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태현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충북사무소)

지난해 9월 옥천농협에 노동조합이 만들어졌다. 노사는 연말까지 수차례에 걸쳐 단체교섭을 했으나 타결에 이르지 못했다. 결국 노조는 올해 1월12일부터 쟁의행위에 돌입했다. 여기까지는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의 근로조건 개선 과정에서 흔히 벌어질 수 있는 불가피한 진통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런데 조합원들이 전면파업을 진행 중이던 1월29일 옥천농협 대의원회는 갑자기 ‘협동조합 해산안’을 83.5%의 찬성으로 가결시켰다. 노조 쟁의행위에 맞서 농협 자체를 해산시켜 버리겠다는 선언을 한 것이다. 이런 파괴적인 선언에 노조는 어쩔 수 없이 상당수 조합원들을 업무에 복귀시키고, 일부 집행부만 파업을 이어 가기로 했다. 노조의 정당한 쟁의행위는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한 지역언론은 “3천900여명의 옥천농협 조합원 중 대부분을 차지하는 농민들은 농협이 창설된 지 33년 만에 파업이라는 생소한 얘기에 분노를 표출했다”거나 “어차피 파업했으니 다 해고하고 다시 시작하자는 목소리가 대세”라며 농협 조합원들의 분위기를 전했다. 이 언론은 또 “결과적으로 노조 조합원들의 업무복귀는 농민들의 승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옥천농협은 여기에 멈추지 않고 수십 년간 직원들에게 지급해 오던 자녀학자금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이사회에서는 노조 조합원들을 노조에서 탈퇴시키기 위한 대응방안을 논의하는 등 노조에 대한 적대감을 거리낌 없이 표출했다.

우여곡절 끝에 옥천농협 노사는 2월26일 단체협약을 체결했다. 이로써 노조의 쟁의행위와 단체교섭이 마무리됐다. 그러나 옥천농협의 노조에 대한 적대적 인식까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옥천농협은 5월11일 “(조합원이) 페이스북에서 옥천농협 이·감사들에 대해 욕설을 했다”거나, “업무를 부당하게 처리했다”는 구실로 노조 조합원 2명을 징계해고했다.

이에 대해 충북지방노동위원회는 다행스럽게도 “징계사유가 일부 인정되기는 하나, 이는 사용자의 부당한 행태에 기인한 것이거나 중대한 귀책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어 징계해고가 부당할 뿐만 아니라 실질적으로 대립관계에 있는 노동조합의 조합원들에 대하여 불이익취급을 행한 것으로 봄이 상당하기 때문에 부당노동행위에 해당한다”고 판정했다.

옥천농협에서 노조가 설립된 후 벌어진 일련의 과정을 보면 옥천농협 조합원들은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한 것이 아니다. 그보다는 노조 자체의 존재를 부정하는 사용자의 전근대적인 인식, 더 나아가 노조의 정당한 쟁의행위에 대해 ‘농협 해산’이라는 위협으로 대응한 옥천농협의 행태를 노조에 대한 농민의 승리로 손쉽게 치환해 버린 지역사회의 왜곡된 편견과 싸운 것이다. 헌법에 보장된 노동 3권이 얼마나 척박한 토양에서 행사되고 있는지를 뚜렷하게 보여 주는 하나의 사례다. 그리고 전국 곳곳에 있는 투쟁사업장을 보면 옥천농협의 사례가 단지 예외적인 사례일 뿐이라고 치부하기도 어렵다. 꽤나 온 것 같아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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