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전쟁의 말이 한반도를 떠돌아다니고 있다. 전쟁, 국가가 모든 것이다. 국가주의가 모든 주의를 압도하는 세상이다. 전쟁의 날에는 국가를 위해서 피치자 국민은 더욱 복종해야 하고 국가를 위한다는 가치, 애국이 모든 가치 위에 선다. 이처럼 애국이 절대 가치가 되는 것이 전쟁이다. 그러니 전쟁의 날에는 인권도 애국 앞에 기를 펴지 못한다. 나라가 있어야 국민도 있다는 국가주의가 애국을 노래하기에 바쁘다. 권력이 선창하는 애국가를 합창하지 않으면 국민의 자격을 의심받는다. 전쟁의 날에는 애국이 생존의 기술이 된다. 그런데 지금은 아니다. 아무리 남과 북이 전쟁을 불사하겠다, 감수하겠다는 태세로 전쟁을 일으킬 듯이 준전시상태, 경계상태에 돌입했다고 해도 지금은 아직 전쟁이 아니다. 권력이 국가를 이름으로, 애국으로 모든 것을 재단하는 날은 아직 아니다. 하지만 오늘 애국이 모든 것이라는 말이 들리고 있다.

2. 김무성 대표가 22일 "경제 침체로 모든 국민이 허리띠를 졸라매는데 회사가 어려운 상황에서 귀족노조가 '나만 배부르면 된다'는 이기주의와 기득권 지키기로 일관하고 있다"며 "경제를 흔드는 비애국적 행위를 계속하면 국민의 외면과 분노에 직면해 설 자리를 잃게 될 것을 경고한다"고 맹비난했다는 뉴스가 나온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올 하반기 최대 국정과제로 삼고 있다는 새누리당의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애국의 말이다. 김 대표는 "노동개혁은 청년실업 해결과 경제 재도약을 위한 것"이라며 "전체 근로자의 10%도 안 되는 일부 강경·기득권층·과격 노조로 인해 나머지 90% 이상 근로자들이 눈물 흘리고 손해 보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고 한 후 "한반도 안보가 매우 위중하지만 우리 정치권은 반드시 노동개혁을 성공시켜야 한다"고 말했다. 원유철 원내대표 역시 노동개혁에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하는 한국노총과 금융노조를 향해 "한반도 긴장이 고조된 상황에서 이런 집회를 하는 것이 과연 적절한 행동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집회를) 당장 취소해야 한다"고 밝혔다. 하긴 경제살리기, 나라살리기 등이 모두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통해서라고 이전부터 정부와 집권 새누리당은 애국을 말해 왔다. 어디 현재의 권력만이겠는가. 이 나라에서는 오래전부터, 민주당 집권 시기에도 노사관계 선진화 로드맵이니 뭐니 노동개혁을 말해 왔다. 그때도 노동자 권리를 삭감하는 것들이 포함돼 노동개혁이라 불렸다. 단지 애국을 강조해서 말하느냐 아니냐만 다를 뿐이다. 어쨌든 지금은 권력의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반대하는 자는 애국자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애국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전쟁의 날이었다면 노동시장 구조개혁에 반대하는 노동조합, 노동자는 비애국자로 이 나라에서 낙인이 찍혀 국가권력에 의해 매장되지 않았을까. 뉴스를 읽으면서 나는 오늘은 전쟁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국가가 모든 것인 애국시대가 아니라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나는 뉴스를 읽었다.

3. 어디 막연히 인권만이겠는가. 구체적인 노동의 권리조차도 애국의 노래에 질식하고 마는 전쟁이다. "나라가 있어야 국민도 있다"는 것이니 나라가 있어야 노동자의 권리도 있다는 건 물어볼 필요도 없이 너무도 당연한 것이다. 굳이 집권당 대표가 애국의 말로 비난하며 설득할 일도 없었다. 비애국자라는 매도로 충분한 일이었다. 그러니 전쟁은 수십년 사용자 자본에 맞서 교섭과 투쟁으로 쌓아 올린 노동의 권리를 송두리째 삭감할 수도 있다. 나라가 있어야 노동자의 권리도 있는 것이니 나라의 생존을 위한 승리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한다고 전쟁·애국의 시대에는 국민 중 노동자도 고통을 감수당하게 된다. 그래서 이 한반도에서 전쟁은 어떤 일이 있어도 일어나지 않아야 한다. 노동자타령으로 사는 나는 오늘도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판문점회담의 뉴스를 읽는다.

