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영화 <위로공단>은 노동이 행복이자 고통인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올해 5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은사자상을 받으면서 영화계와 미술계를 비롯한 세간의 이목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위로공단>을 연출한 임흥순(46·사진) 감독은 1970년대 동일방직 똥물 투척 사건과 YH 농성에서 시작해 40여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어디에나 있지만, 동시에 어디에도 없는 노동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여성들을 한 명씩 소환해 낸다.

임 감독은 옛 구로공단(구로디지털단지) 여공과 콜센터 상담원, 기륭전자 노동자, 항공사 승무원, 외국인 여성노동자 등 66명을 인터뷰해 22명의 모습을 영화에 담았다. 생존을 위해 단순노동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구로공단 여공, 돈은 벌고 있지만 여전히 가난한 삶을 살아야 하는 다산콜센터 상담원, 감정노동뿐만 아니라 미적 노동까지 강요받고 있는 스튜어디스, 한 달 월급이 100달러도 안 되는 캄보디아 여성노동자의 눈물과 한숨이 화면을 가득 메운다.

베니스 비엔날레 수상 이후 중국 상하이 국제영화제와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영화제에 잇따라 초청받으면서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국내에서도 조금씩 관객몰이를 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운동 진영에서 다소 불편한 시선으로 영화를 보는 이들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여성노동자들이 투쟁으로 일궈 온 노동운동 역사보다는 개인적인 힘겨움이 도드라져 보이는 것에 대한 편치 않은 마음 탓이다.

지난 1일 저녁 서울 서교동 매일노동뉴스 회의실에서 진행된 임 감독과 유경순(53·사진) 역사학연구소 연구원의 좌담에서도 <위로공단>에 대한 평가와 감독의 예술관이 두 시간 내내 얽히고설키며 묘한 긴장감을 자아냈다.

구로동맹파업 주역 50여명으로부터 구술을 받아 책을 쓴 적이 있는 유 연구원은 <위로공단>에 대한 아쉬움을 숨기지 않았다. 이날 좌담은 이호동 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위원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그 많던 구로공단 여공들은 어디로 갔을까

사회 : <위로공단>이 담고자 했던 지난 40여년의 여성노동자 삶을 운동사적으로 정리해 보자는 취지에서 좌담을 마련했습니다. 먼저 <위로공단>을 만들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임흥순 : 어머님이 공장 시다로 40년 넘게 일하셨습니다. 아버님은 철공소에서 막노동일을 하셨죠. 그런 영향 때문인지 부모님 세대의 삶과 계급·계층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노동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한 건 2008~2009년 고공농성과 비정규직을 주제로 미술전시를 준비하면서부터였던 것 같아요. 부산과 울산을 갔는데, 울산에서 현대미포조선 노동자 김순진씨를 인터뷰하면서 여러 가지로 마음이 복잡했습니다(김씨는 2008년 겨울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울산 동구 현대중공업 소각장 굴뚝에서 이영도씨와 함께 고공농성을 벌였다).

부산에 가서 전해 들은 김주익·곽재규씨의 죽음은 제 죽음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2010년 금천예술공장(서울문화재단이 예술가들의 창작을 지원하기 위해 만든 레지던시)에 입주했습니다. 그곳이 구로공단이 있었던 지역이더라고요. 구로공단 하면 '여공'이나 '공순이'로 상징되잖아요. 그런데 그 많던 여공들은 지금 어디로 갔을까. 그런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지역과 공간, 사라져 버린 여성노동자들의 이야기에 착목하게 됐죠. 2011년 구로공단에서 일하셨던 박순희·심상정·윤혜련·김영미·강명자 다섯 분을 인터뷰하면서 작업을 시작했어요. 흔히 '아줌마'로 불리는 그분들의 말씀이나 생각, 삶 속에 담겨 있는 지혜로움이 너무 재밌고 좋았던 것 같아요.

