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모든 정책은 정치적이다(Every policy is political). 굳이 정책과 정치를 구분하지 않고 같은 단어인 폴리틱(Politik)이라고 칭하는 독일어는 어쩌면 정책이 지니는 정치적 의미를, 또 정치가 내용으로 지녀야 할 정책이라는 알맹이의 중요성을 모두 숙지하고 있는 듯하다. 영어나 한국어와 달리 말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필요로 하는 정책은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사회(통합)정책이다. 그 이유는 자본주의가 근간으로 하는 시장경제의 발전은 사회를 양분시켜 부의 편중과 빈곤의 확대를 가중시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은 사회통합을 창출하지 못할 뿐 아니라 자기파괴적일 수 있다는 것을 세계의 현대사는 증명해 왔다. 정부의 정책적 개입, 그리고 이해당사자들의 공익지향적인 이해조정의 정치가 필수적임은 상식이 돼 있다. 한국과 같은 후발자본주의 국가의 빠른 성장도 국가의 시장에의 적극적인 개입을 통해 가능했지, 자유방임형 시장 메커니즘에만 의존한 것이 아니었다.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필요한 사회정책 가운데 가장 절실한 지대(area)는 바로 노동시장이다. 그중에서도 노동시장의 기진입자와 미진입자 간 불평등 문제, 그리고 기진입자들 중에서도 안정적인 고용형태를 취하고 있는 이들과 그렇지 못한 이들 간의 불평등 문제를 해소하는 것이야말로 시대의 화두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들이 모두 현재 우리 사회에서 작동하고 있는 노동시장 제도에 의해 야기된 문제라는 것이다. 그것은 새로운 정책적 개입을 통해 미래지향적으로 해소돼야 하는 것들이다. 어떤 정책이 필요할까.

이 문제의 해결책으로 우리 사회에서 현재 가장 흔하게 회자되며, 현 정부가 가장 강조하고 있고, 지난 노사정 타협안에도 담겨 있는 정책적 수단이 있다. 이른바 임금피크제(peak wage system)다. 그것은 노동시장 기진입자들 중에서 상대적으로 안정된 고용형태를 취하는 이들 중에 연공서열적인 보상체계 속에서 상대적인 고임금을 취하는 고령근로자들의 임금을 퇴직을 앞두고 조정하되, 종래 50대 중반 언저리에 있던 그들의 정년을 60세로 연장시켜 주고, 그 과정에서 확보되는 재원을 청년고용에 쓰도록 한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임금피크제는 노동시장의 굵은 문제 해결을 겨냥한 하나의 사회통합정책으로 간주할 수 있다.

임금피크제의 시작은 애초 국제기준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우리의 정년관행을 60세에 맞추려는 논의에서 동반돼 나왔지 그것을 청년고용과 강하게 연계 짓지는 않았다. 2013년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 개정안(일명 정년연장법)이 국회를 통과할 당시 그것은 고령자들의 사회보장이 취약한 우리나라에서 기업이 고령자들에게 피고용인의 지위를 보다 길게 부여해 노령빈곤을 막고 공적연금 지출을 줄인다는 취지에서 흔쾌히 수용됐다. 다만 많은 이들은 연공급적인 제도가 지배적인 우리 사회의 1차 노동시장에서 고령자들의 임금에 대한 별도의 조정기제를 도입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기업에 적지 않은 부담으로 갑작스레 작용할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에, 일정하게 임금피크제와 같은 식의 방안을 기업별로 노사 대표끼리 타협을 통해 자율적으로 추진해 가면서 기업 부담을 줄이고 실효성 있게 작동할 수 있게 하면 좋을 것이라는 사고를 지극히 상식선에서 했다.

그러던 것이 이른바 노동개혁이 화두가 되고 청년일자리 창출 과제가 개혁정치의 핵심적인 프레임으로 부상하면서, 임금피크제가 그것을 위한 가장 절실한 수단인 것처럼 둔갑했다. 임금피크제에 청년고용의 마스크를 씌운 것이다.

사회정책으로서 임금피크제는 반드시 정년연장을 전제로 해야만 정당성을 지닐 수 있다. 거기에 청년고용 창출 의무까지 부여한다면, 이는 고령자들에게 과도한 부담을 지우는 것일 뿐만 아니라 양자 간 실효성 있는 연계점을 찾기도 쉽지 않다. 고용 내지 채용 행위가 단순히 유휴자본 유무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며, 억지로 그것을 연계한다 하더라도 모두 일시적일 뿐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잘 알고 있다.

행여 임금피크제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수단으로 기능하는 사회통합정책의 일환이라 하더라도, 그것은 기업 단위에서 기존의 상대적 고소득자와 미취업 상태에 있는 잠재적 취업자를 타깃으로 하는 매우 협소한 극소통합 정책일 뿐이다. 사회 전반을 아우르며 부와 기회의 고른 균등을 도모하는 실질적 대통합 정책이 되기는 쉽지 않다. 게다가 현재 그것은 노사관계 당사자들의 자율적·능동적·민주적·감동적인 합의에 의해 추구되는 것이 아니라 국가의 강권이다시피한 요구가 깔려 마지못해 추진되는 것인 데다, 노동자들의 다른 권리마저 차압하는 제도개정(취업규칙 불이익변경)까지 결부돼 있다. 청년고용의 마스크 안쪽으로 뾰족한 돌기들이 돋아 있는 셈이다.

이렇게 우리 사회에서 임금피크제는 그것 자체가 문제라기보다 추진되는 맥락, 즉 그것에 동반한 청년고용이라는 마스크가 속으로 고령자들의 얼굴을 긁는 이러한 방식이 문제인 것이다. 임금피크제의 짝은 어디까지나 노사자율을 통한 정년연장이지 청년고용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도, 그 도입 여부를 둘러싸고 정부가 페널티를 주고 말고 하는 식의 태도도 아니다. 임금피크제라는 정책이 지금과 다른 정치의 옷을 입을 필요가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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