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가 주최하는 금융인 문화제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85년 시작된 금융인 문화제는 2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금융산업 종사자들이 창작한 문학·미술 분야 예술 작품을 심사해 각 부문 최고작을 가리는 대회다. <매일노동뉴스>가 올해 열린 제16회 금융인 문화제 부문별(시·소설·사진) 대상 수상작 3편을 차례로 소개한다. 올해는 총 411편의 작품이 출품됐다.<편집자>

금요일까지 시간이 참 더디게 갔다. 발표일이 임박하자 서랍정리를 하고 책 정리를 하는 둥 딴청을 피웠다. 금요일 오전 긴장감을 덜어 내기 위해 방 청소를 하고 있는데 오전 10시쯤 ‘뚜뚜’ 소리를 내며 핸드폰이 울렸다.

"실무면접 합격을 축하드립니다. 임원면접 일정은 홈페이지를 참고 바랍니다."

순간 가슴이 싸해졌다. 주먹을 불끈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최종 관문만이 남았다.

화요일 오전 9시30분 임원면접을 위해 지원자들은 회의실에 모였다 최종까지 온 사람은 8명이었다. 김한민 차장은 실무면접 때와 똑같은 모습이었다.

“잘들 지내셨습니까? 이제 제가 면접관이 아니니 저도 부담이 좀 덜합니다. 면접은 정확히 30분 후에 10층 임원 회의실에서 진행되며 면접관으로 들어오시는 임원 분들은 총 네 분입니다. 면접장에 들어가면 가운데 오른쪽에 앉아 있는 분이 이 회사의 대표이사 데이비드 킴입니다. 미리 말씀드리지만 한국계 미국인이고 한국말이 다소 서툴러서 질문을 영어로 하실 겁니다. 어려운 질문은 하지 않으시기 때문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머지 전무님과 두 분 상무님도 마찬가지로 평범한 질문을 하시니까 실무면접 때처럼 답변하시면 됩니다. 한 분당 5분 정도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면접까지 시간이 좀 남았는데 뒤에 준비해 놓은 차라도 드시면서 긴장을 풀고 계십시오.”

최종 면접이라고 생각하니 얼마 전 최종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것이 생각나 순간 가슴이 울컥했다. 실무면접 때보다 10배는 더 떨리는 기분이었다. 앞에 두 명밖에 없으니 차례가 금방 왔다. 문을 열고 임원 면접장에 들어서자 한국인인 듯 외국인인 듯 묘한 얼굴의 검은 머리 사람이 중간에 앉아 있었다. 드디어 이 게임의 끝판왕이었다. 아무리 검은 머리를 해도 미국인에게는 특유의 표정이 있었다. 나는 회의실 중앙으로 걸어가서 자세를 바로잡고 임원들에게 꾸벅 인사를 했고 서류를 유심히 보고 있던 끝판왕이 바로 질문을 했다. 굵직한 성대에서 나오는 본토 영어 발음이었다.

“당신은 취미를 독서라고 했는데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은 무엇입니까?”

끝판왕이 알 만한 책이 뭐가 있을까?

“호밀 밭의 파수꾼입니다.”

“그거 좋은 책이지.”

“여행을 오랫동안 했는데 미국에도 갔었나?”

“가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알고 있겠지만 우리 회사의 본사가 캘리포니아에 있네. 기회가 된다면 가고 싶은가?”

“물론입니다. 어디든 갈 수 있습니다.”

끝판왕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질문이 끝났음을 알 수 있었다. 나머지 임원진들은 IT 산업의 미래, 관심 분야, 군대, 여행 등에 대해 물어봤고 예상되는 질문을 어느 정도 준비해 왔기 때문에 막히지 않고 무난하게 대답할 수 있었다. 면접을 마치고 8층 회의실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면접 안내를 맡은 이국적인 외모의 여직원이 나를 불렀다.

“박지운 지원자님, 8층 말고 9층 회의실로 가시면 됩니다.”

