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아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한 방송사의 보도국장이 노동조합에서 발간하는 신문 중 하나인 <민주방송실천위원회 보고서>를 훼손했다. 그냥 슬쩍 치운 정도가 아니라 보도국 조합원들이 일하는 시간에, 보도국 조합원들이 일하는 보도국 사무실에서, 보도국 조합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뭉치째 집어 들어 쓰레기통에 찢어 버렸다. 자문노조가 당한 이 사건을 전해 듣고 나는 믿기 어려웠다. 지금은 사장님이 조회시간에 마이크 잡고 노조는 죄다 빨갱이라고 연설하던 새마을운동 시대가 아니지 않은가. 게다가 노동조합이 무엇인지 노동 3권이 무엇인지 알려 드리지 않아도 알고 있는 것이 당연한 방송사 보도국장 아닌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니 이제는 궁금해졌다. 노동조합에서 발간한 신문을 북북 찢어 버릴 만큼 노동조합이 미운가? 그렇게 이성을 잃어버릴 만큼 미운 마음이 가득한데, 그걸 표현하면 안 되는 것일까?

누군가에게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것은 위협적이다. 어느 누구도 혐오의 상대방이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헤어진 옛 애인으로부터도 미움 받지 않기를 원하는 게 사람인데, 하물며 직장에서 혐오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스트레스이자 생존에 크나큰 위협이 된다.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또는 노동조합에 관여한 인물이라고 해서 감내해야 하는 부당한 일들이 회사 내 질서와 묘하게 뒤섞여 종종 발생한다. 회사는 다종다양한 기법으로 괴롭히면서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려면 혐오에서 기인한 불이익을 어느 정도 감내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다. 그러나 ‘노동조합’이라는 이유만으로 예기치 않게 혐오의 상대방이 되고 폭력적 상황에 노출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다. 이것은 억울한 일이고 어렵지만 바로잡아야 하는 일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의 마음 한편에도 ‘노동조합’이라는 단어가 편안하지 않을 수 있다. 뭐 그래도 상관없다. 어느 누구도 당신의 마음 깊이 자리 잡고 있는 혐오감이 잘못된 것이라고, 당신의 생각과 마음을 교정해 줄 의무는 없다. 당신이 편안해하지 않는 노동조합은 당신이 믿고 있는 질서로부터 외면당할 때에도 살아남아 당신이 찢어 버린 노동조합의 신문처럼 당신이 회사로부터 찢겨 버려질 때에도 노동자는 쓰고 버려지는 물건이 아니라며 회사와 싸워야 하므로 당신의 속마음이야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당신이 그 혐오감을 참지 못하고 드러내는 순간 그것은 범죄가 될 수 있다. 당신이 혐오하는 마음을 행동으로 표현해 노동조합 활동을 위축시키려는 사용자의 마음에 편승하는 순간, 그것이 노동조합의 운영에 지배·개입하는 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법(제81조)은 근로자가 노동조합을 조직 또는 운영하는 것을 지배하거나 이에 개입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위반했을 경우 같은 법 제90조에서 2년 이하 징역 또는 2천만원 이하의 벌금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당신의 행동으로 인해 노동조합 활동이 위축되고 노동조합에서 활동하는 누군가 억울한 일을 당하게 된다면 당신은 범죄자이고 처벌받아 마땅한 사람이다.

노동조합을 왜 혐오하는가. 이제 그 개인적인 사연은 궁금하지 않기로 한다. 이것은 개인 표현의 자유 문제가 아니다. 레나타 살레클은 책 <사랑과 증오의 도착들>에서 “모욕적인 말의 일차적 의도는 공격당한 사람이 자신의 세계에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스스로를 열등한 존재로 지각하도록 부추기는 것”이라고 했다. 혐오의 표현은 특정한 집단에 대한 차별과 억압이다. 노동조합에 대한 차별과 억압은 분명한 범죄행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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