사회 : <위로공단>이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을 수상한 힘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임흥순 :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주제가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였어요. 총감독 오쿠이 엔위저가 정치나 현실문제에 관심이 많은 분인데, <위로공단>의 현실감을 굉장히 강하게 본 것 같았습니다.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문제제기였다는 평을 많이 들었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노동 문제가 큰 부분을 차지하지만 특히 요즘 시대에 부응하는 작품으로 좋게 봐 주신 것 같고, 무엇보다 인터뷰를 하신 분들의 말과 표정들이 가장 큰 힘이 됐던 거 같아요. 어려운 현실 속에서도 묵묵히 살아오신 삶이 말과 표정으로 잘 전달된 거죠.

"여성노동자들, 위로받을 존재로 그려져 아쉬워"

사회 : 유경순 연구원은 <위로공단>을 어떻게 보셨나요.

유경순 : 제가 거짓말을 못하는데 어쩌죠?(웃음)

임흥순 : 보신 그대로 말씀해 주세요.

유경순 :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일단 제가 예술적 감각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전제하고요. 영화를 보면서 '이게 뭐지' 하고 당황했어요. 내가 알고 있는 70년대나 80년대 선배들의 다양한 모습과 투쟁상들이 있는데, 그런 부분이 가볍게 표현된 게 아닌가 싶었거든요. 또 하나의 느낌은 여성노동이 수동화된 존재처럼 그려진 게 아닌가였어요. 그들이 갈등·욕구·힘듦에 대해 얘기하고 있는데 왜 여성노동을 저렇게만 표현할까, 이런 부분들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런 느낌을 가지고 보다가 영화관을 나오자마자 제가 바락 화를 냈어요.(웃음)

이번에 좌담을 한다고 해서 영화를 본 사람들한테 어땠는지 다 물어봤습니다. 그런데 반응이 다 좋은 겁니다. 20~30대는 상당히 좋았다고 하고요. 한 친구는 노동운동을 접해 보지 않은 중산층 40대 친언니와 함께 영화를 봤는데, 언니가 울면서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얘기들을 듣고, 이 친구들의 감상과 내 감상이 차이 나는 이유가 뭘까. 내가 (영화에서) 뭘 놓친 걸까. 엄청 고민했어요. 나도 구술을 통해 여성노동자들을 만나 그들과 같이 울고 웃고 함께했는데 말이죠.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게 위로였던 것 같습니다. (영화에서) 여성노동자들이 위로받을 존재로 묘사된 것이 불만스러웠는데, 또 한편으로 나는 그 세대들과 그들의 노동에 대해 고마움을 가졌었던가, 위로가 부족한 사회에서 모두가 힘들고 고단하게 싸우면서 살고 있는데 나는 옆 사람을 충분히 위로했었나, 나는 또 옆 사람에게 충분히 위로받았나, 이런 질문을 던져 보니 그러지 못했던 거죠. <위로공단>이 사람들의 공감을 얻을 수 있었던 건 이 부분이었습니다. 저는 상대적으로 그걸 놓치고 있었다고 봐야죠. 물론 그럼에도 여성의 시각으로 봐야 하는 게 있고, 노동의 시각으로 봐야 하는 게 있다고 봐요. 그런 점에서 여성노동자들이, 특히 70년대 여성노동자들이 '아들의 시각'에서 위로해야 할 어머니의 모습으로 묘사된 건 아쉬죠. 보다 능동적 주체로 여성노동자들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은 것도 좀 아쉽고요.

뚜벅뚜벅 삶을 살아온 이들에 대한 고마움

임흥순 : 사실 여성노동운동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 만들어 가는 분들이 볼 때 굉장히 힘 빠질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은 듭니다. 하지만 저는 노동을 노동사(史) 같은 거시적인 것으로 바라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제가 관심 있었던 건 개인과 일상이었거든요. 노동자이기 전에 여성·일, 그리고 여성들만이 가진 것들을 이해하고 알고 싶었다고 할까요. 10대에 어머님과 여동생에게 받았던 정서나 감수성이 있는데, 그게 사회에 막 도전하는 정서는 아니었습니다. 투쟁하는 노동자들도 있지만 또 다른 방식으로 삶에 적응하는 분들이 대다수잖아요. 저희 어머님도 그랬고요. 이를테면 아버지는 저에게 빨리 기술을 배워 공장에 다녀라, 돈을 벌어라, 결혼해라는 말씀을 많이 하셨습니다. 일종의 사회제도에 적응시키기 위한 말씀을 많이 해 주신 겁니다.

