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청년희망펀드에 2천만원을 쾌척했다. “노사정 대타협 뜻을 이어 사회지도층부터 앞장서자”고 말한 후 나온 조치다. '청년고용 절벽시대'에 대통령이 나선다니 좋은 일이다. 사회지도층의 양보와 책무를 강조했던 게 노동계 요구 아니었던가.

그런데 대통령의 선행을 보는 눈이 곱지만은 않다. 일각에서는 “아니꼽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모든 문제를 정치적 이해득실로 바라보거나 내 편은 옳고 네 편은 그르다는 진영논리를 그다지 좋아하진 않지만 그 아니꼬움이 한편에서는 이해가 간다. 노사정 합의 성과에 더해 정치적 이득까지 모두 정부·여당만 가져가고 있어서다.

반면 비난은 한국노총에 쏠려 있다. 자초한 측면이 없지 않다. 일반해고·취업규칙 지침과 관련한 논의의 장을 열어 준 것이 특히 그렇다. 더군다나 한국노총은 노동시간단축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같은 실질적인 청년고용 해결책이나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을 강제할 만한 방안을 합의문에 담지 못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청년고용을 위해 범국가적 일자리연대협약을 맺자”는 제안도 내놓았지만 과실은 노동계가 아닌 정부·여당의 것이 된 듯하다.

정치권을 보면 가관이다. 새누리당이 노사정 합의 정신을 이어받아 노동개혁을 추진하고 야당들이 반대하는 구도가 돼 버렸다. 그런데 막상 새누리당의 5대 노동개혁 입법안은 어떤가. 한국노총마저 “노사정 합의 위반”이라고 비판할 정도다. 경영계에 유리한 사항은 몽땅 담고서, 노동계에 이로운 내용은 누락했다. 그러면서 당·정·청 주요 인사가 모두 나서 “노사정 합의 정신을 잇자”며 노동개혁을 외치고 있다.

이대로는 안 된다. 협상 주체인 한국노총이 바로잡아야 한다. 김동만 위원장은 노사정 합의를 추인받으면서 “현장에 불이익이 가지 않도록 위원장직을 걸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 줘야 할 때다. 일반해고·취업규칙은 물론 비정규직 문제까지 아직 노사정이 논의해야 할 후속과제가 만만치 않게 남아 있다.

또 노사정은 합의문에서 대·중소기업 임금·근로조건 격차 축소 목표를 제시하기로 했다. 원·하청 남품단가조정협의제나 불공정거래 의무고발제 방안을 강구한다는 내용도 있다. 제시할 것은 제시하고 강구할 것은 강구하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래야 정부·여당과 경영계가 합의정신을 존중할 생각이 있는지, 한국노총이 들러리 선 것은 아닌지 알 수 있지 않겠는가.

한국노총이 속 좋게 마냥 비난을 감수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숨는 것은 더 무책임하다. 그런데도 늘 열려 있던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 사무총국과 임원실 6·7층 출입문은 17일로 벌써 사흘째 굳게 닫혀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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