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태욱 변호사(금속노조 법률원·법무법인 여는)

대상판결/ 서울중앙지방법원 2014가합557402 임금

1. 사건 개요

㈜대교는 직급정년(일정 연수 동안 승급하지 못하면 직급정년에 해당. 적용유예 및 구제절차 존재) 및 연령에 따른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있었다. 1차 임금피크제(순차로 20%·30%·40% 삭감)는 2009년 5월20일 최초 도입(총 3천331명, 찬성률 84.4%)됐고, 삭감률이 강화된 2차 임금피크제(순차로 30%·40%·50% 삭감)가 2010년 12월14일 시행(총 2천956명, 찬성률 91.4%)됐다. 원고들은 직급정년에 의한 1·2차 임금피크제가 ①동의 대상이 아닌 자들까지 포함해 동의 절차가 진행됐고 ②회의와 토론에 의한 집단적 의사결정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았기 때문에 무효(절차적 무효)이고 ③사회적 신분에 따른 차별이고 ④삭감률이 과도해 무효(근로기준법 제95조 감급제재 제한 위반, 민법 제103조 위반)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법원은 대교의 임금피크제가 집단적 의사결정에 의한 동의가 실질적으로 보장됐다고 볼 수 없어 무효라고 판단했다. 판결 요지는 아래와 같다.

2. 판결 요지

가. 불이익변경 동의 주체

원고들은 이 사건에서 G6등급·인턴·계약직 근로자들은 별도의 평가 내지 심사 절차를 거쳐야만 G4이상 직급으로 승급이 가능하므로 임금피크제가 적용될 일반적 가능성이 없어 동의 주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들이 “향후 도입될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는 이유로 동의 주체가 된다고 봤다.

나. 동의의 방식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에 필요한 근로자 과반수 동의는 가능한 사용자측 영향력이 배제된 상태에서 상호 의견·토론 등 집단적 논의를 거쳐 취업규칙 변경을 수용할 것인지 여부를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기회를 실질적으로 보장받았는가라는 관점에서 판단함으로써 집단적 근로조건의 대등 결정이라는 취지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따라서 적법한 동의가 있었는지 여부는 근로조건의 불이익변경 정도, 개별 근로자들에게 미치는 영향, 사용자측이 불이익변경을 추진하게 된 경위, 해당 기업의 영업방식과 노무관리 형태 등에 비추어 의견수렴이 이뤄지는 개별 국면에서 의사결정의 자율성 침해와 관련해 지적될 수 있는 현실적 문제 등을 전체적으로 종합해 이뤄져야 한다고 했다.

1) 근로조건의 저하 정도

이 사건 임금피크제 도입 필요성이 근로자들을 설득할 만한 합리성·구체성을 갖췄다고 볼 수 없는 점을 고려하면 집단적 의사결정 방식에 따라 이뤄졌는지를 그만큼 신중하고 엄격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2) 의견취합의 방식

가) 설명 홍보의 정도

회사가 간략한 설명과 의견 취합 일정 등을 기재한 서면에다 변경되는 내용을 요약한 것을 사내 홈페이지 등에 게시한 것 외에 개정의 필요성, 그 효과 등을 직원들을 상대로 직접 설명했다는 정황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나) 의견 취합의 시간

1차 변경은 5일, 2차 변경은 3일간의 기간이 있었으나, 원고들의 업무(외근 업무가 많음) 특성, 행랑에 의한 의견취합, 위 기간 중 있었던 휴일기간 등을 고려하면 실제로 의견취합이 이뤄질 시간이 부족했다.

다) 의견취합 단위와 방식

회사의 가장 말단 단위(근무인원은 30~40명이지만,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의 동의 대상은 대부분 5명 이하이고 1~2명에 불과한 경우도 있었음)에서 동의를 받았는데, 다른 교육 행사 등은 교육국 이상의 단위에서 시행하면서도 유독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만 교육국 단위에서 한 것은 집단적 논의를 배제하기 위한 의도로 보인다. 기명(記名) 방식으로 의견을 취합한 것도 집단적 의사 결정과 자율성을 상당히 위축시켰을 것으로 볼 수 있다.

3) 소결

이 사건의 경우 불이익하게 변경되는 내용에 대한 설명의 내용, 방법, 의견취합을 위해 부여한 시간, 의견취합의 단위와 방법, 근로조건의 불이익 정도와 그 필요성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면 집단적 의사결정 방법을 통해 1·2차 임금피크제 도입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실질적인 기회가 부여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 따라서 원고들은 임금피크제 도입으로 삭감된 금액을 임금 혹은 손해배상으로 청구할 수 있다.

