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정부의 노동시장 개혁 드라이브가 거세다. 박 대통령은 6일 대국민 담화를 통해 "노동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담화의 3분의 1 정도가 노동개혁에 대한 얘기였다.

임금피크제 확산을 위한 취업규칙 지침과 일반해고 요건 가이드라인 추진을 철회하거나, 국회에 사회적 대타협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는 노동계 요구는 고려대상이 아니었다. 오히려 7일부터 김대환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을 업무에 복귀시킨다. 노사정위에서 기존 의제를 합의해야 한다는 현 정부의 고집이 엿보인다.

1년2개월 만에 나온 대통령의 대국민 담화. 전문가들은 노동개혁에 대부분을 할애한 담화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



참담한 노동통계 외면하고, 경총 주장만 읊어 

▲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

‘경제재도약을 위해 국민 여러분께 드리는 말씀'이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담화는 향후 남은 임기 동안 정부 정책의 기본방향이 어떻게 추진될 것인가를 잘 보여 주고 있다. 한마디로 말하면 “청년들에게 더 많은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도록 대기업과 고임금-정규직 노동조합들이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라”는 것이다.

경제의 어려움과 청년실업의 원인이 재벌의 탐욕과 정부 무능에서 온 결과가 아니라 노동조합의 기득권 때문이라는 주장이다. 결국 화살은 노동시장 유연성을 확보하기 위한 임금체계의 개편과 저성과자 퇴출로 귀결된다.

정말 그런가. 담화에는 근거도 불확실한 내용이 넘쳐난다. “60세 정년제가 시행되면 향후 5년 동안 115조원의 인건비가 증가한다”는 경총의 일방적인 주장이 대통령 담화로 진실이 된다. 세계경제포럼(WEF)의 평가는 설문의존도가 높아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점은 고려하지 않고 노동시장 효율성과 노사협력이 낙제점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우리나라가 34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에서 13번째로 해고하기 쉽고, 저임금 노동자 비중이 세계 최고라는 통계는 애써 외면한다. 박근혜 정부의 4대 부문 개혁조치가 성공하려면 우선 정부부터 솔직해야 한다.

정부는 현 경제상황의 구경꾼이 아니라 정책을 추진한 책임주체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 과정에서 “일자리 늘(늘리고)·지(지키고)·오(질을 올리는)” 정책을 추진해 고용률을 70%까지 올리겠다고 공약했다. 과연 국민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일자리 질이 좋아졌다고 느끼고 있는가. 지난 2년 반 동안 무엇을 하다 이제 와서 책임을 노동자에게 돌리는지 묻고 싶다. 노동개혁은 일방적인 지시가 아닌 노사정 간 끈질긴 대화와 협력의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노동계 무시하겠다는 의지만 읽혀 

▲ 김철(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

일말의 기대도 무너졌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 대한 반성과 책임, 롯데재벌 경영권 다툼으로 불거진 재벌개혁 필요성에 대해서는 한마디 언급도 없었다. 이 같은 질문이 나올까 봐 질의도 취소한 듯하다.

4대 부문 개혁을 언급하면서 대부분을 노동개혁에 할애했다. 새로운 내용은 없었지만 강한 의지가 읽혀졌다. 노동계의 분위기와 입장을 들어가며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반대를 하든지 말든지 강행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드러냈다.

그러면서 진정성 없는 노사정 대화를 언급했다.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에 참여했던 한국노총이 일반해고 완화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제외하면 대화에 참여할 수 있다고 했지만 정부는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대화할 의지가 없는 것이다. 정책을 정부가 원하는 대로 강행한다는 인상을 국민에게 주지 않기 위해 대화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

공공부문 임금피크제를 도입하겠다는 점도 새삼 강조했다.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을 연계시키는 홍보가 먹힌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임금피크제로 만들 수 있는 일자리가 미미하다는 것은 누구나 인정하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임금피크제에 목을 매는 이유는 퇴출제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을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임금피크제 이후 정부 숙원정책을 밀어붙이려는 것으로 판단된다. 노동계는 이미 정부가 임금피크제를 강행할 경우 총파업에 나서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정부는 막무가내다. 노동계와 정부의 전면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유연안전성 의지 밝힌 대통령, 기본방향은 바람직 

▲ 김동원(고려대 경영대학장)

박근혜 대통령이 대국민 담화에서 밝힌 노동개혁 방향은 기본적으로 바람직하다고 본다. 그동안 노동유연성만 강조했는데, 이번 담화에서는 안전성 강화 의지도 함께 담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실업급여를 현재 평균임금 50% 수준에서 60%로 올리고 실업급여 지급기간도 현행(90~240일)보다 30일 늘리겠다고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덴마크가 노동시장 개혁에 성공한 것은 노동시장은 유연화하되, 사회안전망을 동시에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유연안전성(Flexicurity)이다. 노동시장에서 탈락할 위험성이 높아지면 그만큼 이들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도 강화해야 한다. 노동유연성만 강조한다면 오히려 양극화가 심화할 수 있다.

임금체계 개편을 언급한 것도 바람직하다. OECD 회원국 중 우리나라처럼 호봉제·연공성이 강한 임금체계를 가진 나라는 없다. 능력과 관계없이 나이에 따라 임금이 올라가는 연공성 임금체계는 정년이 늘어나는 시대 흐름과 맞지 않다. 직무급·직능급·성과급 같은 임금체계를 고민할 때다. 다만 임금체계 개편은 단기간에 이룰 수 없고 그런 전례도 없다. 노사정이 임금체계 개편을 위한 재단이나 공동연구 모임을 만들어 장기적으로 함께 연구하고 뜻을 모아 가면서 관행을 바꿔야 할 문제다.

재벌개혁·비정규직 해소 빠진 노동개혁 

▲ 이남신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소장)

대통령이라면 국민이 고통받고 있는 문제에 착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런데 이번 담화에서는 세월호·메르스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서민의 삶에 대해선 일체 얘기하지 않고 노동개혁을 필두로 한 4대 부문 개혁에만 초점을 맞췄다. 답답하다.

더군다나 노동개혁은 대통령이 담화로 얘기할 게 아니다. 양대 노총이나 비정규직 당사자들과 현장에서 논의하고 온전한 의미에서의 노사정 합의를 이끌어 내야 하는 사안이다. 마치 선전포고하듯이 발표하는 모습을 보면서 독재자의 딸 이미지를 투영할 수밖에 없었다.

담화의 핵심이 임금피크제를 통한 청년일자리 창출인데, 현실에서 드러났듯이 임금피크제와 청년고용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대단히 위악적인 논리다. 청년고용 문제는 별도의 정책대안이 나와야 하고, 임금피크제는 노동시간 피크제로 불리는 노동시간단축과 함께 가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임금피크제는 정규직 노동자들의 정당한 임금을 뺏는 역할밖에 하지 않는다. 정부가 세대갈등과 청년고용을 접목해서 노리는 건 정규직노조를 정조준하는 것 외에는 의미가 없다고 본다.

노동시장 양극화 문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최상위 1% 재벌과 슈퍼갑이 똬리를 틀고 있는 구조를 혁파하지 않는 한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 비정규직 고용형태에 대한 해법이나 사용사유 제한, 최저임금 대폭 인상 같은 핵심적인 해법을 내놓지 않는 한 노동시장 개혁이라는 말을 쓰면 안 된다. 대통령 말 한마디로 강행하겠다는 노동시장 개혁은 개악일 뿐만 아니라 실패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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