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기자

“세월호 참사 이후 대한민국은 사회적 가치를 재구성해야 한다. 지금은 돈보다 생명이 중요하다는 가치가 뒤집어져 있다. 우리가 어디로 갈지, 어떤 희망을 만들지 말이다. 이는 우리가 참여할 때 가능하다. 오래 걸리더라도 끝까지 갈 것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3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사무실에서 김혜진(49·사진) 4월16일의약속국민연대(4·16연대) 상임운영위원을 만났다. 4·16연대는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만든 상설단체다. 6월28일 공식 발족했다.

2000년부터 비정규직 노동운동을 해 온 김혜진 상임운영위원은 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이자 장그래 살리기 운동본부 정책팀장이다.

“시민들이 왜 분노했는지 알아야 한다”

- 구속된 박래군 4·16연대 상임운영위원과 함께 세월호 참사 1주기 불법집회 주도 혐의로 기소됐는데.


“지난달 16일 서울중앙지법 영장실질심사에서 박래군 위원은 구속됐고, 나는 기각됐다. 검찰은 같은달 31일 형법상 일반교통방해죄와 특수공무방해죄,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 위반 혐의로 박 위원을 기소했다. 이후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를 추가했다. 나 역시 불구속 상태에서 비슷한 혐의로 이달 중순부터 재판을 받게 된다. 검찰은 4월11·16·18일, 5월1일 세월호 참사 1주기 추모집회가 정치적 요구 중심의 불법폭력집회로 변질됐다고 강변한다.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김 위원은 "당시 추모집회는 4·16연대가 주최했지만 그 집회가 왜 준비됐는지, 시민들이 왜 분노했는지 이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4·16세월호참사 진상규명 및 안전사회 건설 등을 위한 특별법이 올해 1월 시행됐다. 정부는 3월에 시행령을 발표했다. 유가족과 시민들은 공무원이 요직에 앉는 시행령에 분노했다. 이 상태로는 진상규명이 어렵겠다고 여겼다. 유가족들은 단체로 삭발하고 도보행진을 했다. 1주기 집회는 추모만이 아니라 정부 시행령을 폐기하고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성격이 강했다. 그런데 정부는 4월11일 이전부터 차벽을 설치했고 광화문광장에 있는 유가족 농성장과 분향소로 가는 길까지 막았다. 경찰은 최루액과 물대포를 쓰면서 시민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했다.”

김 위원은 박 위원이 구속된 직후인 지난달 25일 팽목항에서 열린 4·16연대 전국운영위원회에서 상임운영위원으로 선출됐다.

- 4·16연대에는 어떻게 합류하게 됐나.

“불안정노동철폐연대는 인권단체연석회의 소속단체다. 우리는 이전부터 비정규직이 공공부문에서 많이 활용되면서 사회적 위험이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해 왔다. 세월호가 참사가 났을 때 아뿔싸 했다. 우리 사회의 위험 상태를 더 빨리 말했어야 했는데.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다음달인 지난해 5월 초 인권단체들이 모여 함께할 수 있는 일을 논의했다. 초기에는 희생자 애도가 평등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봤다. 알바노동자란 이유로 장례절차도 제대로 밟지 못하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존엄과 안전위원회를 만들었다. 그 뒤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여한 가운데 세월호 참사 국민대책회의가 꾸려졌다. 그때 공동운영위원장을 맡았다. 그런 다음 4·16연대가 출범했고, 안전과 존엄위원회는 4·16연대 산하조직이 됐다.”

국민대책회의와 4·16연대는 큰 차이가 있다. 국민대책회의는 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조직이다. 반면 4·16연대는 시민·사회단체는 물론이고 유가족·풀뿌리단체·일반 시민을 아우르는 상설단체다. 김 위원은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끝까지 책임지기 위해 만든 조직”이라고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진실을 두려워하는 정부”

- 정부가 황교안 국무총리 취임 직후 4·16연대를 압수수색했는데.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 활동을 무력화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정부는 진실이 밝혀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 같다. 처음에는 유가족들이 중심이 돼 진실을 밝히려 했고, 그 힘이 모아져서 특별조사위가 구성됐다. 그런데 정부의 방해로 특별조사위가 무력화 위기에 처했다. 그래서 유가족 힘만으로는 진실규명이 어려우니 시민·사회단체와 일반 시민들이 함께 4·16연대를 만든 것이다. 4·16연대가 존재하는 한 진상규명 활동은 계속된다. 정부가 4·16연대를 압수수색한 이유다.”

