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그런데 왜 노동자의 임금이 비용일까. 임금피크제가 어느새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중심이 돼 버렸다. 늙은 노동자에겐 정년연장을 위해서, 젊은 노동자에겐 일자리를 위해서 임금피크제가 도입돼야 한다고 대통령이 담화를 발표하고서 정부와 집권 새누리당이 몰아붙이고 있다. 600만표를 잃더라도 노동개혁을 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렇게 임금피크제로 청년고용을 창출하자고 요란하게 떠들어 대지만 그것은 결국 노동자 임금을 삭감하자는 말이다. 임금피크제가 도입되지 않는다면 정년연장이 된다고 해서 노동자가 기존 임금을 삭감당할 까닭이 없다. 그러니 오늘 이 나라에서 권력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은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70년대와 80년대 성장의 시대에 임금 삭감은 사용자 자본과 권력이 걱정할 일이 아니었다. 매년 물가상승이 몇 십퍼센트였으니 그만큼 실질임금은 자동으로 삭감되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저 인플레이션만 적당히 조절하는 기술만 부리는 것으로 해결됐다. 그 시절에는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자고 임금피크제로 골치 아프게 요란을 떨 일도 없었다. 한국은행이든 기획재정부든 그 기술을 부리면 됐다. 그랬는데 오늘은 기업실적이니 나라경제니 좀 어렵다 싶으면 권력이든 자본이든 임금이 높다고 삭감하자고 말한다. 인플레이션을 조장하는 기술을 부리기 어려우니까 대놓고 노골적이다. 어제든 오늘이든 기술을 부리거나 말거나 노동자의 임금이 높으면 비용이 높아진다고 기업이 어렵고 나라경제도 어렵다는 골치 아픈 세상인 것이다.

2. 기업회계기준이 아니라도 이 세상에서 기업의 계산에선 노동자의 임금은 비용으로 셈이 된다. 상품 서비스의 생산비용로 셈해서 매출에서 공제하고 나머지가 기업의 이익이 되고 그것이 기업의 경영실적으로 평가된다. 자본의 수익은 바로 이익의 배당 등으로 실현된다. 자본의 경제학이든 노동의 정치경제학이든 기업 내지 자본의 생산과정에 관한 분석법은 노동이 비용이라는 데에선 다르지 않다. 이런 셈법의 세상에선 노동자에게 지불되는 금액이 적을수록 기업의 실적이 높아진다. 영업이익률이 높아지고 당기순이익은 많아진다. 한 나라에서 내부 물가상승인 인플레이션이든 외부 물가상승인 환율이든 뭐가 됐든 노동비용이 낮을수록 기업의 실적은 높아진다. 확대재생산이 아닌 단순재생산 구조라면, 성장률이 0%에 가깝다면 노동자가 찌그러질수록 기업은 살고 노동자가 살아날수록 기업은 찌그러지는 세상인 것이다. 그러니 수많은 노동사건에서 우리의 대법관들은 대놓고 판결문에 썼던 것이다.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도 있고 기업이 살아야 노동자도 산다는 말을 노골적으로 판결이유로 쓰고서 기업을 내세워 사용자를 위한 판결을 해 왔던 것이다(대법원 2003.7.22. 선고 2002도7225 판결 등). 사용자가 경영사정을 이유로 해고할 수 있다고 근로기준법에 규정되기도 전부터 정리해고제도가 정당하다고 판결하고 적법하다고 선언했다(대법원 1989.5.23. 선고 87다카2132 판결 등). 법을 위반한 사용자가 적법하다고 믿었다고 신의칙을 내세워 상여금 통상임금 사건에서 노동자 임금청구를 기각하는 판결을 했다(대법원 2013.12.18. 선고 2012다89399 전원합의체판결 등). 취업규칙 변경절차에 관한 근로기준법에 위반해도 사회통념상 합리성 운운하며 사용자의 절박한 사정을 배려하는 판결을 했다(대법원 2004.7.22. 선고 2002다57362 판결 등). 이렇게 노동자의 임금을 비용으로 셈하는 기업의 비용계산법이 우리의 대법관들에게도 당연한 것으로 법을 초월한 판결의 근거가 되는 법원으로 인식해 왔다. 그러니 오늘 우리는 기업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고 그것으로 나라 경제를 살리기 위해 노동자의 임금을 삭감하겠다는 권력의 의지를 태연히 목격하고 있다.

