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기흥공장과 탕정공장에서 일하다 암으로 사망한 황민웅씨와 연제욱씨의 기일입니다. (김지형 조정위원회 위원장이) 발표하시기 전에 돌아가신 분을 위해 묵념 한 번 했으면 좋겠습니다.”

고 황유미씨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23일 서울 서대문구 법무법인 지평 브리핑룸에서 조심스럽게 말문을 열었다. 이날은 조정위가 활동 8개월 만에 삼성전자와 직업병 피해 당사자들에게 제안할 조정권고안을 발표하는 자리였다. 황씨의 예상치 못한 제안에 이 자리에 참석한 직업병 피해협상 관계자와 취재진도 적잖이 놀랐다. 조정위 조정권고안에 관심이 쏠려 김지형 위원장에게 몰리던 열기가 수그러들었다. ‘오늘이 황민웅씨 기일이었구나’하는 탄식이 흘러나오는 듯한 기분도 들었다.

김지형 조정위원장은 “(황씨와 연씨) 고인의 명복을 빈다”며 “유명을 달리하신 다른 분들의 명복을 빌고 슬픔이 클 유가족에게 위로의 말씀을 전한다”고 묵념을 대신해 말했다. 김 위원장은 삼성전자와 직업병 피해 당사자들에게 “(삼성전자의 직업병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고, 교섭 과정에서 느낀 아픔을 견딘 점에 대해 박수와 위로를 전한다”고 덧붙였다.

이날 조정위 조정권고안을 둘러싸고 여러가지 해석이 분분하다.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협상이 ‘9부 능선’을 넘었다는 예측도 있다. 직업병 보상기준과 재발방지 대책을 둘러싸고 삼성전자와 반올림 모두 불만족스러워 할 민감한 내용이 남아 있어 앞으로 협상이 가시밭길이 될 것이라는 예상도 있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회사가 받아들이기 어려운 내용이 있어 고민이다”고 난색을 표명하기도 했다.

삼성전자 반도체사업부 기흥공장에서 근무한 황유미씨가 백혈병 진단을 받은 지도 올해 10년이 됐다. 황씨는 2007년 사망했다. 그동안 근로복지공단에 산재를 신청한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만 수십 명에 달한다. 황상기씨를 비롯해 직업병 피해자 가족은 지난 10년을 눈물로 보냈다.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가 잊혀지지 않고, 조정위를 통한 교섭이 이어지는 데는 직업병 피해 가족과 반올림의 노력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올해 삼성전자의 직업병 문제를 해결할 의미 있는 교섭 결과를 기다리는 이들이 많다. 삼성전자 직업병 문제를 관심 있게 취재하는 기자도 마찬가지다. 직업병 피해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당사자들이 10일 안에 조정권고안을 수용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삼성전자 직업병 피해자와 피해가족의 눈물을 닦아 줄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길 간절히 바란다. 그리고 직원들이 직업병으로부터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사업장을 만드는 데 삼성이 진심을 다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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