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지나면 도루묵 되는 하청업체 단협 정상화하려면

LG유플러스 협력업체들이 금품을 주거나 수수료를 차별하고 일감을 뺏는 방법으로 개통기사를 개인사업자로 전환시키고 있는 사실이 국정감사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고용노동부 근로감독에서 건당 수수료를 받던 노동자들의 근로자성을 인정하는 결정을 내린 것과 정면 배치된다. 노조와는 정규직으로 고용하고 도급계약을 중단하기로 하는 단체협약을 맺었지만 이 또한 무시했다. 티브로드의 원·하청 상생협약도 말짱 도루묵이 됐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원청과 하청업체가 약속을 지킬 수 있게 강제할 방안은 없을까.

원·하청-경총 책임 미루기 임단협 흔들어

▲ 이정훈 희망연대노조 LG유플러스비정규직지부 부지부장

1년여의 투쟁 끝에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고 올해 3월 현장에 복귀했다. 저마다 만족하지는 못했지만 노조가 생겼고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다는, 더 이상은 사측이 하자는 대로 부당한 일이나 임금삭감을 당하지는 않아도 된다는, 이제 저녁에 가족과 둘러앉아 저녁을 먹을 수 있다는 희망에 욕심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위로하며 복귀했다.

그러나 회사는 일감이 줄었다며 일을 줄였다. 상생을 이야기하며 양보를 요구했다. 유리한 내용은 단협을 들먹이고 불리한 부분이나 희생이 필요한 부분은 상생을 외치는 뻔뻔함은 도를 넘어 모두의 공분을 샀다. 자동차로 업무를 보던 기사들에게 지급됐던 유류비를 실비 지급으로 바꾸겠다고 했다. 그나마 지급하겠다던 유류비도 더 줄이기 위해 갖은 꼼수를 쓰고 있다. 징계를 강화하고 퇴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취업규칙을 수정하고 개인별 지표를 만들어 징계에 반영하는 갑의 횡포를 부리고 있다. 임단협에 명시된 휴일인데도 상생을 위해 희생을 강요한다. 그런 한편 생활고에 시달리는 조합원이 노사합의 하에 야간작업이라도 하겠다고 하면 임단협에 반한다고 안 된다고 한다.

근무지를 넓히고, 현장에서 바로 출퇴근이 자유로웠던 관행을 무시한 채 회사 출퇴근을 강요한다. 업무일지에 유류비 절감을 위해 작업 때마다 이동거리를 적어 내라고 하질 않나, 사측의 탄압은 날이 갈수록 치졸해지고 있다. 입으로는 상생을 외치면서 뒤로는 노동자를 쥐어짜는 사측의 처사에 분노를 금할 길이 없다.

원청과 하청, 하청의 하청, 모두가 책임을 지지 않는 부적절한 욕심이 근로자영자라는 근로형태를 낳았다. 근로자가 근로자로 인정받기 위해 싸워야 하는 말도 되는 상황을 야기한 이 상황의 주범은 원청이다. 그래서 원청만이 상황을 정리해 줄 수 있다. 원청은 하청에게, 하청은 경총에게, 경총은 권한이 없다고 책임을 서로 미루는 일을 언제까지 하려는 것인지 답답하기만 하다.

원청 협상장으로 불러내야

▲ 손정순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

2006년 기아자동차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사측과 특별협약을 체결할 때 원청까지 참여해 서명을 했다. 이처럼 어떤 방식으로든 원청을 협상에 개입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제조업 사내하청과 달리 서비스업 하청노동자들의 작업공간은 흩어져 있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들이 세력을 모아 사측이 임단협 합의안을 이행하도록 밀어붙이는 것이 쉽지 않다. 반면 사측의 반노동자적인 행위는 쉽게 관철된다.

이런 부분을 고려해 임단협을 체결할 때 사업장마다 근로시간 면제(타임오프) 조항을 두든지 해서 합의안을 이행하도록 강제하는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사측의 압박과 회유에 취약한 서비스업 간접고용 노동자들의 특성상 아무리 내용이 좋게 임단협을 맺더라도 한계가 생기게 된다. 해당 노조들이 풀어내야 할 과제들이 많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원청 사용자를 협상자리에 불러내는 것이다.

