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오늘도 이 나라는 ‘기업을 위하여’ 말하고 행동하기에 바쁘다.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7일 침체에 빠진 수출을 되살리기 위해 노동개혁과 기업 경쟁력 강화 등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이날 오전 서울 무역보험공사에서 철강·조선·자동차·석유·석유화학 협회장 및 상근부회장단과 김재홍 코트라 사장·김영학 무역보험공사 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수출 부진업종 긴급 점검회의’를 열고 이같이 말했다. 윤 장관은 그러면서 우리나라 수출 체질개선을 위한 과제로 노동개혁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생산성 향상이 수반되지 않는 고임금 구조가 지속되면 그동안 어렵게 쌓아 온 국내 산업 경쟁력이 물거품처럼 사라질 수 있다"며 "추석 전에 노동개혁 관련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해야 관련 예산을 적기에 확보할 수 있으니 9월10일까지는 노동개혁을 위한 노사정 합의가 이뤄지길 촉구한다"고 말하며 노동개혁에 관한 정부의 행동을 예고했다.

집권 새누리당도 이날 노조 파업 장기화로 직장폐쇄를 결정한 최근 금호타이어 사태를 예로 들며 정기국회 안에 노동개혁 관련 입법안을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는 "현재 회사측은 4.6%의 임금인상안과 임금피크제 연계를 제시했는데 노조측과 최종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기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정상궤도에 진입하려면 노사가 한배를 탄 공동체임을 인지하고 상생 화합을 이루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기업을 위한 말을 했다.

새누리당 노동시장선진화특별위원회 위원장인 이인제 최고위원도 파업을 핵폭탄에 비유하며 "파업은 과거에는 모르겠지만 오늘날에는 정말 함부로 써서는 절대 안 되는 무기"라며 "노사정위원회에서 대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이뤄야 할 마지노선이 9월10일"이라며 “노조 지도자들께서 정말 사려 깊게 행동해 달라”고 말했다. 이날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노사정위원회가 다시 가동됐는데 올해가 노동개혁의 마지막 기회라는 각오로 상생의 합의를 이뤄 내야만 한다. 더 이상 지체하거나 기다릴 시간이 없다"며 노사정 대타협을 촉구했다. 박 대통령은 같은날 오전 대구경북과학기술원에서 열린 대구시 업무보고에서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고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 개혁으로 청년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또 "대구지역 공공기관은 물론 기업들이 임금피크제 도입을 비롯한 노동개혁에 솔선수범해 주셔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렇게 정부가 예산안 제출 시점인 10일까지 대타협을 이루지 못하면 정부안을 강행하겠다고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노사정위원회는 이날 오후 정부서울청사에서 '노동시장 구조개선 관련 쟁점토론회'를 열었다. 이상이 7일 하루 동안 이 나라에서 기업을 위하여 했던 권력의 말이었다. 9월10일까지로 시한을 설정하고서 행동하겠다고 압박하면서 한 힘센 말이었다.

2. 임금피크제·일반해고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국회 예산제출 시한을 앞두고서 정부와 여당 권력자의 말로 몰아쳐 대고 있다. 이제 숨김없이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생산성 향상을 위한 임금삭감이고 쉬운 해고를 통한 노동유연화라고 권력은 노동개혁의 실체를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다. 대타협 시한이라는 10일까지 타협을 압박하기 위해서 이 나라 권력은 더욱 노골적으로 기업을 위하여 말하고 행동할 것이다. 권력은 이미 노동시장 구조개혁안을 제시해 놓았다. 임금피크제 없는 정년연장도, 일반해고 없는 해고제한도, 비정규직 없는 비정규직 철폐도 권력이 말하는 노사정 대타협이 아니다. 임금피크제로 임금을 삭감하면서 정년연장하고, 일반해고제로 보다 쉽게 해고하며, 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등으로 비정규직을 보다 폭넓게 사용할 수 있도록 대타협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노동을 위하여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지금 이 나라에서 권력이 할 일이 아니다. 기업을 위해 말하고 행동하는 것만이 권력이 할 일이라고 온통 노동시장 구조개혁으로 야단이다. 기업을 위하는 것이 권력의 일이 되고 있으니 이 나라에서 정부는 기업의 고충처리위원회라고 해야 할 지경이다.

