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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극화에 무력한 기업별노조 체제, 한일 공통의 문제
▲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현대 세계 질서의 성립 과정은 하나의 민족국가(nation state) 형성과 맞물려 있다. 각국은 자기 안에 문화·제도적으로 독특한 성격을 갖는 사회경제적인 구성체(arrangements)를 지니게 됐다. 그것은 다른 나라에서 쉽게 학습하기 어려운 여러 가지 전제조건을 지니기 때문에 국가 간에 손쉬운 정책학습이 이뤄지는 것을 제약한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지리적·역사적으로 많은 것을 공유하는 이웃나라들의 경우 그렇지 않은 먼 나라들에 비해 서로의 모습에서 유사성을 발견하기 쉬운 편이고 적지 않게 상호 간에 영향을 주고받곤 한다.

한국과 일본이 대표적인 예다. 국가 주도 고도성장과 대기업 중심 수직계열화된 산업구조, 기업별노조의 성립과 작동 등 두 나라는 경제사회적으로 많은 모습에서 유럽이나 북미의 다른 선진자본주의와는 상이한 독특한 모습을 공유하고 있다. 일본에 비해 산업화와 자본주의화에 있어서 더 늦게 출발한 한국은 지난 수십년간 일본의 모습을 많이 카피하면서 자신의 제도를 발전시켜 왔다. 고용 및 노동과 관련한 정책과 제도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오늘날 두 나라는 유사한 문제에 직면해 있다. 바로 일본에서는 ‘격차 사회’라고 부르고, 한국에서는 ‘양극화 사회’라고 부르는 문제다. 핵심 배경은 고용형태 분화다. 오랫동안 정규직 중심의 안정된 노동시장 질서를 유지해 온 두 나라가 지난 90년대를 지나면서 용역·하청·아웃소싱·파견 등 비정형 고용형태를 제도적으로 인정하면서 그것이 노동시장에 광범위하게 침투한 것이다.

여기에 기업별노조 중심 노사관계는 두 나라 모두에게 경제적 분배를 이루는 사회적 메커니즘에서 비정형 고용형태를 취하는 노동계급의 상당수를 사회적으로 배제시키는 결과를-의도치 않게(?)-초래했다. 정규직 중심의 기업별 임금교섭은 양극화를 확대·재생산하는 원인이 됐다. 그리고 주지하듯이 이러한 문제의 배후에는 저성장 내지 불황의 만연이라고 하는 경제구조적인 제약이 자리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법적으로 차별을 금지시키는 제도를 아무리 강조해도 현실에서 구조화된 불평등과 그것의 확대·재생산을 제어하기는 매우 어렵다. 민간경제의 두 주체인 노와 사가 포괄적인 대표성을 지니고서 이러한 문제들을 합의해 나가고 인식의 기준을 마련하면서 조율된 행동을 질서 있게 행하는 것이 필요하지만, 기업별노조 중심으로 형성된 노사관계는 두 사회 모두 업종 전반에 걸쳐 만연해 가는 격차와 양극화 경향에 속수무책이다. 제도적으로 자기사람이라고 받아들여지기 쉽지 않은 사내하청 비정규 노동자를 위해 투쟁하는 정규직, 정사원 노동자의 모습을 기대하기는-인간의 본성상-쉽지 않은 일이다.

요컨대 한국과 일본 두 나라는 산업화와 고도성장을 달성하면서도 어느 정도 분배의 형평성을 이루는 데 기여한 노사관계 시스템이 사회기능적으로 한계를 보이고 있다. 정규직과 기업별노조 중심으로 구조화된 기존 질서는 노동시장이 사회통합을 저해하고 분배구조를 악화시키는 쪽으로 작동하는 현재의 문제를 제어하기에 역부족인 것이다.

이는 지난달 27일 열린 제15차 한일노동포럼에서 두 나라 참가자들 사이에서 교환된 주된 논지이기도 하다. 한일노동포럼은 두 나라에서 정부를 대상으로 고용노동정책 자문을 행하고 연구를 수행하는 전문싱크탱크인 한국노동연구원(KLI)과 일본노동정책연구·연수기구(JILPT) 관계자들이 모여 1년에 한 차례씩 주제를 정해 서로의 연구와 고민을 나누는 장이다. 올해는 '노동시장 격차 확대 현황과 정책과제'라는 주제로 부산에서 열렸다. 양국 노동시장에서 전개되고 있는 고용형태 분화양태와 그에 따른 구조화된 격차의 심화양상, 하층부 고용 종사자들의 양적 증대와 그들이 겪는 고용조건 악화의 심각성 그리고 그것의 개선책을 놓고 허심탄회한 논의를 하루 종일 전개했다.

필자는 포럼에 참가하면서 과거 두 나라의 발전을 이끌었던 제도가 현실의 문제 앞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고용 분화를 인정하면서 자본의 효율성과 이득을 보장한 결과 사회와 노동의 저질화가 바닥에 만연하고 그나마 교섭과 고용안정의 수혜를 입은 상층 조직노동의 발목을 잡는 현상에 두 나라 모두 빠져 있는 것이다.

노사관계가 고용관계를 사회통합적으로 제어(govern)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두 나라 상황은 과연 경제와 사회의 관계는 어떠해야 하는지, 노동조합이 사회적으로 그 본연의 기능을 다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존재방식을 취해야 하는지에 관해 깊은 성찰을 요구한다. 일본 노동법 연구의 대가이자 당일 행사를 주도한 JILPT의 스게노 가즈오 이사장이 행사를 마치며 던진 마무리 발언이기도 하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박명준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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