원·하청 공생 의무, 법으로 강제하자
 

▲ 이영진 희망연대노조 케이블방송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장

티브로드 협력업체 노조인 케이블방송비정규직티브로드지부는 지난 2013년 설립 후 첫 협약서에 고용승계 및 전년도 월 임금총액 대비 45만원의 인상에 합의했다. 그러나 원청과 맺은 도급계약서에는 상대평가를 통해 47개 업체 중 하위 20% 업체의 경우 매년 계약이 해지된다는 내용이 있다. 그에 따라 하청업체 대표들은 하위 20%안에 들어가면 고용보장을 할 수 없다며 업무를 강요하고 협약을 무시하며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다. 전주고객센터와 낙동고객센터는 업체가 변경되는 과정에서 기존 직원들의 고용승계와 협약승계를 거부하고 기존 직원들을 신규로 채용하겠다고 했다. 또한 원청(티브로드)은 협약 체결 이후 45만원 임금인상분을 상생지원금 명목으로 고정 지급하다가 AS수수료로 변경해 지급했다. 대신 가입자 감소로 인한 수수료 감소는 노동자들의 임금삭감과 구조조정으로 이어졌다.

하청업체 노조가 어렵게 쟁취한 임단협은 원청업체의 정책변화와 부당한 계약에 의해 한순간 백지가 된다. 원청이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하청업체들은 노조와 맺은 임단협을 지키는 것보다 계속 사업을 영위할 수 있는지가 더욱 중요하다. 원청업체 입장에서 하청업체는 그저 쓰다 버리는 소모품일 뿐이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원·하청 간 협력이 선행되고 하청에 대한 원청의 지원이 보장돼야 한다. 하청은 원청과 공생하고 동반성장을 해야 함을 도덕적 측면만이 아닌 법과 규정에도 담아야 한다. 즉 법제화해야 한다. 법제화가 당장 어렵다면 노동조합과 원청-하청업체 간 3자 합의체 구성을 의무화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하청업체들은 대기업의 소모품으로 전락하고 하청업체 노조의 임단협과 노동자들의 임금은 매년 ‘리셋’되는 슬픈 현실이 지속될 것이다.

원청 책임성 강제하는 제도개선 필요

▲ 김성희 서울노동권익센터 소장

원청 사용자성이 문제의 핵심이다. 하청업체 노사가 단체협약을 맺으면서도 원청이 직접 사인을 하느냐 마느냐 하는 문제로 난항을 겪는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원청의 존재를 인정하면 영원한 간접고용 굴레를 쓰고 불법파견을 묵인한다는 딜레마가 있지만 지금 하청노동자는 법의 보호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불법파견도 검찰이 수사를 통해 기소하는 게 아니라 민사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가려진다. 보호의 진공상태다. 이 때문에 사용자 우위의 탈법적 관행을 제어할 수단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원청의 책임성을 강제하는 제도개선이 있어야 한다. 

미국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사용자들에게 무한 자유를 준다는 미국에서도 요새 원청 사용자 책임을 강조하는 경향이 강해지고 있다. 우리 중앙노동위원회 격인 미국 연방노동관계위원회(NLRB)가 지난 8월 원청에 용역업체 노동자와 단체교섭을 하라고 결정한 것이 대표적이다. 원청 사업장에서 일하는 하청노동자가 산재를 당할 경우 장소귀속성을 인정해 원청에 책임을 묻던 관행을 고용관계 전반으로 확장하고 있는 것이다.

또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엄정한 법 집행이 필요하다. 그것만으로도 탈법적 관행을 제어할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다.

근로감독 뒤 손 놓은 노동부가 문제 야기했다

▲ 최재혁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

무엇보다 고용노동부의 잘못이 크다. 지난해 근로감독을 해놓고 사업체들의 이행 여부를 감시하지 않아 나타난 결과다. 국회의원이 자료를 들이밀어서야 알려졌으니 말이다. 협력업체는 임단협을 맺어 놓고 지키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았다. 노동부가 조사를 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라 계속적인 감시가 필요한 이유를 보여 주고 있다.

임단협을 맺어 놓고 지키지 않는 LG유플러스와 협력업체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노동부의 근로자성 인정 뒤 이를 회피하기 위해 개인도급으로 전환하려는 데 대해 노동부는 추가적인 근로감독에 나서야 한다. 근로감독을 통해 부당노동행위는 물론이고 개인도급 전환에 대한 불법성을 철저히 가려야 할 것이다.

또한 임단협을 맺어 놓고 뒤집어엎는 것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단협을 통해 더욱 강하게 근로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인데 그것을 휴지조각으로 만들었다. 특히 원청인 LG유플러스의 책임도 함께 물어야 한다. 협력업체 단독으로만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결국 협력업체뿐 아니라 원청에 대한 강도 높은 조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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