- 특별조사위가 제 역할을 못하고 있는 것 같다.

“4·16연대와 세월호 가족협의회는 지난달 29일 세월호 참사 진실규명·안전대책·추모지원·선체인양을 위한 82대 과제를 제시했다. 이전까지는 진실을 밝히라고만 했지, 어떤 진실을 밝히라고 말한 적이 없다. 공식기관을 통한 온전한 진상규명을 바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 국회 국정감사까지 뭐 하나 제대로 진행된 게 없다. 이제 특별조사위 하나 남았다. 정부는 특별조사위 활동을 노골적으로 방해하고 있다. 특별조사위를 통해 진실을 밝히는 게 어려울 수 있다는 위기감도 든다. 82대 과제를 발표한 배경이다. 82대 과제를 밝혀내고, 시민들은 이를 잊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다. 물론 최후의 순간까지는 특별조사위가 그 역할을 맡아야 한다. 특별조사위가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의제를 드러내는 것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 세월호 참사에서 희생된 기간제 교사 고 김초원·이지혜씨를 순직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순직을 인정받지 못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교육공무원으로서 공무 중 사망한 만큼 순직처리를 해도 현행법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정부가 순직을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다른 기간제 노동자의 차별적 처우개선으로 확산될까 우려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얘기도 나왔다. 두 사람에게만 한정하겠다는 뜻인데,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 권리다. 당연히 순직을 인정받아야 한다. 시혜를 베풀 듯이 처리해서는 곤란하다. 그대로 인정해야 한다.”

세월호 참사에서도 비정규직은 서럽다. 특히 아르바이트 희생자와 생존자들은 제대로 된 인정과 치유를 받지 못하고 있다.

“청해진해운은 이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장례비도 내주지 않았다. 인천시가 대납하는 형태로 장례를 치렀다. 그럼에도 이들은 청해진 직원으로 간주돼 죽음과 아픔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친구를 잃은 생존자들은 지금 군대에 가 있다. 슬픈 일이다.”

“정치와 기업 카르텔 막아야 국민이 산다”

- 정부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주장하며 노동계를 압박하고 있는데.


“지금도 일방적으로 강한 기업의 힘을 더 기업 위주로 재편하려는 것이라고 본다. 기업이 마음대로 노동자를 쓰고 버리고, 노동자가 저항할 때 탄압하도록 힘을 주겠다는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기업과 이윤 중심 사회가 얼마나 끔찍한지 적나라하게 보여 줬다. 정치와 기업이 카르텔을 형성하면 시민 안전과 노동자 권리 보장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막아야 한다.

정부의 노동개혁은 결국 비정규직과 청년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다. 민주노조운동은 이제 비정규·미조직·중소영세·청년노동자의 권리를 내걸고 싸워야 한다. 시민사회 역시 최근 들어 노동문제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나타난 변화다. 이런 흐름을 잘 연결해 대안을 제시하면서 지원하고 싸워야 한다.”

-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은 어떻게 진행될 것 같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 법·제도 개선을 위해 특별조사위가 제 역할을 해야 한다. 활동기간 1년6개월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1989년 영국 힐스버러 축구장 압사사건이 발생했다. 96명이 숨지고 766명이 다쳤다. 사고조사위원회가 세 차례나 만들어졌다. 정부의 방해로 1·2차가 무력화됐는데, 2012년 3차에 와서야 진상이 규명됐다. 23년 만의 일이었다. 특별조사위가 제대로 활동할 수 있도록 특별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달 29일은 세월호 참사 501일째 되는 날이다. 서울에서 범국민대회를 개최한다. 많은 시민들이 함께했으면 좋겠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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