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기자

4일 오전 서울 강남구 역삼동 JT친애저축은행 본점에 치바 노부이쿠 JT친애저축은행 이사가 빨간조끼를 입고 나타났다. 조끼 뒷면에는 "우리는 고객과 사원과 회사를 지킨다"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다.

치바 이사는 "연봉 삭감 인사평가 결사 반대"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서 있던 김성대(39·사진) 사무금융노조 저축은행지부 JT친애저축은행지회장 앞에서 주먹을 쥐어 보이며 "파이팅"을 외친 뒤 건물 안으로 총총히 사라졌다.

김성대 지회장은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김 지회장은 기자에게 "우리가 조끼 입고 피켓을 드니 경영진도 투쟁조끼를 입고 온 것"이라며 "노조와 싸우겠다는 뜻 아니겠냐"고 어이없어했다.

피케팅하자 빨간조끼 입고 온 일본 경영진

JT친애저축은행이 노사갈등을 겪고 있다. 일본계 금융회사인 J트러스트가 2012년 부도난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해 친애저축은행(현 JT친애저축은행)을 설립한 지 3년 만이다.

표면적으로는 회사가 이달부터 시행하는 연봉삭감형 '제3기 인사평가제도'<본지 8월4일자 6면 'JT친애저축은행 노사 연봉삭감형 인사평가제 갈등' 참조> 강행을 놓고 대립하는 형국이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난 3년간 업계 최저의 임금·복지를 묵묵히 감내한 직원들의 불만이 인사평가제를 계기로 폭발했다고 봐야 한다. 그럼에도 경영진은 외려 빨간조끼를 입고 '할 테면 해 보라'는 식의 맞불을 놓고 있다.

이날로 세 번째 휴가를 내고 본점 앞 피케팅에 나선 김 지회장은 "형편없는 수준의 노동조건을 3년간 견뎠다"며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회사는 업계 최저 수준의 임금·복지를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지회에 따르면 JT친애저축은행의 연봉 수준은 제2금융권 평균보다도 40~50% 낮다. J트러스트가 자산부채인수(P&A) 방식으로 미래저축은행을 인수하면서 직원 300여명의 연봉을 20%씩 일괄 삭감한 탓이다. 신입직원 초봉(2천500만원)보다 적은 연봉을 받는 직원들도 있다.

"복리후생이라고 해 봤자 설·추석 상품권 5만원 지급이 다예요. 상여금은 언감생심이죠."

김 지회장은 "본점 비대면 부서에서는 믹스커피 하나도 직원들이 돈을 모아 사 먹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1년 전 노조설립을 시도했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면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는 경영진의 간곡한 부탁에 일단 중지했다. 하지만 기다림 끝에 되돌아온 것은 야간식대 지급뿐이었다. 김 지회장은 올해 4월 지회를 설립하고 은행에 임금·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고 나섰다.

"광고비만 줄여도 임금·복지 개선 가능"

노조 깃발이 띄워지자 회사는 '배신감'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치바 이사는 김 지회장에게 "안그래도 임금·복지 수준 개선계획을 만들어 그룹 승인을 받기로 했는데 노조가 만들어져 아쉽다"고 말했다.

김 지회장은 "경영진이 노동조건 개선의지를 갖고 있다면 노조 결성 여부가 무슨 상관이냐"며 "그런데도 경영진은 '노조가 결성돼 아쉽다'는 말만 되풀이한다"고 꼬집었다.

지회는 회사에 노조활동 보장과 직위별 최저연봉제 도입, 같은 그룹사인 JT저축은행과 JT캐피탈에 준하는 복지를 요구하고 있다. 그런 가운데 JT친애저축은행은 최근 금융감독원 감사에서 광고비 과다지출을 지적받았다. 김 지회장은 "지난해 기준으로 120억원 이상을 광고비로 집행했는데, 광고비만 10%씩 단계적으로 줄여도 임금·복지를 개선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리한 요구가 아니며 지금 당장 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고 강조했다.

"회사가 5년 안에 임금·복지를 업계 평균까지는 맞춰 주겠다고 약속했는데, 이미 3년이 지났습니다. 앞으로 2년 남았어요. 저희가 요구하는 것은 간단합니다. 직원들의 노동조건을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보여 달라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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