4. 하긴 애국이 모든 가치인 사람이 있다. 특히 국가의 안녕·발전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보수의 당 정치인은 그래야 할 것이다. 그래서인가. 새누리당은 오늘 노동개혁에 대해 애국을 내세우고 있다. 대한민국을 위한다는 대한민국의 정치인이니 뭐 보수의 당이 아니라도 애국을 말하는 것은 당연할 수 있다. 물론 모든 가치의 위에 애국을 놓는 것은 다른 문제다. 정치에서 애국은 유한책임이 아니다. 법적 책임은 유한할 수 있지만 정치인에게는 제가 행한 일에 대해 무한한 책임을 져야 한다. 시효도 없다. 나라가 세워지기 전의 일이라도 그가 행한 일에 대해선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 정치적으로 애국이다. 일제시대에 독립군을 잡는 일을 했다면 그가 대한민국에서 져야 할 정치적 책임은 유한할 수가 없다. 그가 살아 정치를 하는 한 그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어야 한다. 애국이라면 말이다. 정치에서 애국은 연좌제를 모른다. 제 부모가 저지른 친일이라도 정치인은 애국으로 비난받을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말이다. 부모의 일을 말로 부정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물적·정신적 모든 유산을 포기하는 경우에만 비난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대한국민은 3·1 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했다”고 대한민국의 헌법 전문 첫줄에서 명시하고 있는 한 애국을 말하는 정치에서는 일제시대의 친일행위에 대해 정치적으로 무한책임을 지고 대를 이어 책임을 질 수 있는 일이다.

특히 그가 애국을 가치 중의 가치로 내세워 말한다면 책임져야 마땅하다. 그가 대한민국의 집권당의 대표든 최고의 권력자든 애국을 말한다면 말로 하는 책임이 아니라 행동으로 하는 정치적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 애국을 최고의 가치로 내세우는 당이고 정치인이라면 특별히 그렇다. 애국을 말하며 노동을 비난한다면 말이다.

5. 전쟁이라는 말로 한 주가 지나가더니 다시 그 말로 한 주가 시작되고 있다. 준전시상태 선포와 보복 응징이라는 공포의 말이 횡행하고 있다.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으면 포격으로 타격하겠다고 말하고,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겠다, 이번에는 도발의 악순환 고리를 끊겠다고 말하고 있으니 그 말대로면 국지전이든 전면전이든 일으킬 태세다. 이렇게 겁나게 전쟁을 말하고 있는데 나는 애국의 말에 시비나 하고 있다. 전쟁, 이 세상에서 폭력의 정점이다. 이 세상에서 폭력은 국가가 독점하고 있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렇다. 불법이 아닌 폭력은 국가의 것이다. 전쟁은 이렇게 폭력을 독점한 국가가 하는 조직적인 살상이다. 아무리 변명해도 제 의지를 상대에 강제하기 위해서 하는 폭력이다. 전쟁은 이 세상의 폭력 중에서 최고로 악의적이다. 분명히 폭력으로 사람을 살상하고 적이 가진 것을 강탈하는 것이니 전쟁은 살인·상해·강도 등 최악의 범죄여야 한다.

그런데도 이상하게도 아니다. 국가는 제 국민인 인민에게서 범죄라는 인식을 지워 버렸다. 이 세상에서 전쟁에서 살상은 범죄가 아니다. 국가의 이름으로 권력은 국가의 폭력에, 그 정점인 전쟁에 정당성을 부여해 왔다. 논리적으로 정당해서 정당한 것이 아니다. 논리적인 정당성을 묻지 않고서 정당하다. 국가는 어째서 정당하다는 것인지 묻지 말라고 주권을 내세웠다. 주권으로 오늘도 이 세상에서 스스로 정당하다. 그것으로 국가의 폭력, 전쟁은 무조건 정당할 뿐이다. 그러나 아무리 정당하다 강변해도 전쟁이 살상이라는 실체는 가릴 수 없다. 이 세상에서 전쟁의 날, 애국시대는 노동의 날일 수가 없다. 국가의 폭력을 제어하고 적어도 애국에 기죽지 않고 노동의 권리와 가치를 내세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그러니 노동자는 전쟁의 실체를 바로 볼 수 있어야 한다.

6.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전쟁이라는 애국시대가 아니다. 그런데도 이 나라에서는 애국을 말하며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말하고 노동기본권 행사를 비난하고 있다. 애국이 모든 가치 위의 가치라고 내세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집권 새누리당의 대표 등은 애국을 앞세워 노동자 권리를 삭감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말하고, 이에 반대하는 노동자집회를 비난했다. 어째서 애국이란 것인지 합리적인 설명도 없었다.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경제살리기와 청년일자리 만들기, 나라살리기라는 확신만 넘쳐날 뿐이다. 파업 등 노동기본권 행사가 나라경제 발목을 잡는 귀족노조의 이기주의라는 자기 확신이 확고할 뿐이다. 노동자가 임금피크제를 도입해서 임금을 삭감당하고 일반해고제 도입해서 쉽게 해고되는 것이 어째서 애국하는 일이라는 것인지 당사자인 노동자들에게 자세한 설득의 말도 하지 않는다. 애국의 말로 노동자를 윽박지르기만 한다. 이런 말을 듣다 보면 나는 이 나라가 오래전부터 애국시대였다는 착각에 빠져들고 만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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