3. 기업. 노동사건에서 기업은 노동의 전제이고, 존재이유가 된 지 오래다. 기업이 존립하지 않고는 노동은 없다고 말하고, 기업이 위태로우면 노동자는 없다고 판결해 왔다. 오늘도 법원은 이렇게 판결하고 있다. 우리 세상의 법을 선언해 왔다. 그래서 노동은 폐업의 자유를 넘어설 수 없고, 노동자는 긴박한 경영상 필요로 해고될 수 있다고 법의 이름으로 법원은 선언해 왔다. 이런 세상에서 나는 폐업에 관한 노동법 토론을 했다. 발제자로 발표하고 토론자로 토론했다. 이런 나라에서 나는 기업에서 노동자 권리가 부당하게 짓밟혔다며 상담하고 재판해 왔다. 이 나라에서 법은, 법원은 기업이 노동의 전제라고 그 존재이유라고 선언함으로써 노동관계에서 기업의 인격인 사용자는 노동자에 대한 절대 우위에 서게 된다. 그것으로 법적으로 노동과 대등한 근로계약 당사자의 지위에 불과했던 사용자 자본이 그 지위를 초월한 자리에 올라선다. 대등한 계약상 지위가 법원 판결에서 결코 대등할 수 없는 절대 우위의 관계가 된다. 이것이 우리 세상의 법원이 판결로 선언해 온 질서였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다고 논의하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사용자 자본의 자유와 권리가 노동자의 자유와 권리 위에 서 있다고, 그것을 법의 질서라고 선언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기업의 자유를 내세워 노동의 자유를 부정할 수 있는 자본의 논리를 판결로 확인해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말이다. 적어도 헌법이 기업의 자유와 함께 노동의 자유 내지 기본권을 보장하고 있는 것이라면 기업을 노동의 전제 내지 존재이유로 파악해서는 안 된다. 노동을 기업의 전제 내지 존재이유라고까지는 말할 수 없을지라도 말이다. 그러니 적어도 다음과 같이 판시한 대법원의 판결이유를 부정할 수 있어야 한다.

4. “경영권과 노동 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이를 조화시키는 한계를 설정함에 있어서는 기업의 경제상의 창의와 투자의욕을 훼손시키지 않고 오히려 이를 증진시키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함을 유의하여야 한다. 왜냐하면 기업이 쇠퇴하고 투자가 줄어들면 근로의 기회가 감소되고 실업이 증가하게 되는 반면 기업이 잘되고 새로운 투자가 일어나면 근로자의 지위도 향상되고 새로운 고용도 창출되어 결과적으로 기업과 근로자가 다 함께 승자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추상적인 이론에만 의존하여서는 아니되고 시대의 현실을 잘 살펴 그 현실에 적합한 해결책이 모색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 서서 오늘의 우리나라가 처하고 있는 경제현실과 오늘의 우리나라 노동쟁의 현장에서 드러나는 여러 가지 문제점 등을 참작하면, 구조조정이나 합병 등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경영주체의 경영상 조치에 대하여는 원칙적으로 노동쟁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해석하여 기업의 경쟁력 강화를 촉진시키는 것이 옳다. 물론 이렇게 해석할 경우 우선은 그 기업에 소속된 근로자들의 노동 3권이 제한되는 것은 사실이나 이는 과도기적인 현상에 불과하고, 기업이 경쟁력을 회복하고 투자가 일어나면 더 많은 고용이 창출되고 근로자의 지위가 향상될 수 있으므로 거시적으로 보면 이러한 해석이 오히려 전체 근로자들에게 이익이 되고 국가경제를 발전시키는 길이 된다.”(대법원 2003. 7. 22 선고 2002도7225 판결) 대법원이 기업을 위하여 내린 판결의 이유였다. 이러한 이유로 대법원은 “기업의 구조조정의 실시 여부는 경영주체에 의한 고도의 경영상 결단에 속하는 사항으로서 이는 원칙적으로 단체교섭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그것이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나 합리적인 이유 없이 불순한 의도로 추진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노동조합이 그 실시를 반대하기 위하여 벌이는 쟁의행위에는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런 이유, '기업을 위하여'를 노골적으로 말하는 판결을 읽는 것이 낯부끄럽다. 부정하기 위해서 읽지만 그래도 이것이 이 나라에서 최고법원의 판결문이라니 당장 쓰레기통에 버리고 싶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는 법을 만드는 권력자뿐만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에서 노동자 권리를 규정한 법을 선언하는 법원까지도 '기업을 위하여'로 노골적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 권력이 하는 말을 듣다 보면 기업은 사용자 자본이 주인이 아니라는 착각에 빠진다. 노동자도 함께 공유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감히 이렇게 '기업을 위하여'를 노골적으로 판결로 말할 수는 없을 테니 말이다.

5. 지금 이 나라에서 기업을 위하여 하는 권력의 말과 행동에서 ‘노동자를 위하여’는 찾아볼 수가 없다. 기껏해야 늙은 노동자의 권리를 삭감하거나 몰아내는 것이 청년노동자 일자리 대책이다. 기업이 자본과 노동의 결합이라면 노동을 죽이고 자본을 위하는 일만이 기업을 위한 일은 아니다. 자본과 노동 모두를 위하는 일도 기업을 위한 일이고, 어떤 경우는 노동을 위하여 자본의 권리를 삭감하는 것도 기업을 위하는 일이 될 수 있다. 자본의 권리에 관해서는 삭감을 말하지 않고서 일방적인 노동의 권리 삭감을 위해 오늘도 이 나라에서 권력은 노동개혁을 말하고 행동하고 있다. 기업의 나라에서 노동자 권리는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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