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연일 한국노총에 노사정 대화 복귀를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 주요 의제와 관련해 정부측에서 기류변화가 감지돼 주목된다. 예컨대 한국노총이 논의 불가사안으로 못 박은 취업규칙 지침 변경과 일반해고 요건 가이드라인을 의제에서 뺄 수 없다는 원칙을 분명히 하면서도, 대화에 복귀할 경우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는 뉘앙스를 풍기는 식이다. 그럼에도 두 의제가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방안에 포함되는 이상 한국노총이 섣불리 대화복귀를 선언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기권 장관 “두 개 의제에 노동개혁 묻혀”

박근혜 대통령은 10일 오전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면서 “지난주에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이 복귀해 노사정위가 다시 가동될 수 있는 여건이 하나씩 조성되고 있는 만큼 한국노총도 조속히 복귀해 대화의 물꼬를 터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노총의 대화복귀와 대기업 정규직·고임금 노동자 양보를 강조한 지난 6일 대국민 담화와 별 차이가 없다.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 역시 이날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한국노총이 철회를 요구하고 있는 두 가지 의제에 대해 “현재 일하는 분들과 미래세대 간 공정성 확보를 통한 일자리 늘리기와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이 장관은 “(지난 4월) 두 가지 의제를 합하지 못하고 중점적으로 얘기되다 보니 노동시장 개혁에 대한 그림이 흐트러졌다는 생각이 든다”고 밝혔다. 이어 “결렬된 사유를 중심으로 (논의를) 하다 보니까 노동개혁의 큰 기둥이 안 보이고 두 가지만 보이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두 의제가 노사정 대화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한 셈이다.

취업규칙 지침 없던 일로?

이 같은 발언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취업규칙·일반해고에 대한 의제 외에도 비정규직·노동시간단축·사회안전망 확충 같은 의제가 산적해 있는 만큼 이런 의제부터 노사정위에서 논의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한국노총이 대화에 복귀한다면 지금 당장은 공개하지 못하더라도 두 의제에 대해 형식적·내용적 변화를 줄 수 있다는 뜻으로도 풀이된다.

이 장관은 노동계를 대화석상에 앉힐 명분을 줘야 하는 것 아니냐는 기자들의 질문에 “6~8월까지 두 가지 지침을 발표하겠다고 했다가 보류하고, 들어와서 논의하자고 했는데 (그것으로) 노동계에 명분을 준 것”이라며 “정부로서는 나름의 정성을 다한 노력”이라고 주장했다.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지난 7일 <매일노동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임금피크제와 관련해 노동부의 취업규칙 지침을 바꾸지 않고 민간부문은 노사자율로, 공공기관은 노정 또는 노사정위 협상으로 시행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논란이 되는 일반해고 가이드라인은 장기 과제로 넘기자는 것이다.

정부가 이런 요구를 일부 받아들일 가능성도 있다. 실제 노동부 내에서는 임금피크제 관련 취업규칙 지침을 발표하지 않고 노사자율로 시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노사정위 노동시장구조개선특별위원회가 재가동되면 공공기관 임금피크제 실시와 관련해 별도 논의를 할 수 있다는 입장으로 보인다. 물론 정부의 핵심정책이 후퇴하는 것처럼 비춰질 수 있기 때문에 이를 공식화하지는 않고 있다.

이기권 장관은 기자간담회에서 “대화를 하자는 것은 두 의제에 대해 정부 의지가 약해지거나 방법이 달라진다는 의미가 아니다”며 “노사정 대표자들이 논의하면 공감대 영역이 커진다”고 말했다.

광복절 전 합의 물 건너가나

지난 6일 회동한 노사정 대표들은 조만간 다시 만날 계획이다. 정부는 가능하면 광복절 전에 대화재개를 결정짓고 싶어 한다. 김대환 노사정위원장 역시 한국노총을 만나 노사정위 복귀를 설득할 예정이다. 이 과정에서 두 의제에 대한 중재안 또는 조정안이 오갈 것으로 전망된다.

중재안만으로 한국노총이 노사정위에 복귀할지는 미지수다. 두 의제를 제거하지 못하면 산별연맹을 중심으로 한 노사정위 복귀 반대 목소리가 수그러들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노총은 이번주로 예정했던 중앙집행위원회 개최를 보류한 상태다. 광복절 전 노사정 대화 재개 합의는 힘들어 보인다. 투쟁 파트너인 민주노총이 노사정위 대화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는 것도 고려해야 할 대목이다.

한국노총 관계자는 “이기권 장관의 기자간담회 내용은 한국노총이 무조건 대화에 나서라는 것으로 변한 게 없다”며 “우리 역시 두 개 의제를 제거하지 않으면 대화 불가라는 기존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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