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우리 시대 노동운동의 ‘히어로’가 업무방해죄 방조범이 됐다. 이 나라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 최병승은 지난 22일 항소심에서 유죄판결을 받았다. 어제 나는 뉴스로 판결을 읽었다. 2010년 7월22일 대법원은 현대차 울산공장 사내하청 근로자였다가 해고된 최병승에 대해 파견근로를 했던 거라며 현대차 근로자라고, 부당해고라고 판결했다. 최초로 대법원이 현대차 사내하청근로를 파견근로라고 인정한 판결이었다. 이 사건 판결을 계기로 현대차에서 정규직화를 요구하는 비정규직 투쟁이 급속히 되살아났다. 비정규직노조가 중심이 돼서 법원에 현대차를 상대로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을 집단적으로 제기하는 한편, 직접 현대차를 상대로 불법파견 중단,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며 파업투쟁에 돌입했고 급기야는 2010년 11월15일부터 같은해 12월9일까지 25일간 점거농성 투쟁으로 전개됐다. 벌써 2010년의 일이다.

2. 기사는 “법원이 노동자들의 점거농성을 지지했다는 이유만으로 형법상 업무방해 방조 혐의를 인정해 논란이 되고 있다”며 “노동계는 전두환 정권 때 신설돼 노동·민주화 운동 탄압에 악용되다 2006년 사라진 ‘제3자 개입 금지’가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했다”고 보도했다. 제3자 개입금지조항은 이 나라에서 오랫동안 노동운동을 탄압하는 대표적인 악법이었다. 제3자 개입금지조항은 1980년 12월31일 노동쟁의조정법(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으로 도입됐다. 당시 “직접 근로관계를 맺고 있는 근로자나 당해 노동조합 또는 사용자 기타 법령에 의해 정당한 권한을 가진 자를 제외하고는 누구든지 쟁의행위에 관해 관계당사자를 조종·선동·방해하거나 기타 이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개입하는 행위를 해서는 아니 된다”고 규정하고(제13조의2), 이를 위반하면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다 1996년 12월31일 새로이 통합 제정된 노조법은 상급단체, 노동부에 신고한 자 등을 제외한 자는 “단체교섭 또는 쟁의행위에 간여하거나 이를 조종·선동해서는 아니 된다”고 변경해서 규정하고(제40조), 이를 위반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했다. 그리고 이 악법은 2006년 12월30일 노조법 개정으로 사라졌다. 그런데 업무방해에 대한 방조죄를 최병승에게 적용해 판결함으로써 오늘 다시 이 ‘제3자 개입금지’가 부활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고 뉴스는 보도하고 있었다.

3. 당시 금속노조 미조직비정규직사업국장이던 최병승이 비정규직 조합원들의 파업투쟁에서 집회를 열고 농성장에서 지지 발언을 한 것이 업무방해 방조죄라니 폐지된 ‘제3자 개입금지’가 사실상 되살아난 것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판결에 묻고 있는 것이다. 도재형 이화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지발언·기자회견만으로 처벌이 가능했던 제3자 개입 금지 조항과 유사한 이번 판결로 노동 3권과 표현의 자유가 위축될 우려가 있다”고 말하고,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노동위원회 강문대 위원장은 “이런 식이라면 민주노총·산별노조 위원장, 민변 변호사 등한테도 업무방해 방조 혐의가 광범위하게 적용될 수 있다”고 짚었다고 교수와 변호사의 말을 인용해서 보도했다. 문제의 판결이 아닐 수 없다. 악법, 제3자 개입금지제도가 되살아난 듯한 이번 판결을 심각하게 받아들여 비판해야 마땅한 일이다. 기껏해야 지지 집회를 열고 지지 발언을 한 것인데 업무방해 방조죄로 처벌하다니 이제 노동자·노조의 투쟁에 함부로 지지 집회를 열고 지지 발언을 해서는 안 될 일이겠다고, 문제의 판결이 아닐 수 없다고 우려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말이다. 문제의 판결이 이렇게 제3자 개입금지의 악법의 재연이라고 우려하는 것만으로 극복될 수 있는 것일까. 상고해서 대법원에서 다툴 것이라고 보도하고 있었다. 판결의 부정은 상급심 판결을 통해서 가능한데, 오늘 이 나라에서 이 문제의 판결이 대법원에서 당연히 부정될 것이라는 기대가 우리에게 법적으로 남아 있는가.