다. 사회통념상 합리성 유무

임금피크제 도입의 필요성으로 내세운 사정은 지극히 추상적인 반면 불이익변경 정도는 극심하므로 일부 대상조치에도 불구하고 사회통념상 합리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라. 동의절차 위반의 효과

(실체적 하자와 무관하게) 적법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절차를 거쳤다고 볼 수 없으므로 무효다. 따라서 삭감된 임금상당액을 임금 내지 손해배상으로 구할 수 있다.

3. 판결의 의의

가. 집단적 근로조건의 대등 결정이 실질적으로 보장됐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했다.

근로기준법 제94조제1항 단서에서 정한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의 근로자 과반수 동의”는 대법원 77다355 판결 등을 1989년 입법화한 것이다. 당시 대법원 판결에 따르면 이는 “근로조건 대등 결정의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이번 판결은 “근로조건 대등 결정의 원칙”을 집단적 회의방식의 동의, 사용자의 개입·간섭과 같은 몇 가지 정형화된 요소뿐 아니라 의견수렴이 이뤄지는 개별 국면에서 의사결정의 자율성 침해와 관련해 지적될 수 있는 현실적 문제 등을 종합해 “집단적 의사 결정이 실질적으로 보장됐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판단한 의의가 있다. 그간 법원의 판결례를 보면 인원이 많고 동의율이 높으면 그 효력을 부정하기 쉽지 않았는데, 이 사건의 경우 상당히 많은 인원과 높은 찬성률에도 실질적 관점에서 '동의'를 파악함으로써 무효라고 판단할 수 있었다. 근로기준법 제94조제1항 단서의 입법취지에 충실한 판단이다.

나. 부서 단위 동의의 한계를 명확히 했다.

대법원 92다39778 판결 이래 다수의 대법원 판결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시 “단위 부서별로 사용자측의 개입이나 간섭이 배제된 상태에서 근로자 상호간에 의견을 교환해 찬반 의견을 집약한 후 전체적으로 취합하는 방식”도 허용된다고 했다. 이러한 판결을 빌미로 이 사건 사용자도 최소 말단 단위인 교육국 단위에서 동의 절차를 진행했다. 그러나 부서 단위로 동의를 받는 경우 부서 단위가 작으면 작을수록 사용자의 개입이 용이해지고, 집단적인 의사 결정은 어려워질 가능성이 높아진다.

특히 이 사건 사용자처럼 다른 여러 행사는 교육국 이상 단위에서 하는데 유독 취업규칙 불이익변경만 최소 말단 단위인 교육국을 고집하는 경우 집단적 의사결정을 사실상 배제하거나 축소하려는 불순한 의도가 있는 것이다. 이번 판결이 최소 말단 부서단위로 동의를 받은 점만으로 무효로 본 것은 아니지만 사용자의 불순한 의도를 정확히 지적하고 무효 판단의 한 요소로 봤다. 부서 단위 동의를 받는 것이 개별 동의를 취합하는 것과 유사한 정도에 이른다면 이는 무효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다. 불이익변경의 동의 주체에 관해 판단 기준이 보강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불이익변경의 동의 주체도 쟁점이 됐는데, 문제가 된 직급들의 경우 별도의 심사 내지 평가절차를 거쳐야만 임금피크제 적용이 가능한 상황이었고, 그 심사 내지 평가절차, 승급 비율 등이 명확히 밝혀진 것은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 직급의 인원들은 동의 대상에서 제외됨이 타당한데 이번 판결은 “임금피크제 적용을 받게 될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동의 주체가 된다고 봤다. “적용이 예상되는지 여부”를 기준으로 보는 대법원 판결에 따른 것으로 보이나, 적용될 가능성이 매우 낮거나 그 가능성이 입증되지 않았다면 동의 대상에서 배제되는 것으로 봄이 타당하다. 적용가능성이 매우 낮거나 밝혀지지 않았음에도 동의 주체로 포함시키면 이는 “집단적 자기 결정”이 아닌 “집단적 타인 결정”이 돼 버릴 수 있고 입증책임에도 반한다. 향후 “적용이 예상된다는 것”의 의미를 좀 더 구체화하고 보강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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