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호 공인노무사(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 법규국장)

지난해 늦은 나이에 노무사 시험에 합격하고 올해 초 노동조합에 채용이 확정됐다. 지금은 학교비정규직노조 법규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수습 딱지도 안 뗐는데 수험서에서 암기했던 비정규직 쟁점들이 백화점 식으로 총망라돼 상담으로, 사건으로 다가온다. 계약만료와 갱신기대권 주장, 기간제 근로자 차별시정 신청, 단시간 근로자 차별시정 신청, 불법파견, 통상임금과 체불임금, 노조법상 교섭창구 단일화 절차까지…. 6개월이 지난 이제서야 조금씩 정신을 차리기 시작한다.

나는 10년 넘게 정규직 중심 노동조합과 산별연맹에서 상근자로 일했었다. 비정규직 문제는 정책자료로 보고 집회에서 구호로도 많이 외쳤다. 그런데 비정규직노조에서 일해 보니 그동안의 구호가 참 공허했다는 생각이 든다.

하루는 계약기간이 아직 남아 있는 조합원이 부당해고 상담을 요청했다. 계약만료로 해고될 것이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어 밤잠을 못 이뤄 미리 해고상담을 받는 게 낫다고 생각했단다. 이전에도 계약만료로 잘린 적이 있는 조합원이었다. 늘 계약기간이 끝날 쯤에는 해고 트라우마에 시달려 잠을 이루지 못한다고 했다.

실제 그 조합원은 계약만료를 통보받았다. 그리고 노동위원회에 갱신기대권을 주장하며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사립학교 행정실에 근무하는 어떤 분의 급여명세표를 보고 놀란 적이 있다. 임금에서 4대 보험 근로자 부담분뿐만 아니라 사용자부담분까지 공제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딱 최저임금에 해당하는 월급이었는데, 보험료 다 떼고 나니 100만원도 안 됐다. 진작 월급 계산이 잘못된 걸 알았지만, 무기계약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이분은 결국 계약만료로 해고되고서야 체불임금 진정을 넣었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생기고 교육청과 단체협약이 체결되면서 비정규직의 무기계약 전환율이 상당히 높아졌다. 각종 처우개선수당도 조금씩 확대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불합리한 일들이 많이 벌어지고 있다. 예산절감을 이유로 40시간 통상근무 직종 근로자 전체를 모두 15시간 미만으로 바꾼다. 기간제 근로자와 단시간 근로자는 처우개선수당으로 쟁취한 장기근무가산금·교통비·명절휴가보전금 지급대상이 아니라는 또 다른 차별적 지침이 당연한 듯 시행되고 있다. 모두 차별시정 신청 대상이다.

우리 노조는 사무실에서 점심을 직접 해서 먹는 걸 원칙으로 한다. 매달 식사 당번과 설거지 당번이 미리 정해진다. 얼마 전에는 사무실에 김치냉장고도 들여왔다. 간혹 지역 조합원들이 맛있는 김치와 반찬을 한 박스씩 보내오면 보관할 곳이 없던 터였다.

근데 하루는 근처 뷔페식 레스토랑에서 사무처 직원 모두가 ‘점심 외식’을 한다고 했다. 점심값은 위원장이 쏜다는 거다. 알고 보니 위원장 큰딸이 직장에서 3년여의 비정규직 생활을 끝내고 정규직이 됐다는 거다. 20여년을 비정규직으로 일한 비정규직노조의 위원장이었기에 큰딸의 정규직 전환은 그냥 넘길 일이 아닌 자랑이고 기쁨이었겠구나! 비정규직노조이기에 가능한 점심 외식이었다.

우리 노조 채용상근자는 조합원 임금수준에 급여를 맞추다 보니 급여가 그리 높지 않다. 하지만 법규담당자로서 해야 할 일이 많고, 그 일들이 모두 비정규직의 설움을 닦는 데 기여하는 보람된 일이라서 좋다.

마지막으로 수습 딱지를 막 뗀 나이 든 수습노무사로서 하고 싶은 얘기가 있다. 250여명 정도의 공인노무사가 매년 배출된다. 이 중 극히 소수가 노동조합 법규담당자나, 노동자사건 전담 법인(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모임 소속 법인)으로 채용된다. 대다수는 기업체나 일반 노무법인으로 빠진다.

그런데 노동조합에서 일하고 싶어도 자리를 찾지 못하는 노무사가 적지 않다. 법규담당자를 애타게 찾고 있는 노조도 있다. 제때 연결이 잘 안 된다.

‘돈’보다는 노무사로서의 ‘자존감’을 지키려는 초롱초롱한 새내기노무사들이 여럿 있다. 수습노무사들의 공식 수습과정에서부터 연합단체 노동조합 차원의 좀 더 적극적인 개입과 홍보활동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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