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지연 변호사 (공공운수노조 법률원)

“이 세상에서 가장 짧은 주문은 이름이네. 사물의 근본적인 모양을 묶는 것은, 이름이 아닌가…. 이 세상에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 무엇도 아니라는 뜻이지. 존재하지 않는다고 해도 좋을 걸세."<소설 ‘음양사’ 중에서>

협력업체라는 이름의 주술

A는 대기업 제과업체에 입사했다. 제품이 생산되면 지게차로 창고에 입출고하는 현장직원이 됐다. 수십 년 동안 같은 일을 했지만, 소속이 세 번이나 바뀌었다. 처음에는 제과업체 오너의 자녀들이 지분을 소유하는 물류자회사 소속이었다가, 물류자회사가 반장들을 추동해 만든 소사장업체에 소속됐다가, 물류자회사가 소사장제를 폐지하고 아웃소싱을 한 뒤에는 외주업체 소속이 됐다. 소속이 세 번 바뀔 동안, 그의 일은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다. A는 외주업체 입사를 거부하고 물류회사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냈다. 물류회사가 진짜 사용자이기 때문이다.

법정에서 물류회사는 반장이 설립한 소사장업체를 ‘협력업체’라고 불렀다. 반장은 소사장으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 인적·물적 시설이나 장비를 갖추지도 않았다. 독자적인 거래처도 없었다. 그저 현장 노무관리자일 뿐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물류회사 역시 실체가 없었다. 사무직만 직접 고용했을 뿐 현장직원도 택배운전기사도 모두 협력업체 소속이었다. 그렇게 직원수를 줄인 회사는 중소기업 지원금을 받았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위해 협력한다는 말인가. 제품이 생산되면 창고에 입출고하는 것은 다른 누구의 업무도 아닌 물류회사의 업무(業)가 아닌가. 자신의 일을 위해 인력을 사용했다면, 그것은 ‘협력’이 아니라 ‘고용’이다.

뉴스에서 보도되는 산재사고 피해자 대부분은 ‘협력업체 소속’이다. 중층적 근로관계에서 사용자의 기본적인 안전배려의무가 실종된 현장에서조차 ‘협력업체’라는 말이 난무한다. 일의 완성을 뜻하는 본래적 의미의 ‘도급’뿐만 아니라 불법일 수 있는 ‘파견’과 ‘위장도급’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노동이 ‘협력’이라는 모양으로 묶여 있다.

경영권이라는 이름의 주술

경영권이라는 말은 또 어떤가. 오늘날 사용자들은 "기업의 물적·인적 자산의 결합과 처분에 관한 모든 의사결정 권한은 경영권의 본질로서 경영자의 배타적인 권리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고용노동부 장관은 “노사관계에서 노동권이 존중되듯이 경영권도 존중돼야 한다”고 앞장서서 주장한다. 심지어 업무량을 늘리고, 정리해고를 하는데도 경영권 사항에 관한 단체행동은 터부시된다.

노동 3권은 헌법상 권리이지만 경영권은 그렇지 않다. 경영권은 제2차 세계대전 후 노동조합운동이 본격화되고 노동조합이 경영참여를 요구하자 기업가들이 만들어 낸 대항담론이자, 사회생활상 관용어에 불과하다.

경영권의 법적 실체를 확인했다고 평가되는 판결을 보자. 외환위기 이후 대법원은 “헌법상 재산권에는 개인의 재산권뿐만 아니라 기업의 재산권도 포함되고, 기업의 재산권의 범위에는 물적 생산시설뿐만 아니라 여기에 인적조직 등이 유기적으로 결합된 영업도 포함되며, 이러한 재산의 자유로운 이용·수익뿐만 아니라 그 처분·상속도 보장돼야 한다”고 판시했다(대법 2002도7225). 대법원은 또 해당 판결에서 “기업이 잘돼야 근로자의 지위도 향상되기 때문에 경영권과 노동 3권이 서로 충돌하는 경우 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설시하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낙수이론은 오늘날 경제이론에서 사실이 아님이 판명됐으므로 해당 판결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재산권은 물권·채권·무체재산권으로 나뉜다. 기업의 물적시설에 관한 권리는 물권(절대권)이지만, 노사관계에서 사용자가 갖는 재산권은 근로계약상 채권(상대권)이다. 당사자 사이에 합의된 근로계약에 따라 노무제공의 이행을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결국 근로기준법상 근로조건 대등결정의 원칙을 넘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는 ‘배타적인 경영권’이라는 개념은 헌법 어디에도 없다. 나의 노동력은 회사의 ‘사적 소유물(인적 자산)’이 아니라 내 것이기 때문이다.

권력은 늘 사적인 이익을 공익으로 포장하고, 언어는 권력을 반영한다. 회사가 ‘경영권’을 행사하고 ‘협력업체’를 구축하는 동안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일방적으로 악화되고, 위장된 근로관계는 은폐된다. 그 이름이 진짜 이름이 아니라도 우리는 노동을 하고 노동운동을 하겠지만 “사물의 근본적인 모양을 묶는 것이 이름이라면” 이제 노동의 관점으로, 노동의 이름으로 묶어 내는 작업이 필요하지 않을까.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