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2015년 9월13일 정부와 집권 새누리당의 압박 속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서 대표자들은 합의했다. 방송과 신문 등 언론은 일제히 노사정이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드디어 노사정이 노동시장 개혁과 관련한 합의문을 도출했다고 정부 여당은 환영했고, 마침내 최대 쟁점이었던 일반해고·취업규칙 변경에 관해 합의에 이르렀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정부여당이 못 박은 합의시한에 쫓기다 이를 넘겨서 이날 오후 6시 정부서울청사에서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박병원 한국경총 회장·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은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열어 오후 7시30분께 최종 조정문안을 채택했다니 노사정 대표에 노사정위원회의 위원장까지 참석해서 노사정이 사회적 대타협을 한 거라고 환호하고 보도했다. 그런데 나는 아직 모르겠다. 도대체가 환호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합의문을 읽었다. 권력의 협박 공세 속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룬 것에 박수를 쳐 줘야 하는 것인지 노사정위원회가 작성해 배포한 합의문을 읽었다.

2. “현재 한국 사회는 새로운 재도약과 기약 없는 정체 사이의 분수령에 서 있다.”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노사정합의문(안)’ 전문은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노사정위원회의 대표자들이 ‘사회적 대타협’이라는 부제를 붙인 합의서였다. 노사정 대표자들은 이 나라의 오늘을 재도약과 정체의 갈림길에 있다고 진단했다. 이것은 이번 노사정 합의는 재도약의 길이라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의 마지막 문장에서 “우리 노사정은 오늘의 대타협”으로 “청년과 미래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일하기 원하는 사람 누구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을 확신하면서” 함께 추진하기로 합의한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이것이 이번 합의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청년과 미래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일하기 원하는 사람 누구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사회를 위해 그 계기로 이번 합의를 한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전문은 어디까지나 바람일 뿐이다. 구체적인 합의만이 전문의 진정성을 확인시킬 수 있다.

3. 이번에 노사정 대표자들은 다양한 과제에 관해 합의했다. 대부분은 박근혜 정부가 이미 발표한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에 포함됐던 것이다. 노동자권리와 관련해 주요 합의사항은 비정규직법·근로시간단축·통상임금·임금피크제·일반해고, 그리고 그 절차로서 취업규칙 변경 등이다. 정부안에 포함됐던 파견 대상업무 확대, 기간제의 사용기간 연장 등 비정규직법 개정문제는 추가 논의 의제로 합의했다. 당장 비정규직법 개정을 통해서 하겠다고 합의하지 않았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안도하면서 읽는다. 근로시간단축에 관해서는 ‘실근로시간 단축을 위한 법제도 정비’를 위해 1주일은 7일로 정해서 휴일근로를 연장근로에 포함, 주당 근로시간은 52시간(기준근로시간 40시간+연장근로시간 12시간)하고, 단계적으로 사업장 규모에 따라 시행하되, 주문량 증가 등 사유, 노사대표 서면합의 등 절차, 1주 8시간 등 상한을 정해서 위 52시간에 추가한 특별연장근로를 위 휴일근로의 연장근로 포함시부터 4년간 허용한 후 제도의 지속 여부를 재검토하며, 1개월(취업규칙)과 6개월(노사합의) 단위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재량근로시간제를 도입하기로 합의했다. 한마디로 근로기준법 제50조의 법정근로시간에 관한 무지에서 비롯된 법무시의 합의라고 할 수 있다. 근로기준법 제50조는 1주간의 근로시간은 40시간을 초과할 수 없도록 정하고, 이를 위반한 사용자는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초과해서 일하는 것을 금지하는 법정근로시간, 노동제에 관한 규정이다. 비록 근로기준법 제53조가 당사자 간에 합의하면 1주간 12시간을 한도로 제50조의 근로시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그 예외를 정하고 있지만, 예외가 원칙을 폐기할 수는 없는 일이다. 원칙이 부정되지 않도록 예외는 그야말로 예외적인 경우에만 적용되는 것으로 해석해야 할 일이다. 그러니 제53조의 당사자 간 합의는 근로계약·취업규칙·단체협약 등 일반으로 근로시간에 관한 합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봐야 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 그런데도 법정근로시간에 관한 근로기준법 제50조를 법정수당 지급기준인 기준근로시간으로 전락시키는 행정해석과 법원판례를 전제로 이번에 노사정 대표자들은 근로시간단축에 관해 합의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근로기준법대로 집행하면 될 일이지, 법정근로시간을 죽이는 해석론에 노동자 대표가 동조하여 합의할 일이 아니다. 법정근로시간, 노동제를 사수하는 것이 노동자권리를 위한 대표의 일이다.

