Work)인 7일 세계 노동단체들은 각국 정부와 기업에 “디센트 워크(Decent Work)를 창출하라”고 요구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도 이날 각각 성명을 내고 “정부는 비정규직 확산과 정규직 고용·임금 불안정 정책을 당장 중단하고 좋은 일자리(Decent Work) 창출에 나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노총은 2008년 8월 세계 금융위기로 경제가 악화하고 일자리가 줄어들자 그해 10월7일을 '좋은 일자리를 위한 세계행동의 날'로 지정하고 노동자들의 공동행동을 촉구했다. 국제노총은 “세계화된 경제는 가장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며 “세계 노동자들은 이제 인권이 존중받는 노동, 안전하고 건강한 노동, 만족스러운 임금을 제공하고 우리의 가족을 보호할 수 있는 노동을 위해 나서야 한다”고 호소했다.

당시 국제노총 사무총장 자격으로 이러한 호소를 세계 각국 노동자에게 전달한 가이 라이더는 2012년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에 뽑혀 이제는 세계 노사정을 향해 디센트 워크를 호소하고 있다.

일자리 양은 OECD 수준과 비슷, 질은 낮아

ILO는 1999년 디센트 워크를 주창하면서 이를 측정할 11개 범주를 내놓았다. 유럽연합(EU) 이사회는 이를 바탕으로 유럽 상황에 맞게 고용의 질(Quality of Work)을 측정할 10개 범주를 2001년 발표했다.<표 참조>

이처럼 디센트 워크 실현을 향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지만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일자리 수준은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국노동연구원이 2007년 ILO와 EU 기준을 반영해 한국 실정에 맞는 측정지표를 만들었고, 민주노총이 다시 이를 참고해 2008년과 이달 7일 세계 각국과 비교한 한국 순위를 발표했다.

류주형 민주노총 정책부장은 “더 이상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거나 연속성이 없는 통계를 제외하고 5개 범주 16개 세부지표로 우리나라의 디센트 워크 수준을 측정했다”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이달 1일 기준 OECD와 ILO에 공개된 고용·노동·사회·경제 통계(2013~2014년)를 사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르면 고용기회·고용안정 범주에서 중요한 요소로 꼽히는 경제활동참가율(한국 62.4%·OECD 평균 60.0%·이하 같음)과 고용률(65.5%·65.7%)·실업률(3.5%·7.3%)은 OECD 평균과 엇비슷하거나 높았다. 수치로 본 고용의 양은 선진국에 비해 나쁘지 않다는 의미다.

그러나 청년(26.3%)과 여성(55.1%) 고용률은 전체 고용률에 비해 상당히 낮았다. 고용기회가 평등하게 보장되지 않고 있다는 방증이다. 성별 임금격차는 36.3%로 22개국 중 가장 높았다.

특히 임시직 비율은 21.7%로 OECD 평균(11.1%)의 두 배에 육박했다.OECD 30개국(비교가능 국가) 중에서는 5번째로 높아 고용의 질이 낮은 것으로 평가됐다. 중위임금 3분의 2 이하를 받는 저임금 노동자가 23.9%로 미국(25.3%)에 이어 두 번째로 많았다. 소득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0이면 완전평등, 1이면 완전불평등)는 0.307로 31개국 중 13위를 기록했다.

노동기본권·사회보장 수준 심각, OECD 최하위권

반면 국내총생산(GDP) 대비 공적 사회복지지출 비중은 OECD 평균(21.6%)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0.4%(34개국 중 32위)에 불과했고, GDP 대비 공적 현금급여지출액 역시 OECD 평균(12.4%)에 3분의 1가량인 4%(34개국 중 33위)에 그쳐 최하위권에 속했다. 류주형 정책부장은 “소득불평등 정도가 매우 높은 반면 사회보장은 최저 수준에 머물러 있어 사회양극화가 심각한 상황”이라고 우려했다.

노동시간 최장국이라는 오명에서도 벗어나지 못했다. 우리나라 노동자들은 연간 2천124시간을 일해 OECD 노동자(평균 1천770시간)보다 무려 354시간(하루 8시간 기준 44일)을 더 일하고 있었다. 멕시코(2천228시간)에 이어 두 번째로 높았다. 노동자 10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자는 7.3명으로 17개 국가 중 가장 많았다. OECD 평균은 2.6명이다.

