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다시 노동개혁(?)을 둘러싸고 정부와 노동계가 충돌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 재계는 청년일자리 창출이라고 하는 꽤나 그럴듯한 명분을 앞세워 노동계를 압박하고 있다. 이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조선일보>는 청년 취업난의 심각성을 부각하며 기성세대의 양보를 호소하는 기획기사를 대대적으로 내보기도 했다. 일순간에 보수세력이 청년세대의 대변자로 돌변한 듯하다.

임금피크제 도입은 정년연장으로 인해 발생할 추가 비용을 해소하기 위한 방편임은 알 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다. 더불어 수많은 통계자료는 임금피크제와 청년일자리 창출 사이에 상관관계가 없음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런데도 마음 한편이 편치 않은 이유는 무엇인가. 노동계는 정부의 강압적인 구조조정에 대해 명확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문제는 여기서 더 이상 나아가고 못한다는 데 있다. 정부는 지금 상태는 문제가 있으니 뜯어고치자 하고 노동계는 지키려고만 할 때 국민이 어느 쪽 편을 들겠는가.

수동적 입장에서 지키는 싸움을 하는 쪽은 결코 최종 승자가 될 수 없다. 이겨도 이긴 것이 아닌 싸움이 되기 쉽다. 오직 피동에서 벗어나 주동의 입장에서, 방어를 넘어 공세로 전환할 때 승리를 기약할 수 있다. 그러자면 노동개혁(표현 방식에 관계없이)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노동개혁의 방향’을 놓고 다퉈야 한다. 과연 노동자 입장에서 노동은 어떻게 개혁돼야 하는가. 이 점에서 <한겨레21>에서 여러 차례 소개한 삼정P&A 사례는 시사하는 바가 많다.

삼정P&A가 주목받은 일차적 이유는 근무형태 전환이었다. 삼정P&A는 2007년 3개조가 돌아가면서 작업하던 3조3교대 근무형태를 2개조가 번갈아 작업하고 나머지 2개조는 휴무를 하는 4조2교대로 전환했다. 근무형태를 전환하면서 삼정P&A의 연간 근무일은 317일에서 174.5일로 줄었고, 반대로 휴무일은 48일에서 190.5일로 크게 늘어났다. 1년 중 절반 이상이 휴무일인 것이다. 연간 근무시간 또한 2천324시간에서 1천920시간으로 줄었다.

이런 조건에서 삼정P&A는 연간 1인당 학습시간을 300시간으로 대폭 늘렸다. 그 결과 학습효과가 가시화되면서 직원들의 자격증 취득 건수가 2010년 837개로 근무형태 전환 이전에 비해 열 배 정도로 늘었다. 결과는 직원들이 단순 포장공에서 자동포장 설비를 개발·운영하는 엔지니어로 탈바꿈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삼정P&A가 2009년 세계 최초로 철강제품을 자동 포장하는 로봇 결속기를 개발한 것 역시 그 과정에서 얻어진 성과였다. 덕분에 삼정P&A는 자체 기술로 철강포장라인 전체를 자동화하는 데 성공했고 이를 일괄 판매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렀다. 여기에 발맞춰 상당수 직원이 철강포장설비 전문 컨설턴트 지위를 갖기에 이르렀다.

일련의 과정을 거쳐 삼정P&A는 단순포장 작업을 하던 업체에서 자동포장 설비를 개발·운영·판매·서비스하는 전문적인 엔지니어링 회사로 변신했다. 업무도 단순 노동력보다 창조력에 의존하는 영역 위주로 바뀌었다. 생산성 또한 현저히 개선됐다. 직원들의 혁신 역량이 강화되면서 4년 만에 1인당 철강 포장량이 38%나 늘었다. 이런 성과는 지속적인 경영실적 향상과 직원들의 임금상승으로 이어졌고 이는 직원들의 역량을 더욱 성숙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낳았다.

산업경제 시대 작업의 중심을 이룬 것은 기계였다. 노동자는 기계의 움직임을 보조하는 부속품에 불과했다. 자본가는 이러한 기계의 성능을 지속적으로 개선함으로써 보다 적은 노동력으로도 제품을 생산할 수 있도록 했다. 자동화는 이를 압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최근 자동화가 확산되면서 매출이 증가하더라도 고용이 늘지 않는 고용 없는 성장이 일반화되기에 이르렀다. 이 같은 경향은 신자유주의에 이르러 주주 이익 극대화를 위한 방편으로 인위적 구조조정을 강화함으로써 가속화됐다. 노동 배제를 통한 승자독식이 극에 달한 것이다.

그런데 삼정P&A는 이와 전혀 다른 길이 가능함을 보여 주고 있다. 삼정P&A에서 노동자는 종래의 단순반복적인 육체노동에서 탈피해 지적이고 창의적인 작업주체로 변신했다. 노동의 진화가 이뤄진 것이다. 그 결과 기업과 노동자 모두가 이익을 거둘 수 있음을 입증했다. 요컨대 노동 배제를 통한 승자독식과는 정반대인 노동 진화를 통한 상생의 모델을 만들어 냈다고 볼 수 있다.

노동계는 적극적인 노동의 진화 전략을 통해 기업, 나아가 국민경제의 활로를 여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고 지키는 싸움에만 매달린다면 결국 아무것도 지키지 못할 것이다. 거의 모든 사람이 직감하고 있듯이 노동계는 운명을 가를 기로에 서 있다.



역사연구가 (newroad2015@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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