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인권위원회 주최로 30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결사의 자유 관련 ILO핵심협약 비준방안 토론회.정기훈 기자

우리나라 헌법은 자주적 단결권을 보장하고 있지만 현행 노조설립제도가 이를 침해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국제노동기구(ILO)의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협약(제87호)과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에 관한 협약(제98호)을 즉시 비준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3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결사의 자유 관련 ILO 핵심협약 비준방안 토론회'를 개최했다. 심상돈 국가인권위 정책교육국장은 인사말에서 “ILO 가입국의 80% 이상이 핵심협약을 비준했다”며 “한국 정부도 ILO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시 핵심협약 비준을 약속한 만큼 더 이상 미뤄서는 안 된다”고 밝혔다.

“행정관청의 노조 자유설립주의 침해 심각”

하갑래 단국대 교수(법학과)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김선수 변호사는 주제발표를 통해 “노조는 행정관청의 설립신고증 교부와 무관하게 설립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설립신고증 교부가 사실상 허가제도로 작동하면서 노조 자유설립주의를 침해한다는 얘기다. 공무원노조·이주노조·청년유니온 설립신고서 반려와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 ILO 기본협약을 비준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 변호사는 “ILO는 87호와 98호 협약을 기본협약으로 보고 이를 비준하지 않았더라도 ILO 헌장에 따라 존중하고 증진시키는 의무를 갖는다고 천명하고 있다”며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을 고려했을 때 ILO 기본협약을 즉시 비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와 관련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을 시급히 개정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김 변호사는 “인권위도 권고한 바와 같이 노조법상 근로자에 실업자·해고자·구직자를 포함해야 한다”며 “설립신고서 반려 조항을 삭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노조 등록제도 혹은 설립 후 심사제도 도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법외노조 통보 제도 폐지도 주요하게 거론했다.

“노동관계법·법원에 의한 노동 3권 제약 크다”

주제발표에 나선 조경배 순천향대 교수(법학과)도 ILO 기본협약을 비준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ILO 87호·98호 협약을 비준하지 않으면서 노동관계법과 법원에 의해 노동기본권이 심각하게 제약을 받고 있다는 비판이다.

조 교수는 “노동관계법에 의해 근로자로 승인되지 못할 경우 근로자는 자신의 이익을 방어·증진하기 위한 법적·제도적 장치로부터 완전히 배제된다”며 “단결·단체교섭의 자유는커녕 쟁의행위가 위법으로 간주되고 형벌·손해배상·해고 위협에 노출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단결권이 인정되지 않는 공무원 범위가 지나치게 넓고 △자유설립주의에 위배되는 설립신고서 반려제도 △노조임원 선거나 해임절차에 대한 국가의 과도한 개입 △기업별 교섭단위 강제와 교섭창구 단일화 제도 △행정관청의 단체협약 시정명령권 △합법적인 파업의 범위를 법률로 명시 △쟁의행위 절차 위반에 대한 형벌 적용을 노동 3권을 제한하는 사례로 꼽았다.

조 교수는 “한국에서는 단결과 노조활동의 자유가 근로자 생존을 보장하는 부차적인 권리나 수단적인 권리로만 인식된다”며 “헌법재판소나 대법원 판례에서처럼 국제노동기준을 무시하고 노동기본권 제한이나 금지를 쉽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나타난다”고 밝혔다.

한편 이날 토론회에는 유정엽 한국노총 정책실장·박은정 민주노총 정책국장·장종오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참석했다. 당초 고용노동부와 한국경총 관계자도 토론에 참여할 예정이었으나 당일 불참을 통보했다.

인권위 관계자는 “토론회에서 논의된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ILO 87호·98호 협약을 비준하기 위한 제도개선 방안을 만들어 정부에 권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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