노동기본권 보장 수준도 낮았다. ILO 협약 비준현황을 살펴보면 우리나라는 핵심협약 4개를 포함한 29개를 비준해 미국(14개)·아이슬란드(24개)에 이어 가장 적게 협약을 비준한 나라로 꼽혔다. 아이슬란드는 비준협약수가 우리나라보다 적었지만 핵심협약 8개는 모두 비준했다.

노조조직률은 10.3%(2013년 기준)로 터키(4.5%)·에스토니아(6.4%)·프랑스(7.7%)에 이어 4번째로 낮았다. 아이슬란드(82.6%)·핀란드(68.6%)·스웨덴(67.7%)·덴마크(66.8%)는 노조조직률이 60%가 넘었다. OECD 평균은 16.9%였다.

단체협약 적용률은 노조조직률과 거의 비슷한 10.0%로 비교가능한 17개국 중 가장 낮았다. 단협 적용률이 10%대인 나라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미국(13.0%)과 일본(16.0%)밖에 없었다. 프랑스는 우리나라보다 노조조직률(7.7%)이 더 낮지만 단협 적용률은 92.0%로 가장 높았다. 노조가 없는 사업장도 비슷한 산업의 다른 노조(혹은 산별노조)가 체결한 단협을 적용받는 효력확장제도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은 “고용의 양적 성장에만 초점을 맞춘 정책은 삶의 질 향상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와 상시·지속업무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통해 양질의 일자리를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질 낮은 90%의 일자리, 청년이 선택할 수 있도록 질 높여야

한국노총 역시 세계행동의 날을 맞아 낸 성명에서 “인간답게 살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되는 일자리를 창출하라”고 촉구했다. 강훈중 대변인은 “세계 노동자들이 노동기본권 보장과 불평등 철폐를 외치며 양질의 노동 실현을 위해 나서고 있다”며 “우리 사회에도 노동시장의 약자인 여성과 청년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일자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렇듯 우리 사회에서는 노동계뿐만 아니라 정부·정치권을 포함한 사회각층 모두가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을 한목소리로 호소하고 있다. 실제 정부는 올해 7월 청년고용 종합대책을 내놓고 향후 3년간 20만개의 청년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노동계는 물론이고 청년단체들의 반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정부가 일자리의 양만 늘리는 '생색내기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비판이다.

노동계와 청년단체들은 “청년고용 문제는 일자리 양이 아닌 질의 문제”라고 한결같이 주장한다. 청년유니온은 정부 종합대책을 분석한 자료에서 “20만개 일자리 중 괜찮은 일자리(Decent work)는 4천개에 불과해 청년고용대책이라고 평가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청년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 10%에 불과한 상위 일자리(대기업·공공기관 정규직)가 아닌 나머지 주변부 90%(중소기업 혹은 비정규직)의 일자리”라며 “절대적 일자리의 양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질 낮은 90%의 일자리 질을 높여 청년들이 일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일자리 정책의 핵심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취업하지 못하는 청년은 많은데, 중소기업은 인력을 구하지 못해 안절부절못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는 한국 사회의 현실도 이러한 대책을 통해 극복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정 국장은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적어 청년실업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일자리 수준이 낮아 청년들이 선택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며 “지금 있는 일자리라도 질을 높여 청년들에게 일자리를 선택할 권리, 일할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질 낮은 주변부 일자리의 질을 높일 대책을 마련하지 않으면서 청년들에게 눈높이만 낮추라고 강요하는 한국 사회의 현실을 지적하는 청년들의 목소리도 높다.

이날 민주노총이 주최한 세계 공동행동의 날 기자회견에 참석한 서울지역 대학의 한 학생은 “졸업반이 되기까지 각종 자격증·어학연수·봉사활동 등 취업을 위해 안 해 본 게 없지만 여전히 사회는 눈높이를 낮추라고, 남 탓하지 말라고만 한다”며 “그렇게 (눈높이를 낮춰) 취업하면 평생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데, 그런 미래는 희망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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