4. 최병승이 방조범으로 처벌받게 된 업무방해죄는 위력으로 사람의 업무를 방해한 자를 처벌하는 범죄다. 형법 제314조에서 정하고 있다. 여기서 위력은 사람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에 족한 세력을 말하고, 폭행이나 협박을 가하거나, 사회적·경제적·정치적인 지위와 권세를 행사하거나, 단체나 다중의 힘을 과시하는 것 등 유형적이든 무형적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으며, 범인의 위세, 사람수 및 주위의 상황 등에 비추어 피해자의 자유의사를 제압하기 족한 것이면 충분하고 현실적으로 피해자의 자유의사가 제압됐는가는 묻지 않는다는 것이 이 나라에서 확고한 대법원 판례의 태도이다. 그러니 노동조합이 파업 등으로 그 주장 관철을 목적으로 사용자 업무의 정상적인 운영을 저해하는 것으로 정의하고 있는 노조법의 쟁의행위가(제2조제6호) 업무방해죄의 위력에 해당한다는 것은 이 나라 법원 판사들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것이었다. 노조의 파업투쟁은 정당하지 않는 한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것이 오랫동안 법원의 판례였다. 그나마 최근에야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전격적으로 실시돼서 사용자에게 중대한 손해를 입게 하지 않은 경우라면 파업투쟁은 업무방해죄를 구성하지 아니한다고 판단해서 조금 안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번 판결에서 최병승에게 적용된 업무방해죄에 관해서는 2010년 말 점거농성투쟁에 관한 것이었으니 당시 투쟁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한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도 없었다. 이제 문제는 정범이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이 사건에서 최병승을 방조범으로 처벌하는 일만 남아 있었다. 그런데 "형법상 방조행위는 정범의 실행행위를 용이하게 하는 직간접의 모든 행위를 가리키는 것으로 유형적·물질적 방조뿐만 아니라 정범에게 범행의 결의를 강화하도록 하는 등 무형적·정신적 방조행위까지도 포함한다"는 것이 판례의 법리였다. 따라서 이번 판결에서 부산고등법원 재판부는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적 인물로서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상당한 파급력을 가진 최병승이 7회에 걸쳐 현대차 정문 앞에서 점거농성에 참가한 조합원들을 지지하는 집회에 참여해 사회를 보거나 기자회견을 열었고, 점거농성장에 들어가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에게 인사하고 농성을 지지하는 발언을 했으며, 금속노조 또는 쟁의대책위원회의 파업과 관련한 공문 등을 이메일로 보냄으로써 정범인 조합원들의 업무방해 범행을 인식하고 그 결의를 강화함과 아울러 그 범행을 용이하게 했다고 판단해 업무방해 방조범에 해당한다고 유죄를 선고하고 말았다.

5. 판결은 명백히 문제인데 법리적으로 명백히 문제라고 말할 수는 없다. 이 나라에서는 최병승이 업무방해 방조죄에 명백히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가 없다는 것이 문제다. 부산고등법원 재판부는 창조적으로 판결을 한 것이 아니다. 이미 오랫동안 수도 없이 반복해 왔던 판례 법리에 따라 비정규직지회 조합원들의 점거농성 파업투쟁은 업무방해죄의 정범이고, 이에 합세한 최병승은 그 방조범이라고 판결한 것이다. 제3자 개입금지의 악법이 되살아났다고 우리는 우려하지만 사실 그 우려는 이미 오래 전부터 존재해 왔던 것이다. 그리고 냉정하게 따져 보자면 제3자 개입금지제도과 직접 비교될 것은 아니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렇다. 제3자 개입금지제도는 노동조합의 정당한 단체교섭과 쟁의행위에 대한 지원조차도 금지하고 처벌하는 악법이었다. 그러나 이번 최병승에 대한 문제의 판결은 노동조합의 점거농성투쟁이 정당하지 않은 쟁의행위라는 전제에서 이에 대한 지원을 방조로서 처벌한 것이다. 문제는 노조의 파업투쟁에 지지집회를 열고 지지발언을 한다는 것이 아무리 파업투쟁이 정당하지 않고 범죄가 된다고 해도 과연 처벌하는 것이 적절하냐는 것이다. 집회와 발언에서 지지 의사표시가 점거농성을 계속하라고 했던 것인지 아니면 사용자의 불법파견을 비난하고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쟁취하자는 것에 불과했던 것인지 구체적으로 따져 보지 않고서 점거농성투쟁을 지원한 것이라며 방조범으로 판단한 것은 부당하다. 다시 업무방해죄가 문제다. 최병승 판결을 계기로 우리는 파업투쟁에 집회나 발언을 통해 지지를 표하는 것조차도 문제가 되고 말았다. 이 나라에서 법원이 그렇게 판결할 수도 있다는 법리가 존재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노동자투쟁에 적용하는 것은 문제라고 제기하는 노동운동이 없었기 때문에 오늘 우리는 최병승 판결에 제3자 개입금지의 악령이 되살아난 듯이 놀라고 있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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