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시민호민관에게 중립적 위치를 원하신다면 저는 하지 않겠습니다."

2013년 3월 다른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시행하는 옴부즈맨 제도를 굳이 '시민호민관'으로 이름 붙인 이유를 설명하는 김윤식 경기도 시흥시장의 말이 끝나자마자 임유(52·사진)씨가 한 얘기다. 시흥시가 임씨를 임기 2년의 초대 시민호민관으로 임명하는 자리에서다.

임씨는 지난 8일 <매일노동뉴스>와 만나 "시민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행정기관이나 사법부 등 중립을 표방하는 사람들은 차고 넘치는데 굳이 나까지 더해 중립적일 필요는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당시 "약자들의 편을 일방적으로 들어야 그나마 균형추가 맞을 것"이라는 그에게 김 시장은 "시민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맞장구쳤다.

올해로 시행 3년차를 맞은 시민호민관제는 다른 지역에서도 눈여겨보는 제도다. 일종의 민원조사관인 옴부즈맨 제도의 일환인데, 상근하면서 호민관 혼자서 모든 권한과 책임을 갖는 '독임제'라는 점에서 다른 지방자치단체와 차별화된다. 다른 지자체 옴부즈맨은 보통 복수의 위원들이 비상근 혹은 반상근으로 일하면서 합의제로 운영된다. 처음 시도하는 '상근 독임제'가 성공할지, 실패할지를 놓고 지켜보는 눈이 많았다.

임씨는 올해 3월 초대 시민호민관 임기를 '무사히' 마쳤다. 그는 금융업계에 몸담은 뒤 벤처사업가·청와대 행정관·여신금융협회 상무·연구원·언론인·중소기업 경영자를 거쳤다. 다양한 경력이 말해 주듯 상담사와 법률가의 영역을 넘나들며 시민들의 민원을 해결하고 억울함을 풀어 줬다. 임기 동안 고충민원 100여건과 일반민원 300여건을 해결했다.

최근에는 호민관 시절 만났던 억울한 시민들의 사연과 해결 과정을 모아 <시민은 억울하다>는 책을 펴내기도 했다. 임씨의 호민관 생활 2년이 궁금했다. 현재 인성회계법인 전무로 일하는 그를 서울 여의도 한 커피숍에서 만났다.

임기 초반 3개월 "같이 밥 먹자는 사람 없더라"

- <시민은 억울하다>를 읽어 보니 보람도 컸겠지만 많이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민관 분투기'라는 표현을 썼는데.


"아무래도 처음 시도한 제도니까…. 그냥 옴부즈맨이라고 했으면 부담이 덜했을 텐데. 그래도 김윤식 시장이 굳이 '호민관'이라고 이름 짓고자 했을 때에는 이유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실제 시장의 의지가 컸다. 시민의 대변자, 시민의 편을 들어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라 2010년 시장이 되고 나서 2년 동안 준비했다고 했다. 김 시장에게 부응하기 위해, 시민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 행정의 잘잘못을 따지고 감시하는 역할을 했다. 공무원들이 견제하거나 반발했을 것 같은데.

"초반 3개월은 함께 밥 먹을 사람이 없더라.(웃음) 주야장천 호민관 일을 도와주는 6급 공무원과 둘이서만 먹었다. 좀 외롭더라. 호민관을 보는 시선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 시민들의 민원이 주로 인·허가 문제에 집중되다 보니, 건축과·주택과·위생과 등 주무부서와 끊임없이 긴장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노하우도 생겼다. 윗사람이 아니라 실무자하고 직접 토론을 하는 것이다. 국장이 호민관에게 설명할 의무가 있지만 그렇게 하면 실무자들에게 불똥이 튈 수도 있다. 그래서 한 번도 과장급 이상을 불러 본 적이 없다."

- 호민관이 의견표명이나 시정권고를 하면 시가 제대로 반영하나.

"초반에는 거의 다 불수용 답변이 왔다. 진짜 충격 먹었다.(웃음) 일단 민원이 들어오면 법 공부를 엄청한다. 아는 변호사 통해 물어보고 판례 검토 다하고 논리무장을 완벽히 한 뒤에 실무자를 불러 토론을 했다. 실무자들이 설득을 당하면 '이러저러하니 다시 한 번 해 봅시다'라고 돌려보낸 다음 공문서를 쓴다. 의견표명이나 (시정)권고를 하는 거다. 의견표명은 수위가 낮고, 권고는 수위가 높다. 초창기에는 되도록 의견표명 중심으로 썼다. 권고를 하면 아무래도 (공무원들이) '잘못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으니까. 나중에 진급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고 해서 웬만하면 의견표명으로 써서 보냈다. 그런데 웬걸, 조치 결과가 전부 불수용이었다."

