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노조가 주최하는 금융인 문화제가 올해로 30주년을 맞았다. 1985년 시작된 금융인 문화제는 2년에 한 번씩 개최된다. 금융산업 종사자들이 창작한 문학·미술 분야 예술 작품을 심사해 각 부문 최고작을 가리는 대회다. <매일노동뉴스>가 올해 열린 제16회 금융인 문화제 부문별(시·소설·사진) 대상 수상작 3편을 차례로 소개한다. 올해는 총 411편의 작품이 출품됐다.<편집자>

20년 묵은 아파트 단지에 나무그늘이 있다

아버지는 자꾸만 귀가 적신다며

바람 무늬 그려진 목판에 앉는다

덩굴 끝자락에 매달린 거미줄에

종종 눅눅한 바람이 걸리고

실처럼 가늘게 엉켜진 푸념뭉치가

또 아버지 그리움으로 거미줄 사이로 맺힌다

해진 슬리퍼 사이를 서성이던 바람에

아버지는 국화를 던진다

모난 시멘트바닥이 아버지의 어머니를 받아들었다

국화가 피어오르고,

덩굴에 아슬하게 매달린 흔들리던 바람을 쫓아

아버지 귀는 쉽게 마를 줄 모른다

아버지의 기억의 고집을 잡고 늘어지며

눅눅해진 덩굴 사이로 바람을 불어 넣고

국화가 흔들린다

아버지의 기억이 바래지고

어느새 늘어진 추리닝 소매가 누렇게 번진다

아버지의 어머니 모습이 묻어난다

국화는 덩굴 가지 끝에 실을 묶고 있다


목판에 앉은 아버지의 푸념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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