면접이 끝나면 8층으로 내려오라고 했는데, 장소가 바뀐 건가.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안내에 따라 9층 회의실로 내려갔다.

회의실엔 김한민 차장이 홀로 앉아 있었다. 나는 아무도 없는 것을 알면서도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잠시 동안 적막이 흘렀다.

“면접은 잘 보셨습니까? 편하게 앉으십시오.”

나는 김한민 차장을 마주 보고 앉았다.

“박지운씨는 혹시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라고 생각하십니까?”

“IT 분야에서 굴지의 글로벌 기업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현재 업계에서 우리만큼 성과를 내는 곳은 거의 없습니다. 거기다 연봉은 대기업 수준이고 업무강도 또한 센 편이 아닙니다. 박지운씨는 여기서 어떤 일이 하고 싶습니까?”

“저는 현재의 IT 기반 경영시스템에 물리적인 분야까지 결합시켜 한층 더….”

김한민 차장이 대뜸 말을 잘랐다.

“잘 알겠습니다. 이제 본론을 말씀드리겠습니다. 박지운씨는 우리가 토론면접을 왜 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건, 자기 의사를 논리 정연하게 표현하고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는 자세를 평가하기 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맞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 토론주제를 굉장히 오랫동안 사용하고 있습니다. 제가 여기 인사담당 과장으로 발령 난 후부터 차장이 된 지금까지 수시채용을 할 때마다 그 질문을 항상 던졌습니다. 왜일까요?”

“혹시….”

“맞습니다. 실무면접이 끝나고 저에게 물어보셨죠. 사실 그 질문에 대한 지원자의 답변이 면접의 합격 여부를 가르는 기준이 됩니다.”

“그럼, 그런 중요한 사실을 왜 저에게 말씀해 주시는 건지…. 혹시 제 대답이 이 회사가 원하는 답변이었다는 겁니까?”

김한민 차장은 대답 대신 씩 웃어 보였다. 나는 그 웃음의 의미를 알 것 같았다. 갑자기 이상야릇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제가 면접에서 최종적으로 합격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아직은 아닙니다."

“그럼 무슨 면접이 또 남았다는 말씀이십니까?”

“아니요.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걸 이제 당신이 정할 수 있습니다.”

“무엇을 정한다는 것인지? 설마 합격 여부를 제가 정할 수 있다는 겁니까?”

김한민 차장은 대답 대신 불쑥 다른 얘기를 꺼냈다.

“데이비드 킴이 혹시 캘리포니아 본사 얘기를 하던가요?”

“네, 미국 본사 파견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최종 면접에서 4명이 합격합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은 캘리포니아로 갑니다. 사실 그 한 명이 이번 공채의 목적입니다. 한 명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어찌 보면 전부 들러리입니다. 그 사람들은 합격해서 그럭저럭 이 회사에 다니겠지요. 하지만 그들이 하는 일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당신이 합격하게 된다면 3개월의 수습기간을 마치고 바로 캘리포니아로 갑니다."

“캘리포니아요? 가면 오래 있어야 하는 겁니까?”

“그건 경우에 따라 다릅니다. 후임자가 뽑힐 때까지 있는 것이 원칙입니다. 저는 6년 반 만에 돌아왔습니다. 지금 캘리포니아에 있는 사람은 제 후임자입니다. 7년째 그곳에 있습니다. 물론 일 년에 한 달 정도 휴가가 있고 그때 한국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그런 조건이라면 누가 마다하겠습니까? 좋습니다. 당장이라도 가겠습니다.”

김한민 차장은 내 말에 갑자기 인상을 찌푸렸다.

“박지운씨, 무조건 좋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가서 무슨 일을 하는지는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여기서 하는 것과 비슷한 일을 하는 게 아닙니까?”

“아니요. 그것과 정반대되는 일을 합니다.”

“그럼….”

“토론주제를 생각하시면 됩니다.”

“인류 멸망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비슷한 일을 합니다. 자세한 건 더 이상 말씀드릴 수가 없습니다.”

