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개 국정감사에선 야당이 칼자루를 쥐게 된다. 여당은 정부를 대신해 방패 역할을 자임한다. 이번 국정감사는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거를 앞둔 마지막 국감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여파로 인해 경기가 침체해 경제성장률마저 2%대로 꺾일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그래서 국감에서 야당이 정부·여당의 경제정책 실패와 실정을 매섭게 추궁할 것으로 보였다.

그런데 새누리당이 느닷없이 5대 노동입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14일 한국노총 중앙집행위원회가 노사정 합의를 추인한 지 이틀 만이다. 역시나 노사정 합의는 불쏘시개였다. 그것도 새누리당이 국감 정국에서 입법전쟁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하기 위한 잔솔가지로 전락했다. 국감 기간임에도 국회 주도권은 순식간에 정부·여당으로 넘어가는 모양새다.

이런 정황을 보면 새누리당은 노동입법안을 미리 만들어 놓은 것으로 보인다. 노사정 합의 내용과 상당 부분 다르기 때문이다. 눈에 띄는 것은 비정규직 관련 법안이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은 고용노동부의 비정규직 종합대책을 빼다 박았다.

기간제·파견 노동자 사용기간을 현행 2년에서 4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이다. 35세 이상 노동자가 직접 연장을 신청하는 경우에만 가능하도록 했다. 고령자·고소득 전문직의 파견업무를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심지어 새누리당은 금형·주조·용접 등 뿌리산업 6개 업종에 파견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는 노동부가 지난해 12월 발표한 비정규직 종합대책에도 포함되지 않았던 것이다.

비정규직 관련 법안은 노사정 협상에서 쟁점이었기에 장기과제로 분류했다. 노사정 합의문에 따르면 노사정은 공동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수렴을 거쳐 대안을 만들기로 했다. 새누리당은 이런 과정을 외면하고 비정규직 관련 법안을 기정사실화했다. 게다가 뿌리산업 파견근로 허용은 제조업 직접생산공정 파견근로 금지라는 파견법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행위다. 반면 노동계가 요구한 비정규 노동자의 차별시정신청과 관련한 노조 대리권은 쏙 빼버렸다.

이뿐만이 아니다. 노동시간단축 취지에서 후퇴한 근로기준법, 실업급여 지급절차가 까다로워진 고용보험법도 내놓았다. 노사정 합의가 깡그리 무시된 셈이다.

가뜩이나 노사정 합의문에는 취업규칙·일반해고와 관련한 조항이 포함돼 논란이다.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관련 조항은 노동자의 임금·고용에 직결되는 사안이다. 노사정 합의문에는 노정이 '충분한 협의'를 거쳐 추진한다고 명시돼 있지만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취업규칙과 일반해고 완화는 필연적으로 노동자의 고용불안과 노사갈등을 동반할 수밖에 없다.

새누리당이 발의한 노동입법안이 정기국회를 통과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야당이 반발하고 있는 이상 새누리당의 노동입법안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문턱조차 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마침 환노위 구성도 여소야대다.

그럼에도 이인제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장은 "이번 정기국회 내에 노동입법안 처리를 완료하겠다"고 여론몰이에 나섰다. 새누리당이 이처럼 장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국회 주도권을 잡는 것과 동시에 여론을 선점하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노사정 합의 효과를 최대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내년 4월 국회의원 총선까지 '노동개혁' 이슈를 이어 갈 의도다. 즉 새누리당은 노사정 합의와 노동입법안을 추진한 여당 대 이에 반대하는 야당 구도로 정기국회뿐만 아니라 총선까지 구도를 짜려 한다. 그래서 새누리당은 노사정 합의에도 없는 내용까지 노동입법안에 추가해 논란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새누리당이 원하는 구도가 만들어지면 노동입법에 속도를 낼 수 있는 데다, 노동개혁을 총선 이슈로 부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와 여당이 노동입법안을 띄운다 한들 경제실패와 실정이 가려지겠는가. 노동입법안은 노동자 밥줄이 달린 중대 사안이다. 노사정 합의조차 앞으로 구체적인 사안을 논의해야 할 정도로 미완성이다. 새누리당이 이를 악용해서야 되겠는가. 노동입법안은 여야가 꼼꼼히 검토해야 한다. 충분한 시간과 공을 들여 여야가 합의해야 할 사안이다. 여당이 독주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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