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센트 워크(Decent Work)가 최근 사회적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심화하는 양극화와 정규직·비정규직으로 고착화한 노동시장 이중구조가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경제발전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큰 그림이 보이지 않는다. 일자리와 복지, 사회발전에 관한 그랜드 디자인이 없다는 얘기다. 디센트 워크가 주목받는 배경이다. 디센트 워크는 1999년 후안 소마비아 전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이 주창한 뒤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주제다. 룰라 다 실바 전 브라질 대통령은 2002년 대선 당시 디센트 워크와 유사한 ‘디센트 브라질’을 선거구호로 사용해 인기를 끌었다. <매일노동뉴스>가 디센트 워크란 무엇인지,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3회에 걸쳐 살펴본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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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재 순서]

① 디센트 워크 : 노동개혁의 그랜드 디자인

② 디센트 서울 : 좋은 일자리에서 노동권 보호까지

③ 디센트 코리아 : 청년에게 일할 권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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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가 인간적 조건에서 일할 권리를 보장받는 것이 행복한 서울을 만드는 첩경이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비정규직 문제는 월급 인상이나 신분안정을 넘어선 사안입니다. 한 인간이 자존감을 갖고 자기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2012년 5월21일)

“노동정책 전담부서를 만들고 5개년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세운 것은 지방정부 최초가 아닐까 합니다. 단순한 구호에 그치지 않고 선도적 실천을 통해 노동의 존귀함을 실현하는 ‘노동존중특별시 서울’을 만들어 나가겠습니다.”(올해 4월30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2012년 5월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와 올해 4월 서울시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발표하면서 일자리와 노동에 관한 자신의 견해를 이렇게 밝혔다. 그는 한 인간이 자존감을 갖고 일할 수 있는 행복한 서울을 만들겠다는 포부를 3년 만인 올해 ‘노동존중특별시 서울’이라는 캐치프레이즈로 구체화했다.

5개년 노동정책 기본계획에는 서울시민이 일할 일자리를 늘리고 적정한 임금·노동조건을 보장하며 이들의 노동권을 강화하겠다는 세부적인 방안이 담겼다.

일자리는 고용률? 질 높고 지속가능성 있어야

디센트 워크(Decent Work)를 처음 주창한 후안 소마비아 전 국제노동기구(ILO) 사무총장은 이를 “자유롭고 평등하고 안정되고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환경 속에서 남녀 모두에게 제공되는 일답고 생산적인 일”이라고 정의했다. 일자리 하면 고용률(일자리 양)만 떠올리는 우리나라에서 서울시가 추진하는 노동존중특별시 서울은 디센트 워크 개념과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

윤효원 인더스트리올 컨설턴트는 “서울시 기본계획에는 노동자의 일과 삶에 밀접한 내용이 두루 담겨 있다”며 “서울시민이 창피해 하지 않고 괜찮게 먹고 살 수 있으며 이로 인해 괜찮은 삶을 살 수 있는 디센트 워크를 만들겠다는 의지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서울시는 2012년 9월 노동정책을 전담할 노동정책과를 신설하면서 노동·일자리 정책 확대 의지를 표명했다. 이후 올해 4월에는 이를 국으로 승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서울시 25개 자치구에도 팀 단위 이상의 노동업무 전담부서 신설을 권고할 방침이다.

직·간접고용 비정규직 7천300명 정규직 전환

서울시 노동정책 중 무엇보다 주목받았던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이었다. 시는 올해 4월까지 청소노동자를 포함한 직·간접고용 노동자 5천625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했다. 2017년까지는 시설·경비노동자를 포함한 1천697명을 추가로 전환한다. 모두 7천322명의 비정규 노동자가 정규직이 되는 셈이다.

일자리 확대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서울시는 올해 8월 일자리정책 컨트롤타워로 기능할 일자리위원회를 만들었다. 위원회는 △공공·민간 일자리 창출 지원 △경제·산업정책 연계를 통한 고용환경과 고용률 제고 △노사화합·노사안정·근로자 권익보호 △서울시와 민간영역 협력기능 강화 △일자리 정책 성과와 시책사업 일자리 효과 평가를 통해 향후 5년간 10만개의 지속가능한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주력할 방침이다.