불현듯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인류 멸종 방법을 연구하기라도 한답니까?”

“우리는 당신이 결국 할 수 있는 일을 시킬 겁니다.”

나는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일까? 이 사람은 갑자기 미친 것도 아니고 다짜고짜 나한테 왜 이런 해괴한 말을 하고 있는 것인가?

“이제 시간이 얼마 없습니다. 조금 있으면 임원진 면접이 끝납니다. 그전에 8층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저도 임원 회의실에 들어가야 하고요.”

“차장님. 죄송하지만 최종 합격자는 임원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닙니까?”

“누군가를 뽑으시겠지만 8명 중에 누가 뽑혀도 결국 비슷하다는 걸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누구보다도 캘리포니아에 갈 사람이 필요합니다.”

“전….”

“선택하십시오.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여덟 명 중 적격자는 박지운씨 말고 없습니다. 다른 누군가 캘리포니아로 가게 되면 100% 돌아옵니다. 저는 조금이라도 가능성 있는 박지운씨를 뽑고자 하는 겁니다.”

“솔직히 조금 두려운 생각이 듭니다. 그냥 한국에서 일할 수는 없나요?”

“박지운씨. 아직 감을 못 잡으신 것 같습니다. 이럴 땐 의외로 낙천적인 기질이 있으십니다. 당신이 인적성 검사에서 어떻게 합격한 것 같습니까? 인적성 검사라는 아이큐 테스트 속에 도대체 목적을 알 수 없는 질문들이 참 많았지요. 당신의 답안이 캘리포니아에 있는 내 후임자의 답안과 유사성이 무려 93%였습니다. 일반적인 사람의 경우 아무리 비슷해도 그 사람과의 유사성이 60%를 넘기 힘듭니다. 당신은 매우 이상한 사람입니다. 정말 특이한 사람이란 말입니다. 평범한 사람은 단 하루도 거기서 못 버팁니다. 그렇게 가자마자 돌아온 사람이 지난 5년 동안 스무 명이 넘습니다. 아무나 보낼 수 있는 자리가 아니란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도….”

“박지운씨! 아직도 눈치를 못 채신 겁니까? 실무면접 때 영어시험에서는 과연 몇 등을 했을까요? 지원자들 90%가 미국 살다온 사람, 미국 대학 출신, 해외 연수자들, 소위 말해 여긴 고스펙자들이 널렸습니다. 토익 900점 넘었다고 영어가 좀 된다고 착각하시는 겁니까? 이제 아시겠습니까?”

“그럼 제 점수가….”

“인적성 검사는 실무면접 대상자 평균을 간신히 넘겼고 영어점수는 최하위권입니다. 박지운씨. 딱 5분 드리겠습니다.”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습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몇 가지만 여쭤 보고 싶습니다. 회사 입장에서는 저를 뽑아서 그냥 캘리포니아에 보내 버리면 될 텐데 굳이 이렇게까지 물어봐 주시는 이유는 대체 무엇입니까?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가 되질 않습니다!”

점수 얘기를 듣고 나니 나도 모르게 속에서 열이 뻗치기 시작했다.

“제가 그곳에 6년 반을 있었습니다. 당신 같은 기질의 사람은 일단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이건 지원자를 위한 최소한의 매너 같은 것입니다. 지금 제가 면접장에 들어가서 데이비드 킴에게 당신이 캘리포니아에 갈 적임자라고 하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감사한 일이군요. 차장님, 그런데 인적성 검사와 면접 한두 번으로 지원자를 다 아실 수가 있는 겁니까? 어떻게 지금 이 순간 저를 확신하십니까?”