3. 그런데 어째서 노동자의 임금이 비용인가. 사람이 주체가 돼서 상품 서비스를 생산하는 것인데, 사람이 아닌 나머지가 비용이어야 한다. 공장과 사업장 설비 등 생산수단에 노동을 결합시켜 상품 생산을 한다는 것은 자본의 재생산으로 세상을 보는 것이다. 자본이 주인이니까. 자본은 생산수단에 노동자를 결합시켜 상품의 생산과 판매로 실현한 이익으로 재생산을 이뤄 내는 것이니까. 고정자산과 유동자산을 결합시켜 보다 많은 이익을 실현해 내면 자본은 확대재생산을 이뤄 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서 노동력의 구입대금, 임금은 상품 생산의 비용이고 판매될 상품대금에 포함해서 뽑아내야 할 비용이다. 그러니까 노동자의 임금을 비용으로 셈한다는 것은 자본이 주인인 세상에서 노동자에 대한 취급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렇지 않고 생산의 주체를 노동으로 바라본다면 생산과정을 사람이 주체가 되는 재생산과정으로 봐야 한다. 거기서 사람이 주체가 된 생산과정은 노동의 재생산으로 보는 것일 수밖에 없고 거기서 자본은 비용이다. 사람이 아닌 나머지에 자본은 속해 있어야 한다. 주인인 노동자가 사업장에서 자본을 비용으로 셈하고 생산해서 자신의 노동의 대가를 지급받는 것이 노동의 재생산과정일 수 있다. 거기서는 자본은 그저 은행 같은 금융권에 지급할 이자 등 비용으로 셈하면 그만이다. 생산에 의해 실현될 이익은 온전히 노동의 몫이 된다.

4. 광복 70주년이다. 일제 식민지에서 해방된 날을 굳이 광복절이라고 불러 기념한 것은 무엇일까. 해방된 조국이 자유를 줄 것이라고 식민지 인민은 1945년 8월15일, 그날 만세를 부르며 거리를 쏟아져 나왔을 것이다. 해방된 나라가 자본의 전횡이 지배하는 자본의 재생산에 복무하는 세상일 것이라 알고서는 그날 해방의 함성을 광장에서 목이 터져라 소릴 지르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그 만세의 바람은 인민의 처지에 따라 달랐을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낮은 수준으로라도 1948년 7월17일 제정·시행된 제헌헌법에 보장됐다. 그 제헌헌법은 전문에서 “정의인도와 동포애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며 모든 사회적 폐습을 타파하고 민주주의제도를 수립해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케 하며 각인의 책임과 의무를 완수케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겠다”고 선언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대한민국 경제질서에 관해서 “모든 국민에게 생활의 기본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게 하는 사회정의의 실현과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발전을 기함을 기본으로 삼는다”고 규정했다(제헌헌법 제84조).

자본의 독재가 기업의 논리로 인민의 자유 위에서 군림하는 세상을 해방된 나라의 질서로 선언하지는 않았다. 그리고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87년 10월29일 전면개정된 현행 헌법에서도 전문의 취지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고, 대한민국 경제질서에 관해서는 “개인과 기업의 경제상의 자유와 창의를 존중함을 기본으로” 하되,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 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기업 논리를 앞세우는 자본의 전횡을 국가권력이 규제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제119조).

대한민국 헌법은 대통령이 헌법을 준수할 것을 국민 앞에 엄숙히 선서하고서 취임하도록 규정하고(제69조), 법관은 이런 대한민국 헌법과 그에 합치되는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하도록 규정했다(제103조).

그러니 오늘 이 나라에서 권력이 추진하고 있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의심해야 한다. 노동자의 임금을 비용으로 셈하는 기업의 비용계산법에 따른 자본의 확대재생산을 우선하는 임금피크제 등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논리는 광복 70주년을 맞이하는 헌법이 선언하고 있는 질서의 원리에 부합하는 것인지 의심해야 한다. 적어도 노동자의 임금을 비용으로 셈해서 임금 삭감을 윽박지르는 세상을 바라고 해방의 그날에 만세를 불렀던 것은 아닐 것이니 말이다.

나는 대한민국이, 대한민국의 헌법이 노동자의 임금을 비용으로 셈해서 삭감을 윽박지르는 세상을 기본질서의 원리로 선언하고 있다고 믿지 않는다. 헌법 조문 어디에도 자본의 전횡이 지배하는 세상을 대한민국의 질서로 명시한 규정은 없다. 자본이 지배하는 세상이라고, 권력이 자본을 위해 복무하는 세상이라고 해서 70년 전 해방의 날에 뜨거웠던 함성의 일부를 담아낼 수밖에 없었던 제헌헌법을 함부로 자본의 것이라고 재단할 일이 아니다. 8월14일이 광복 70년을 기념해 임시공휴일로 지정됐다. 그저 기뻐하기만 해서는 안 될 일이고, 한 번쯤은 임금피크제 등 노동시장 구조개혁의 나라가, 노동을 비용으로 셈하는 나라가 45년 8월15일의 함성을 제대로 기념하고 있는 것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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