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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시’라고 일컫는 구미에서 지금 무슨 일이?권영국 변호사(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공동본부장)
▲ 권영국 변호사(장그래살리기운동본부 공동본부장)

지난 5일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 노동조합 투쟁 승리를 위한 연대한마당’에 참석하기 위해 경북 구미시를 다녀왔다. 구미는 박근혜 대통령의 아버지 박정희의 생가가 있는 곳이다. 매년 탄신제가 열린다. 그런데 바로 그 구미 제4공단에 소재한 아사히글라스화인테크노코리아(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서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 50여명이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도대체 구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아사히글라스는 구미4공단에서 LCD용 유리기판을 제조하는 외국인투자회사다. 일본 국적 아사히글라스그룹(AGC그룹)이 출자해 만든 한국법인이다. 아사히글라스그룹은 1907년 설립된 세계 4대 유리제조업체로 일본에 본사를 두고 미국·유럽·아시아 등 여러 나라에 영업 및 제조거점을 가지고 있는 다국적기업이다. 정직원수는 5만1천114명이고 그룹 회장은 타쿠야 시마무라다. 아사히글라스는 외국인투자기업이라는 이유로 2005년 설립 당시부터 경상북도와 구미시로부터 막대한 특혜를 제공받았다. 지역사회에 고용창출 및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하는 대가로 받은 혜택은 12만평의 공장부지 50년간 무상임대, 5년간 국세 전액 감면, 15년간 지방세 감면 등 실로 ‘어마무시한’ 것이었다. 이러한 전폭적인 혜택에 힘입어 아사히글라스는 9년간 연평균 매출 1조원, 연평균 당기순이익 800억원, 사내유보금만 7천200억원에 이를 정도로 막대한 이익을 취해 왔다.

반면 아사히글라스는 직접고용 정직원 800여명 이외에 지티에스(GTS)·건호·우영 등 3개의 사내하청업체와 도급계약을 체결하고 300여명(지티에스 170명, 건호 80명, 우영 50명)의 사내하청 노동자들을 생산라인에 투입해 일을 시켰다. 주중에는 3교대로, 주말에는 주야 맞교대로 365일 동안 단 하루도 공장을 멈춘 날이 없다고 한다. 하청노동자들은 근무연한에 관계없이 9년 동안 똑같이 법정 최저임금만을 받았다. 관리자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불량이 나면 관리자 마음대로 취업규칙에도 없는 ‘빨간 조끼 입히기’라는 처벌을 통해 수치심을 느끼게 했다. 현대판 주홍글씨가 따로 없었다.

장시간 노동과 저임금 그리고 현대판 주홍글씨 등 비인간적인 대우에 참다못한 지티에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올해 5월29일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노동조합을 설립했다. 2주 만에 조직대상 168명 중 138명이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노동조합은 시급을 최저임금에서 8천원으로 인상해 줄 것, 노조전임자 1명 보장, 노조사무실 제공을 요구하며 지티에스와 단체교섭을 진행했다. 그런데 아사히글라스는 사내하청노조가 설립된 지 한 달이 되던 6월30일 사업장 전기공사를 한다는 이유로 조합원으로 가입한 지티에스 소속 노동자 전원에게 휴무를 통보했다. 지티에스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9년 만에 처음으로 주어진 하루 휴무에 즐거워하며 공장 밖을 나섰다. 하지만 바로 그날 원청인 아사히글라스는 하청업체 지티에스에 9년 동안 매년 갱신해 온 도급계약을 해지한다고 통보했다. 도급계약 기간이 올해 12월20일까지로 반년이나 남았는데도 말이다. 아사히글라스는 휴무 다음날인 7월1일 104명의 용역경비를 추가로 고용해 지티에스 소속 노동자들의 사업장 출입을 봉쇄했다. 사내하청업체 지티에스는 원청의 도급계약해지 통보에 맞춰 자사 소속 노동자들에게 출근하지 말 것을 통보하고 7월3일 폐업 및 해고계획을 발표함으로써 노동자 170여명을 정리해고했다. 연대한마당이 열린 9월5일은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노조가 설립된 지 100일, 조합원들이 정리해고된 지 65일이 되는 날이었다. 그들은 폐업과 정리해고에 맞서 7월1일부터 아사히글라스 공장 앞에서 천막농성을 벌이고 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아사히글라스 사내하청노조가 설립되기 전까지 아사히글라스가 위치한 구미4공단은 무노조공단이었다는 것이고, 아시아글라스 사내하청노조는 구미에서 처음으로 설립된 비정규직노조라는 것이다. 구미는 42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중소도시다. 15만명의 임금노동자들이 일을 하고 있다. 그중 제조업에 속한 민주노총 조합원수는 680여명에 불과하다. 한때 1만여명에 달했던 구미공단의 민주노총 조합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이런 환경 탓이었을까. 구미공단에 첫 비정규직노조가 설립되자 아사히글라스 자본을 필두로, 구미시청·고용노동부 구미지청·경찰서가 한통속이 돼 노조 깨기에 혈안이라고 한다. 대한민국의 행정관청들이 노동조합을 설립했다는 이유로 수백 명의 노동자들을 해고한 아사히글라스 외투자본을 처벌하고 부여한 특혜를 환수하기는커녕 법적으로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비정규직노조를 깨는 데 협력하고 있다면 참으로 경악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부친의 출생지에서 자국 노동자들이, 그것도 가장 열악한 처지에 있는 비정규 노동자들이 헌법상 권리인 노조를 설립했다는 이유만으로 수백 명이 일터에서 쫓겨나 고통을 당하고 있음에도, 이를 방치한 채 강행하고 있는 현직 대통령의 노동개혁이란 도대체 무엇인가.

지역사회에서 고용창출이 아닌 심각한 고용불안을 야기하고 있는 외국자본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특혜와 보호를 지속하고 있는 박근혜 정부는 누구를 위한 정부인가. “노동개혁 없이는 청년들의 절망도, 비정규직 근로자의 고통도 해결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담화내용이 얼마나 허구적인 것인가를 보여 주는 단면이다.

“내 가족의 생계를 보장할 좋은 직업을 원하는가. 누군가 내 뒤를 든든하게 봐주기를 바라는가. 나라면 노조에 가입하겠다”며 노조가입을 권유하는 다른 나라 대통령이 부럽다.

권영국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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