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 끝에 재개한 노사정 협상이 갈수록 점입가경이다. 복병으로 떠오른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문제로 31일 열린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 간사회의는 파행으로 끝났다.

게다가 경영계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넘어 "임금체계 개편을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며 법·제도 개선을 공개적으로 요구하고 나섰다. 정부는 예산편성을 이유로 "10일까지 노사정 협상을 끝내 달라"고 압박하고 있다. 노사정 간 이견이 좁혀지기는커녕 확대하는 모양새다.

노동시장특위 간사회의 파행, 꽉 막힌 임금피크제 교섭

노사정에 따르면 이날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노사정위 회의실에서 열린 노동시장특위 간사회의는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문제로 파행을 빚었다. 이병균 한국노총 사무총장은 “노사정 대표자들이 공공기관 임금피크제를 논의할 협의체 구성에 합의했는데 이마저도 지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간사회의를 진행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말한 뒤 회의장을 떠났다.

노사정은 당초 이날 회의에서 올해 4월까지 진행된 노사정 간 쟁점을 정리하고 7일로 예정된 토론회 주제를 결정하려 했다. 노사정위 관계자는 “협의체 구성을 기획재정부에 요청했고 이를 위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며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문제로 다른 사항에 대한 논의가 진척되지 못했지만 조만간 하나둘씩 정리해 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7일 토론회 주제를 놓고도 노사정 간 의견이 달라 조율이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와 노사정위는 지난 27일 노사정 대표자 간담회에서 쟁점에 대해 토론회를 개최하기로 한 만큼 일반해고·취업규칙이 핵심 주제여야 한다는 입장이다. 반면 한국노총은 두 의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여는 것 자체가 강행의도를 내포한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올해 5월 정부가 관련 주제로 열려던 공청회도 막았는데, 공개토론회 개최 요구를 수용할 수 있겠냐”고 반문한 뒤 “최근 가장 중요한 이슈인 청년일자리 문제를 토론회 주제로 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목청 높이는 경영계, 합의 압박하는 정부

경영계는 장외에서 정부와 노동계를 압박했다. 경제5단체 부회장들은 이날 오전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저성과자 퇴출제와 취업규칙 변경기준 완화를 법제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동안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았던 경영계가 노사정 협상 재개를 기점으로 다시 목청을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경영계는 임금피크제를 넘어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취업규칙 변경도 불이익변경에 포함되지 않도록 법제화해 달라고 요구했다. 김영배 한국경총 부회장은 “근로자들에게 지불하는 임금총액을 줄이지 않는 범위 내에서 임금체계를 개편하거나 임금피크제를 도입하는 것은 근로조건의 합리적 개선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경영계의 이러한 주장은 일반해고·취업규칙은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한국노총 입장에 배치될 뿐만 아니라 두 안건을 장기과제로 넘겨 노사정 합의에 속도를 내자는 사회적 공감대에도 반하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는 예산편성을 이유로 10일까지 노사정 합의를 도출하라는 압박을 멈추지 않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날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언론간담회에서 “노사정이 내년도 정부 예산안 국회 제출 전날인 10일까지 합의하면 거기에 맞춰 사회안전망 예산을 확충하도록 지원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낮은 수준으로 반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최 장관은 “(그 이후로는)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타협 수준을 봐서 반영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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