“물론 알 수가 없지요. 지원자가 수천 명인데 절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알았다면 지난 수년간 그러한 시행착오가 없었겠지요. 하지만 수십 번의 실패를 통해서 적임자를 찾기 위해서는 공채가 불가피하다고 느꼈고 내 판단이 옳다면 박지운씨는 수천 명의 참가자 중에서 이 자리에 가장 적합한 사람입니다. 저는 이미 실무면접 때 제 질문에 대한 박지운씨의 답변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때 확신을 얻기 위해 당신에게 재차 물어본 것뿐입니다. 박지운씨는 인적성 검사 때 이미 몇 번이나 제가 원하는 답변을 하셨습니다. 저는 채용 담당만 7년을 했고 면접을 본 사람만 수백 명이 넘습니다. 당신은 중요한 순간에는 결코 거짓말을 못하는 유형의 인간입니다. 이제 대답하십시오. 정말로 시간이 없습니다.”

나는 지금 결정해야 한다. 합격의 당락을 내가 정할 수 있다. 내가 정해야만 한다. 도대체 캘리포니아에 가면 무슨 일을 하게 되는 것일까? 과연 얼마나 무서운 게 기다리고 있단 말인가? 정신병이라도 얻어서 돌아오는 것은 아닐까? 가지 않겠다고 하면 탈락이다. 그리고 원칙대로 한다면 나는 실무면접 때 이미 탈락했어야 했다. 나에게 선택의 여지란 것이 있을까? 다 헛소리다. 여기 들어온 순간부터 나에겐 선택권이 없었다. ‘O’ 팻말만 들고서 OX게임을 한 것이다. 순간, 나는 확신인지 체념인지 모를 말을 내뱉었다.

“차장님, 캘리포니아에 가겠습니다.”

김한민 차장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시계를 한참 동안 들여다보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

“당신은 잘 해낼 겁니다. 이제 8층 회의실에 가 있으십시오.”

계단을 내려오면서 불과 지난 20분 동안 일어난 일이 도무지 믿겨지지가 않았다. 나는 이 회사에 합격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합격을 다른 사람도 아닌 나 스스로 결정했다.

입사 후 1년이 지났다. 나는 지금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 씨큐스탠다드 본사에 있다. 엄밀히 말하면 본사의 별관에서 일하고 있다. 이곳은 씨큐스탠다드의 아시아·유럽·중남미, 그리고 아프리카 해외법인에서 파견나온 50여명의 직원들이 함께 일하는 곳이다. 처음 도착해서 3개월 정도는 본사에서 다시 연수를 받았고 연수가 끝나고 한동안은 한국법인에서 보내준 자료를 분석하고, 테스트한 후 그것으로 보고서를 만드는 작업을 했다. 그리고 내 전임자가 떠난 후 나는 본격적으로 ‘그 일’에 투입됐다. 안타깝게도 내가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는 말해 주기 어렵다. 그저 1년 전 토론주제의 해답을 지구 반대편에서 찾고 있다는 말로 대신해야겠다. 얼마 전 파견나온 후 단 한 번도 연락이 없었던 김한민 차장으로부터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그는 올해 초 부장으로 승진해 있었다. 이메일은 일상적인 안부를 묻다가, 마지막에 뜬금없는 질문을 하나 던지고 있었다.

"박지운씨는 구원을 믿습니까?"

나는 간단하게 한 줄로 답장을 남겼다.

"최근에 성당에 나가고 있습니다. 한국에 있을 때보다 자주 갑니다. 땡큐."

구원이라? 나는 구원을 믿지 않는다. 회사에 들어오기 전에도 그랬고, 캘리포니아에 온 지금도 그렇다. 나는 성당에 가지만 미사에 참석하지는 않았다. 성당에 가는 이유는 그곳이 명상과 반성을 할 수 있는 유일한 장소이기 때문이었다.

시간은 때로는 느리게 때로는 빠르게 흘렀다. 캘리포니아에 온 지 1년 반이 지났고 다음 달에 휴가가 예정돼 있었다. 한국에는 가지 않기로 했다. 30년 가까이 살아온 땅이 어느 순간부터 미지의 세계처럼 느껴졌다. 그것을 다시 마주하는 것이 어색하고, 한편으론 두려웠다. 한 달 동안 여행을 할 계획이다. 행선지는 이곳 캘리포니아에서 8천킬로미터 떨어진 볼리비아의 아마존 밀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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