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 경남사무소)

지난 13일 발표된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이 그렇지 않아도 고사 직전인 노동권을 백척간두의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노사정 합의문은 △청년고용 활성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 △사회안전망 확충 △3대 현안(통상임금·근로시간·정년연장 및 임금제도 개선) 해결을 주요 과제로 제시하고 있다. 그런데 청년고용 활성화나 사회안전망 확충 부분을 보면 “제반 조치 강구” 혹은 “지원 강화” 같은 추상적인 내용이거나 정부 조치를 따르는 기업에 각종 우대조치(세무조사 면제와 세액공제 등)를 주는 내용을 담고 있다. 각종 사회복지 서비스를 확충하겠다는 내용도 있다. 기업의 법인세 부담을 줄이는 지원책을 사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각종 사회복지 서비스를 강화하겠다고 하는데 그 재원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구체적 내용이 없다. 결국 실효성이 없거나 국민이 재원을 부담하거나 둘 중 하나가 될 것이다.

반면 정부가 이번 합의문을 통해 실제로 달성하고자 하는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의 실체는 매우 명확하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은 비정규직 고용제도 개선과 노동시장 활성화인데, 아이러니하게도 비정규직 고용제도 개선의 요지는 기간제 사용을 4년으로 연장하고 파견대상 업무를 확대(고소득 전문직 등)하는 등 모두 비정규직 사용을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합의문에는 공공부문이 상시업무 근로자의 정규직 전환에 선도적인 역할을 하겠다거나 차별시정 제도의 실효성을 강화하겠다는 등의 선언적 내용이 일부 들어 있지만 합의 직후인 이달 16일 새누리당이 그 후속조치로서 발의한 소위 ‘노동시장 선진화법안’을 보면 결국 핵심이 위 두 가지인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2년의 기간을 4년으로 늘리는 것은 기간제 근로자에게 계속근로 기회를 보장해 주는 것이 아니라 정규직 근로자로 전환할 시점을 유예하고 사용자에게는 갱신거절이라는 무기를 이용해 기간제 근로자를 마음대로 사용할 기간을 더 주는 것과 같다. 파견대상 업무 확대의 경우에도 고소득 전문직이라고 하니 매우 협소할 것 같지만 위 합의문 적용대상은 한국표준직업분류상의 대분류 1·2에 해당하기 때문에 전체 노동자의 40%(대분류 1·2) 혹은 25%(근로소득 상위 25%)에 이른다. 게다가 16일 발표된 새누리당 노동시장 선진화법안에는 합의문에 없던 뿌리산업(주조·금형·용접·표면처리·소성가공·열처리)에 대한 파견을 허용하는 방안까지 들어 있다. 현재 금지되고 있는 제조업 직접생산공정에 파견을 허용하자는 것과 사실상 같은 것으로서 이 법안이 통과되면 직접고용이 아니라 파견근로가 원칙적인 고용형태가 될 것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의 또 다른 핵심인 노동시장 활성화는 일반해고 제도 도입과 임금제도 개선을 위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 개선으로 요약되는데 이도 마찬가지다. 일반해고 제도가 도입되면 결국 평가권한을 갖는 사용자의 자의적인 해고가 만연할 것이다. 상대평가제로 운영된다면 일정 비율의 저성과자는 항시 나올 수밖에 없다. 이는 일상적인 구조조정(정리해고)과 같다. 정부는 상대평가가 아니라 절대평가제로 운영되도록 하겠다고 밝혔지만 절대평가 평가 과정에서 자의적인 해고가 있을 수 있음은 매한가지다. 실제로 평가기준을 어떻게 정하는가에 따라 사실상 상대평가와 동일하게 운영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과반수 노조가 없는 경우 근로자 과반수의 회의방식에 의한 집단적 동의를 받게 하는 것은 노동조합이 없는 사업장에서 노동자들의 권리를 지키는 최후의 보루다. 그럼에도 불이익변경 절차를 완화하겠다는 것은 노조가 없는 90%의 미조직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을 심대하게 저해하는 일이다. 특히 일반해고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 맞물리면 문제가 더욱 커지는데, 사용자에게 인사평가를 나쁘게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동의를 해야 하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실제로 인사평가 때문에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반대하지 못해 소송이 진행 중인 사건도 있다.

결국 9·13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 합의문은 겉으로는 비정규직 고용제도를 개선하고 노동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이지만 실제로는 비정규직을 확산하고 정규직의 고용과 근로조건을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전체 국민을 불안정한 근로와 불안한 삶으로 내모는 것이다. 노동권이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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