그는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김윤식 시장을 독대했다. 호민관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려면 조치 결과에 대한 결재를 과장전결이 아니라 시장이 해 달라고 요구했다. 그러자 김 시장은 호민관제도 시행 첫해 하반기에 시장에게 결재를 받고 나서 조치 결과에 대한 답변을 하라고 지침을 내렸다. 임씨는 "시장 결재를 거치니까 수용률이 70~80%까지 쭉 올라갔다"고 말했다. "현행법 때문에 안 됨"이라며 한 줄에 불과했던 불수용 사유도 '길게' 왔다.

"옴부즈맨(호민관)제도는 행정 프로세스가 얼마나 세밀하고 구체적이냐, 단체장이 얼마나 해당 제도에 대해 관심이 높은가에서 성패가 갈린다. 단체장이 무관심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임씨는 이 대목에서 "자칫 전체 공무원을 매도하는 것 같아 조심스럽다"고 했다. 사실 재량권을 가진 공무원들이 민원처리 과정에서 복지부동하거나 보신주의로 움츠리는 데에는 감사원 감사가 자리 잡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융통성을 발휘하고 싶지만 그렇다고 감사원 감사에서 미운털이 박힐 수는 없는 노릇이다.

임씨는 "호민관이나 옴부즈맨의 권고로 시정할 경우 감사 대상에서 제외해 줘야 보다 적극적인 행정이 이뤄질 수 있다"며 "감사원법에 구체적인 조문을 만들어 옴부즈맨제도를 활성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옴부즈맨 성패 열쇠는 단체장의 의지"

- 지금 생각해도 잘했다고 생각하는 고충처리가 있다면.


"밭에서 잡초를 베던 70대 할아버지가 웅덩이 빠져 크게 다친 사건이 있었다. 조사해 보니 시흥시가 할아버지 밭 옆에서 진행한 배수로 공사를 부실하게 해서 웅덩이가 파인 것이었다. 할아버지는 치료비와 가료기간에 못 받게 된 한 달치 아파트 경비 급여만 요구했다. 합리적인 요구였다.

그런데 시에서는 국가배상법 신청서류를 줬다. 갈비뼈 네 개가 부러진 노인이 언제 안산까지 가서 배상심의회에 배상을 신청할 수 있나. 결정적인 건 배상심의회가 다시 시흥시로 이첩해 공무원이 조서를 쓰고, 배상심의회는 그걸 가지고 다시 판단을 한다. 최소 4주에서 6주가 걸린다. 할아버지의 지극히 합리적인 요구에 대해 손해배상 책임이 있는 시가 피해구제를 서두르지 못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결국 담당공무원이 수용했다. 그 할아버지가 음료수 한 상자 사 들고 와서 고맙다며 한참을 울고 가신 일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아쉬운 지점도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시흥시 영조물 배상조례를 만들자고 했다. 배상심의회를 거치지 말고 시에 위원회를 만들어 여기서 해결하자고 했는데 거부당했다. 작은 사건에서 시작해 제도개선까지 나아가 보려고 했는데…. 제도개선은 하지 못했다."

- 옴부즈맨제도가 있으나 마나 한 제도라고 보는 시각도 존재하는데.

"있으나 마나 해도 있어야 한다. 그래도 동네에 자기 편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나. 그런 사람 한 명 정도는 자치단체에서 돈 줘 가면서 둬야 한다고 본다. 옴부즈맨·호민관제도의 성과는 단체장 의지에 달려 있다. 물론 의지로만 남겨 둬서는 안 되고 법으로 뒷받침해야 한다. 옴부즈맨의 권고적 효력을 실제적 효력으로 바꾸는 것도 시급하지만 단체장 전결권 확보라든가 시정권고를 수용했을 경우 감사에서 면제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 이런 몇 가지가 담보된다면, 옴부즈맨제도는 실효를 거둘 수 있다. 많은 민원을 해결하지 못하더라도 그걸 낭비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