특히 위원회는 박원순 시장은 물론 한국경총·대한상의·중소기업중앙회 같은 경제단체와 한국노총·민주노총 서울본부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를 포함한 노동단체 관계자, 교수·전문가 등 30명의 위원들로 구성돼 민관합동 거버넌스(협치) 체제로 구축됐다.

위원회 출범식에서 정태인 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장은 “노동시장 불평등과 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노사정이 사회적 대화를 통한 합의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박원순 시장 역시 “민관이 모두 힘을 모아 달라”고 당부했다.

노사민정 협치로 시민에게 일할 권리를

이처럼 서울시 일자리·노동정책은 단순히 일자리의 양을 늘리고 질을 높이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일자리위원회가 서울시는 물론 노사와 전문가를 포함한 민관위원들로 구성된 것에서 보듯 서울시는 노사민정 거버넌스 구축과 의견 수렴을 주요 목표로 삼고 있다.

양대 노총과 여성·청소년 노동단체·사용자단체 관계자와 서울시의원·학계·전문가가 참여하는 근로자권익보호위원회(노사민정협의체)를 정례화하고 서울노동포럼·노사정 서울모델협의회를 통해 노동정책 기본계획을 추진하고 보완하겠다는 계획이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이와 함께 △서울노동권리장전 발표 △노동교육 강화(공무원 6천700명·일반시민 11만9천명 대상) △청소년 권리보호센터와 감정노동자 가이드라인 마련을 포함한 취약계층 대책 마련 △고용안정·적정임금·근로시간·노사협력·직장내 괴롭힘 해결을 통해 일할 권리와 노동권을 지속적으로 보호하고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ILO는 디센트 워크를 구성하는 4대 핵심요소로 △고용 기회(일자리) △일터의 권리(노동권) △사회적 보호(사회보장·복지) △사회적 대화(단체교섭·노사정 대화)를 꼽았다.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서울시가 디센트 워크에 가까운 정책을 내놓고 공론화한 것은 의미가 있다”면서 “앞으로도 우리 사회에서 디센트 워크의 의미는 무엇인지, 또 서울시 정책이 이와 얼마나 같고 다른지를 논의하고 연구해 정책을 지속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디센트 서울, 현실적 한계 넘어야

박원순 시장은 한발 더 나아가 이달 7일부터 31일까지 한 달여간 99개 일자리 현장을 직접 방문하는 ‘일자리 대장정’에 나선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주 6일에 걸쳐 하루 최소 2곳에서 최대 7곳을 방문하는 그야말로 대장정이다. 그는 이 기간 대형마트 여성노동자와 아르바이트생을 만나고 이민여성노동자와 직장맘, 대학생·고등학생·취업준비생과 간담회를 연다. 이들의 고충을 듣고 대책을 함께 논의한다. 박 시장은 이러한 계획을 밝히면서 “노동과 일자리로부터 소외받는 사람 없고 일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일할 수 있으며 자신의 꿈과 더 나은 내일의 삶을 창조해 나갈 수 있는 서울시가 되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반면 서울시 노동정책을 현실에 직접 적용 가능할지, 중앙정부와 어떻게 협치할지를 놓고는 우려가 나오기도 한다. 중앙정부가 강하게 압박하고 있는 현안에서 시가 얼마나 기조를 유지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이를테면 정부가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도입을 강제할 때 시 산하 공공기관이 노사자율 기조를 지키기는 쉽지 않다. 노동정책 관련 계획이 겉돈다는 비판도 있다. 올해 2월 광역자치단체 중 최초로 도입한 생활임금제가 대표적이다. 서울시는 내년 생활임금을 7천145원으로 지난달 고시했다. 내년 최저임금 6천30원보다 1천115원 많다. 하지만 적용 대상이 본청과 투자·출연기관 직접고용 노동자로 제한되면서 정작 생활임금을 받아야 할 서울시 민간위탁용역 노동자들은 배제됐다. 이와 관련해 서울시 관계자는 “생활임금제 확대 관련 서울연구원 연구용역 결과와 서울시 태스크포스팀 논의를 통해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노동정책을 세워 놓고도 정작 예산을 편성하지 못하는 허점도 발견된다.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은 “서울시가 고용의 질 향상을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면서도 “청소년 권리보호센터의 경우 예산이 제대로 책정되지 않아 실제로는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을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일자리 대장정을 비롯한 적극적인 노동시장 정책, 이를 통한 디센트 서울이 성공하려면 정책을 보다 구체적으로 가다듬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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