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길
역사연구가

“연대·연합을 통해 우리 편을 만드는 전선운동은 사라지고 정당운동에 매몰된 채 오직 경쟁논리에 의해 지배되고 있다.”

이 문장은 현재 한국 진보운동이 안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최대한 단순화시켜 표현하고 있다. 경쟁논리는 당 대 당 관계만이 아니라 정당 내부 그룹 심지어 개인과 개인 관계까지 지배하고 있다.

러시아혁명 이후 세계 진보운동의 경험은 전략적 승리의 요체는 전선을 잘 형성하는 것임을 웅변해 주고 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중국에서의 2차 국공합작은 전선 형성의 극치를 보여 준다.

1937년 7월8일 베이징 근처에서 훈련 중이던 일본군은 중국군으로부터 총격을 받았다는 이른바 노구교사건을 빌미로 베이징으로 진격했다. 중일 전쟁이 터진 것이다. 공산당은 모든 역량을 항일전으로 집중시키기 위해 국민당과 2차 국공합작을 성사시켰다. 소비에트 정부는 자치 정부로 바뀌었고 공산당 산하 홍군은 형식적으로 국민당 산하 8로군으로 편제됐다. 항일전 기간 동안 공산당은 토지 몰수 계획을 중단했고 대신 소작료를 감축했다. 아울러 공직자에 대한 직접선거가 실시됐는데 공산당은 자신의 대표를 3분의 1로 제한하고 국민당과 당파에 속하지 않은 나머지 사람들이 3분의 2를 유지하도록 노력했다.

일본군은 철도와 도로를 통해 이동하면서 해안을 따라 발달한 대도시를 점령하는 데 역점을 뒀다. 이러한 일본군의 작전 전개 때문에 대도시를 기반으로 삼고 있는 국민당의 행정조직은 남김없이 무너졌고 국민당 군대 역시 그 기반이 급속히 약화되고 말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국민당은 해안지대를 포기하고 내륙 깊숙한 곳에 있는 충칭으로 본거지를 옮겨야 했다. 반면 공산당 산하 홍군은 마오쩌둥의 지구전 원리에 따라 일본의 발길이 미치지 않는 광활한 농촌을 무대로 유격전을 전개함으로써 역량 손실을 최소화하면서도 일본군에게 효과적인 공격을 가했다. 그리하여 공산당과 홍군은 항일 전쟁을 주도하면서 급속하게 세력을 키울 수 있었다. 항일전이 승리로 끝났을 무렵 공산당은 정치적 힘에서나 무력에서나 국민당을 훨씬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2차 세계대전 종전과 함께 국공내전이 벌어졌고 공산당은 최종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우리 현대사를 되돌아보면 역사의 전진을 보장했던 전선으로서 세 가지가 떠오른다. 민주 대 독재, 평화 대 냉전, 개혁 대 수구 전선이 바로 그것이다.

1980년대 민주 대 독재 전선은 민주세력 내부에 친미와 반미라는 이념 차이가 존재했음에도 의연히 유지됐고, 끝내 민주화투쟁을 승리로 이끈 원동력이 됐다. 평화 대 냉전 전선은 2000년 남북 정상회담을 계기로 형성됐는데, 합리적 보수층이 평화야말로 최선의 안보임을 인식하고 대거 평화세력으로 합류함으로써 냉전세력을 소수세력으로 전락시키는 혁명적 변화를 야기했다. 평화 대 냉전 전선은 개혁 대 수구 전선을 태동시켰다. 이는 노무현 정부 탄생에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2002년 대선 때 정몽준 후보가 막판에 노무현과의 후보 단일화 합의를 파기했음에도 정몽준 지지자들 대부분은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다. 개혁 대 수구 전선이 형성돼 있는 조건에서 정몽준 지지자들은 스스로 개혁진영에 속한다고 봤고, 자연스럽게 같은 편이라 여긴 노무현 후보에게 표를 던졌던 것이다.

이렇듯 민주 대 독재, 평화 대 냉전, 개혁 대 수구 전선이 이어지면서 우리 역사는 전진을 거듭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같은 흐름은 2004년 이후 박근혜 현 대통령의 주도하에 좌우 구도(진보 대 보수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내용은 다르지 않다) 재편이 진행되면서 더 이상 이어지지 못했다.

좌우 구도 아래서 좌파(혹은 진보)는 앞선 구도처럼 보편적 가치를 바탕으로 기득권 세력을 압도할 수 없다. 거꾸로 기득권 세력은 우파(혹은 보수)의 일방적 옹호 속에서 안정적으로 자신을 재생할 수 있다. 더욱이 우파는 영남지역과 구세대를 주요 세력기반으로 하면서 절대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좌우 구도가 유지되는 조건에서 진보는 절대 승리할 수 없는 것이다. 진보는 패배가 예정된 싸움을 하고 있는 셈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진보운동 안에서 좌우 구도를 혁파하고 전선을 새롭게 형성하려는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 냉정히 평가하자면 전선운동의 관점 자체가 사라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일부 전선을 자임하는 단체가 있으나 국민적 공감과 동참 없는 운동권 내부의 전선일 뿐이다. 언제부터 이렇게 됐는가. 차분히 복기해 보면 대략 진보운동이 정당으로 올인하면서부터임을 알 수 있다. 연대·연합의 논리가 경쟁의 논리로 대체돼 버린 것이다.

전선운동을 복원하라. 진보운동이 안고 있는 수많은 과제 해결을 위한 대전제다.


<다음 칼럼에 이어짐>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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