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준영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가족 같은 관계를 표방하는 기업들이 많다. 마음이 따뜻해서가 아니라 성과를 위해서다. 조직에 대한 소속감은 곧 충성심이자 생산성이다. 실제 ‘가족’들이 지배하는 재벌그룹도 마찬가지다. 롯데 임직원 행동강령에는 가족처럼 서로 존중하는 공동체를 지향한다는 말이 있다. 노사관계를 초월해 고용형태도 가리지 않고 모두가 한 가족이라는데, 거기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는 것이다.

함께 일하는 모두가 가족이라 강조했던 그들이 스물네 살의 청년을 해고하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다.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 한마디면 충분했다. 그는 매일 출근과 동시에 근로계약서를 새로 쓰는 일일사원, 하루짜리 직원이었다. 2천명을 넘게 고용하는 대기업 롯데호텔에서 그것은 ‘해고’조차 아니었다. 애초에 하루의 근무시간이 종료됨으로써 그날의 계약이 만료되도록 ‘일용직 근로계약’의 형식을 취해 뒀기 때문이다. 사측 논리에서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는 말은 더 이상의 계약이 없음을 의미할 뿐이었다.

업계를 이끄는 롯데호텔을 필두로 대형호텔들 사이에 퍼진 새로운 유행이 있다. 사람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해 정규직 노동자와 다를 바 없는 상시·지속적인 업무를 시키면서도 날마다 형식적인 근로계약서를 쓰게 하는 것이다. 필요한 만큼 마음껏 쓰다가 언제든 손쉽게 해고할 수 있도록 노동자들에게 강요하는, 이른바 ‘하루살이 근로계약’이다. 이것이야말로 지금 정부와 재계가 바라마지 않는 ‘쉬운 해고’의 모범사례 아닌가. 극단적으로 유연한 고용형태 속에 노동자는 내일의 생존을 위해 매 순간 최선을 다해 일할 것이고, 기업은 최소한의 책임만 지면 되니 말이다.

3개월19일의 시간 동안 근로계약서를 무려 84장이나 작성해야 했던 20대 초반의 청년노동자는 취업규칙을 보고싶다는 작은 요청을 ‘발설’하고 3일 만에 ‘해고’당한다. 그 해고는 사유도 절차도 필요로 하지 않았다. 하루 두끼 밥을 해결할 수 있는 소중한 일터에서, 타향살이 속에서도 한 가족 같은 동료들과 정을 나누며, 묵묵히 땀 흘려 일해 온 그는 더 이상 롯데의 가족이 아니었다. 대기업 호텔 눈에 어느 청년은 그저 하루씩 쓰다 버리는 일회용품이었을 뿐이다. 기업은 단지 오래 일할 수 있으면서도 언제든 자를 수 있는 사람을 원했던 것이다.

하루아침에 일어난 이 ‘쫓겨남’은 도대체 무엇인가. 중앙노동위원회는 당연하게도 이를 부당해고라 판정했다. 누가 보더라도 기업이 요구한 일용직 근로계약은 형식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롯데호텔은 판정을 겸허히 받아드리고 책임을 다하기는커녕 아랑곳하지 않고 소송전을 시작했다. 80개의 회사를 거느린 재계 5위의 재벌그룹이 청년 한 사람을 다루는 방식은 회유에서 협박으로 신속하게 전환됐다. 그들에게는 불패의 신화를 자랑할 대형로펌을 대동할 힘이 있다.

이런 현실에서 사법부의 불편부당함을 바라는 것이 너무 큰 기대였을까. 해고의 부당함을 입증하는 근거가 충분한데도 1심 재판부는 정의를 버리고 대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그가 수행한 업무가 단순했기 때문에 상시·지속적 업무로 보기 어렵다는 궤변과 아르바이트 직원은 언제든 일을 그만둘 수 있기 때문에 근로계약 갱신에 대한 정당한 기대권이 없다는 편견이 판단의 이유였다. 이는 청년·아르바이트 노동자를 ‘2등 노동자’로 차별하고, 권리를 박탈하며, 극도의 고용불안정을 합법화하는 잘못된 판결이다. 재판부는 정녕 기업들이 형식에 불과한 ‘하루살이 근로계약’을 무분별하게 악용하도록 공모하는 ‘사법적 공범’이 되고자 하는가.

우리는 항소를 제기했다. 행정법원의 원심 판결은 잘못됐다. 우리는 2심 재판을 시작하며 가장 약한 자의 권리부터 최우선으로 보장해야 할 ‘사법정의’를 다시 촉구한다. 앞으로의 항소심에서는 다른 결과, 정당한 판결이 있기를 바란다.

롯데호텔에 고한다. 우리의 삶과 노동은 하루짜리로 쓰다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다. 지금이라도 중노위의 부당해고 판정을 받아들이고 청년노동자 김영을 원직에 복직하라. 적반하장격의 소송을 중단하라. 롯데그룹이 정말 ‘롯데사태’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통감하며 최선을 노력을 다할 것이라면, 부당하게 일자리를 잃은 청년노동자부터 당장 복직시키는 것이 옳다. 현장실습생이든, 인턴이든, 아르바이트든, 모든 청년·노동자들이 존중받으며 권리를 누리는 좋은 일터를 만드는 것이 우선이다.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 우리 사회의 기업들이 태연한 모습으로 청년에게 가하고 있는 모든 폭력과 부당함, 부정의에 맞선 이 싸움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청년유니온 정책국장 (scottnearing87@gmail.com)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