반면 어머니는 '네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말씀해 주셨어요. 어렸을 때 제가 필요한 게 있다고 하면 옆집에서 돈을 꿔다 사 주시기도 했거든요. 가난하지만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서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습니다. 만약 부끄러움이나 죄책감을 느꼈다면 분노에 휩싸인 채로 성장했겠죠. 영화를 만들기 위해 인터뷰를 하면서 (어머니에게서 느꼈던) 그런 느낌을 발견하고 싶었어요. 어려운 환경에 순응하고 체념하면서도 신념을 가지고 살아가는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다는 마음이 컸습니다. 남자들이 뭔가 치사하게, 성공하기 위한 삶을 살아왔다면(웃음), 이분들은 그냥 삶을 뚜벅뚜벅 걸어오신 분들 같았거든요. 그분들의 신념이나 걸어온 길을 배우고 싶었습니다. 고마움과 미안함을 표현한 거죠. 그런 과정이 저에게도 위로가 됐어요.

유경순 : 제가 그래서 '아들의 시각'이라고 했던 거예요. '보이지 않는다'라는 것은, 사실 그들이 사회에 나와서 하는 노동만 안 보이는 게 아니라 집안에서 하는 노동도 보이질 않는 것이거든요. 87년 이후 많은 남성노동자들이 노조간부로 활동한 데 반해 여성노동자들은 활동하다가 갑자기 사라져 버려요. 사업장이 문을 닫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가 결혼한 뒤 집안으로 사라지는 거죠. 그렇다고 여성들이 노동을 안 하냐, 그것도 아니에요. 계속 일을 해요. 여성노동자들에게 초점을 맞출 때 사회에서의 노동만이 아니라 가정에서의 노동은 어떤지, 이들이 현실에 순응해 가며 살고 있지만 억압돼 있는 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드러내 줬으면 했던 거죠. 위로는 정말 중요하지만 다른 시각도 필요하지 않았을까요? 만약 여성감독이 여성문제를 고민하면서 접근했다면 조금은 다른 각도로 표현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어요.

사회 : 감독님께 다시 질문 드릴게요. 영화에는 여공부터 마트·콜센터 노동자, 항공사 승무원 등 다양한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노동자들이 등장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청소노동자가 빠져 있어 아쉽던데요. 어떤 기준으로 인터뷰 대상을 선정했나요.

임흥순 : 노동에 대한 선입견과 편견을 조금이나마 깨고 싶었어요. 항공사 승무원 같은 경우가 그래요. 노동운동의 맥락상으로 보면 KTX 여승무원을 인터뷰하는 게 맞다는 얘기도 있었는데 저는 노동·일이란 게 정규직과 비정규직, 봉급의 많고 적음의 문제를 떠나 다 똑같아 보였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조금 더 노동의 확장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감정노동 부문에서 (항공사 승무원들을)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고요. 제 영화가 완결된 작품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제가 이 시대에 할 수 있는 부분을 한 거고, 스크린 밖에서 벌어지는 여러 다른 일들은 또 다른 분들이 풀어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감춰진 여성노동운동, 사라진 노동운동의 지향점

사회 : 노동운동사에서 여성노동을 얘기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유경순 : 87년 이전에는 여성노동자들이 노동운동의 중심이었습니다. 지금은 이 부분이 많이 폄하돼 있어요. 예전에 민주노총이 노동운동사를 정리한 적이 있는데 87년 이전 역사를 싹 뺐더라고요. 그 이전 역사는 여성노동이 중심이었기 때문인 거죠. 87년 이후부터 민주노조운동으로 이어오기까지 20년 넘게 여성노동자들의 역사가 단절되거나 배제된 측면이 강합니다. 여성의 노동운동 역사를 애써 무시하면서 남성 중심의 역사를 써 왔던 겁니다. 그런 점에서 예전 '공순이'들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지는 무척 중요한 문제죠. 2000년대 들어 여성노동운동이 굉장히 확장됐는데, 여성노동운동이 제대로 평가되고 계승돼야 노동운동을 풍부하게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봅니다. 그렇게 해야 할 시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사회 : 지난 45년간 한국 노동계급은 어떻게 변했다고 보시나요. 진보하고 있나요.