통상임금에 관한 명확한 기준을 입법화하기로 합의했다. 그런데 제외금품에 관해 대통령령인 시행령에 위임해서 정할 수 있도록 했다. 시행령에서 규정할 제외금품을 예시했는데, 첫째 근로자의 건강, 노후생활 보장, 안전 등을 위한 보험료, 둘째 근로자 업적‧성과 등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지급여부‧지급액이 미리 확정되지 아니한 임금, 셋째 경영성과에 따라 사후적으로 지급되는 금품 등이다. 이 노사정 합의대로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시행령을 제개정한다면 어찌될까. 체력단련비·개인연금보험료 등을 실제로 퇴직시까지 지급한다고 해도 통상임금에서 제외된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도 재직자 조건의 상여금, 15일 등 일정 근무일수 조건의 상여금 등 임금은 일부 하급심법원에서 “근로자 업적‧성과 등 추가적인 조건의 충족 여부에 따라 지급여부‧지급액이 미리 확정되지 않은 임금”이라며 통상임금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결해 왔다는 것을 유의해서 합의해야 했다.

이번 노사정 합의에서 주된 논의는 임금피크제·일반해고, 그리고 그 절차로서 취업규칙 변경에 관해서였다. 임금피크제 등 임금제도 개선에 관해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이 고용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연구‧교육, 모델개발‧확산 및 단체협약‧취업규칙 개정에 적극 협력하고 정부의 선도적 역할을 강화”하기로 합의했다. 임금피크제 등 임금체계 개편을 ‘고용친화적인 방향’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단체협약‧취업규칙 개정에 적극 협력하고, 정부의 선도적 역할을 강화”한 점이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에 노조가 적극 협력하고 무엇보다도 그 절차를 정부가 행정지침을 통해서 할 수 있도록 합의한 것이라고 읽힌다. 이는 “노사정은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한 임금체계 개편과 관련하여 단체협약 및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하고 이를 준수”하기로 합의한 부분에서도 재확인되고 있다. 물론 정부가 취업규칙 개정을 위한 요건과 절차를 명확히 한다고는 합의하지는 않았다. 그러니 노사정이 이에 관한 합의가 있어야 한다고, 정부가 일방적으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에 관한 사회통념상 합리성 운운하는 가이드라인이니 뭐니 행정지침을 마련해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읽을 수는 있다. 그러나 노사정 등 행위 주체를 기재한 부분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은 피할 수 없게 됐다. 이번 합의를 두고서 제일 많이 언급되고 있는 것이 일반해고 제도다. “전문가의 참여하에 근로계약 전반에 관한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그 제도개선시까지의 분쟁예방과 오남용 방지를 위하여 노사정은 공정한 평가체계를 구축”하며, “근로계약 체결 및 해지의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하고서 “이 과정에서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히 협의를 거친다”고 합의했다. 여기서도 행위의 주체를 기재한 부분의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을 피할 수 없다. 오히려 이 일반해고에 관한 합의 부분을 읽어 보면 “노사정은 기준과 절차를 법과 판례에 따라 명확히 한다”고 합의하면서도 이 과정에서 정부가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고 노사와 충분히 협의를 하도록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반해고의 기준과 절차를 노사정 합의가 아니라 정부가 제도개선시까지의 분쟁예방 등을 위하여 행정지침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이 아닌가라고 읽히는 지경이다. 노사와 충분한 협의는 노사와 합의 없이 정부가 시행할 수 있도록 허용해 준 합의라는 것이다. 이를 통해서 앞에서 임금피크제 등과 관련한 취업규칙 변경 등에 관한 합의의 의심도 분명해진다. 사실 이번 합의에서 일반해고는 이를 법상 제도로 도입하는 데 대해서 합의했다는 점이 심각한 것이다. 우리의 근로기준법은 제23조에서 정당한 이유 있는 해고와 정리해고만 규정하고 있다. 일반해고는 제23조에서 정한 바에 따라 정당한 이유 없이는 해고할 수 없다. 성과부진자라고 해서 근로계약상 근로를 제공할 수 있음에도 해고하는 것이 정당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와 별개의 해고제도를 도입해서 근로자를 해고할 수 있도록 하겠다니 “근로계약 해지 등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화 하겠다고 일반해고제도 마련에 합의했다는 자체가 이 나라 노동자의 고용보호에 심각한 문제라고 해야 한다.

4. 합의문을 읽었다. 비정규직 확대가 예상되는 비정규직법 개정에 관해서 추가 논의하기로 했고, 주 40시간의 법정근로시간 노동제를 외면했으며, 상여금 등 논란이 되는 임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는 것으로 하지 않고 오히려 시행령으로 제외할 수 있도록 했다. 그리고 임금피크제·일반해고, 이에 관한 취업규칙 변경까지 합의는 노동자권리를 삭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말았다. 그러니 “오늘의 대타협”으로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는 합의가 “청년과 미래세대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 일하기 원하는 사람 누구나 능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오랫동안 일할 수 있는 사회로 가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라는 노사정의 확신을 믿을 수가 없고, 이 전문의 선언이 진정한 것이라고 믿을 수가 없다. 노동자권리를 배신하고서 하는 노사정의 합의에서의 확신은 믿을 수가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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