유경순 : 예전에는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만 노동자라고 불렀지, 식당에서 일하거나 가사노동 같은 건 노동으로 인정받지도 못했잖아요. 예전에 노동이 아니었던 게 요즘에는 노동으로 불리고, 노동의 권리로 얘기되는 건 확실히 변화된 모습이라고 볼 수 있죠. 양적으로도 많이 변했구요.

그렇지만 아직도 여성노동자들의 노동권은 70년대와 비슷하거나 그보다도 못해요. 싸움의 출발을 노동의 권리를 요구하고, 최저임금을 요구하는 것에서 시작하는 게 현실이잖아요. 진짜 심각한 문제는 70~80년대와 90년대 전노협(전국노동조합협의회) 시기까지만 해도 조합원들이 자기와 노조를 일체화시키는 성향이 강했는데, 96~97년 구조조정 시기를 거치면서 노조와 조합원들의 결집력이 확 떨어졌습니다.

과거 구로동맹파업 때만 해도 여성노동자들이 자기희생을 하면서 만들어 왔던 노동운동 정신이란 게 있었어요. 그런데 96~97년 총파업 이후 노동법 개악 상황에서 사업장마다 구조조정이 벌어졌을 때 전국적으로 함께 대응하지 못했어요. '다음 구조조정 타깃이 우리 사업장인데, 내 밥그릇은 내가 지킨다'는 의식이 강해지기 시작한 거죠. 조직과 노동자 개인이 괴리된 노동운동 현실을 극복하는 게 중요한 과제라고 봅니다. 노동운동이 자기 지향점을 분명히 하는 것도 중요합니다. 70년대 민주노조를 중심으로 '현장을 바꾸자'라는 구호에서 80년대 '사회구조를 바꾸자', 90년대 '노동해방'으로 지향점이 바뀝니다. 하지만 93년부터 사그라들기 시작합니다. 2000년대에는 도대체 노동운동이 무엇을 지향하고 있는지가 없어요. 정권과 자본은 총체적으로 공격해 오는데 우리는 각각 개별화된 형태로 가고 있는 거죠.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노동운동의 지향점을 다시 살려 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유경순 : 노동운동이 여성노동문제를 제대로 껴안으려면 근본적으로 일과 가정에서의 역할을 성별로 분리하는 것, 가사노동을 여성노동으로만 한정시키고 공짜노동으로 인식하는 것부터 깨야 합니다. 그래야 가정이나 사회에서 노동이 의미를 갖고 남녀가 같이 활동할 수 있는 상황이 조성되지 않을까요.

임흥순 : 유 연구원께서 말씀하신 것들을 저도 가정에서 지켜 가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가사일을 아내와 분담하면서 (아내가) 밖에서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고 합니다.(웃음)

<위로공단>에 대해서는 아쉬운 부분이 많죠. (여성노동자들을 표현한) 방식에 대해 말씀드리기는 했는데, 저는 다산콜센터 상담사 양선경님이 한 말이 와 닿았어요. 그분은 "열심히 해도 안 되는 상황이 답답하다"면서도 "그래도 현실을 감내하고 서로 이해하고 미안해하면서 살 수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노동운동 역사는 아니더라도 부모님이 어떻게 살아오셨는지를 이해하고, 주변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이해하는 과정에서 현실에 대한 의식이나 의문도 갖게 될 수 있다고 봐요. 노동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봤으면 좋겠습니다.
* 영화 <위로공단> 특별상영회와 임흥순 감독과의 대화가 10월7일 오후 8시 서울아트시네마에서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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