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정 대화 재개의 조건

청와대와 정부·여당이 연일 노동시장 구조개혁을 강조하고 있다. 노동자 동의 없는 취업규칙 불이익변경이나 일반해고 요건 완화가 핵심이다. 노동자들의 반대 역시 강경하다. 한국노총은 김동만 위원장이 삭발하며 시작한 천막농성을 23일로 11일째 하고 있고,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도 한 달째 총연맹서 농성을 벌이고 있다. 양대 노총 제조·공공·금융산별 공투본도 파업을 경고했다. 그야말로 강 대 강 충돌이다. 그래도 노사정 협상을 재개하자는 얘기는 나오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는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를 다시 가동할 것을, 야당은 국회 차원의 논의 틀 구성을 제안했다. 새누리당도 논의 틀 마련에 눈길을 두고 있다. 노사정 대화 재개의 조건은 무엇일까.

국회에서 원포인트 노사정 대화 재개해야

이병훈
중앙대 교수
(사회학과)

이제 노사정이 싸우기보다는 대화로 풀 때가 됐다. 현재 노정이 정면충돌하고 있다. 당·정·청이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일방적으로 강행하면서 노정 갈등을 빚고 있다. 설사 강행한다고 해도 노동현장에서 정부 의도대로 제대로 적용될 수 있을까. 사안별로 들어가면 합의가 쉽지 않지만 노동계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현장 갈등이 없도록 하면서 최대한 합의를 추진해야 한다.

급한 것을 우선순위로 두는 원포인트 사회적 대화를 제안한다. 일반해고 요건 완화, 취업규칙 변경 절차 완화 등 지난 노사정 대화에서 합의가 안 된 것을 갖고 합의하는 것이 쉽지 않다.

현재 시급한 것은 임금피크제다. 그것을 중심으로 원포인트로 논의하자는 것이다. 그 뒤 노사정 신뢰가 형성되면 그를 토대로 나머지 의제를 논의하면 된다. 단계적으로 접근하는 게 맞다. 지난 노사정 대화에서처럼 모든 의제를 다 끌고 와서 정부가 하자는 대로 하면 애당초 대화 자체가 성사되지 않는다. 또 다른 논란만 부를 뿐이다. 정부가 타협적인 입장을 가져야 한다.

협상 방식을 노사정위원회로 가져가는 것은 적절치 않다. 노사정위가 정부 입김에 의해 좌지우지되다 보니 한쪽으로 기우는 측면이 있다. 국회는 여야가 있고 공개된 형태의 협의가 가능하다. 그런 만큼 노사도 여론을 의식하고 정부도 일방적으로 가는 것이 제어될 수 있다. 국회에서 온전한 사회적 대화가 가능하다고 본다.

노사정 타협해 현안·개혁 과제 구분해 논의해야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금 정부는 일방적인 노동개혁 드라이브를 걸고, 노동계 일각에서는 강성 투쟁을 말하고 있다. 이러한 양 극단 편향은 우리나라 미래나 노사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러한 일방통행식 대립보다는 중용적 관점에서 어느 정도 타협 필요성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또 무엇을 어떻게 논의할지를 명확히 해야 논의를 재개할 수 있다. 우선은 당장의 현안과 개혁 과제를 분리할 필요가 있다. 근로시간단축·통상임금 문제는 개혁 과제는 아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대법원 판결도 있고 노사정위나 국회에서 노사 간 접점을 형성한 부분도 있다. 이 같은 현안은 빠르게 입법부가 매듭지어 주고, 노사정 대화에서는 개혁과제에 집중해야 한다. 임금체계 개선, 합리적 인사관리 문제가 그것이다. 무엇보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문제를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이런 의제들을 각각 범주화해 심도 있게 논의해야 논의를 진전시킬 수 있다.

정부가 국회에 노동시장 개혁 전담 대통합기구를 설치한다고 하는데, 국회가 중재자 역할을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자칫 모든 문제를 법률 개정 사항이라고 오해할 소지가 있다. 국회가 노사정위원회 역할을 수렴한다 해도 이는 입법적 영역에 대해서만 이뤄져야 한다. 임금체계처럼 노사자율 영역에 대해서는 국회가 관여할 부분은 아니다.

노사정 대화, 판부터 갈아야 한다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

정부·여당에서 노동계에 노사정 대화에 복귀할 것을 요구하고 있는데 노사정 대화가 재개되려면 세 가지 전제조건이 충족돼야 한다. 첫째, 판을 갈아야 한다. 노사정위원회에서 지난해 말부터 올해 봄까지 충분히 논의했고, 논의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더 이상 실효성 있는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그 판에서 다시 논의를 시작해 봤자 새 고기를 구울 수 없다.

둘째, 노동계가 제시한 5대 수용불가 사항(비정규직 사용기간 연장, 파견대상 업무 확대, 임금피크제 의무화, 임금체계 개편, 일반해고·취업규직 불이익변경 요건완화), 그중에서도 일반해고 완화와 취업규칙 불이익변경 요건 완화 같은 ‘킬러 토픽’(Killer topic·치명적 의제)은 제거해야 한다. 소모적인 갈등을 유발시킬 뿐이다. 마지막으로 인물교체가 필요하다.

이 세 가지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노사정 대화를 재개한다고 해도 논의의 결과물이 제대로 나올 수 없다. 양대 노총의 의견이 모아지는 공간에서 사회적 논의를 통해 결론을 도출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보면 국회에서 노동의제를 논의한 경험이 많다. 2003년 주5일제 논의, 2006년 비정규직법 논의, 2009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 논의가 그랬다. 가장 가깝게는 올 봄 공무원연금법 문제를 국회에서 논의했다. 노동시장 문제는 근로기준법·비정규직법 등 입법 문제와 맞물려 있기 때문에 이를 고려한다면 국회 내 논의기구에서 해야 한다.

정부 개악안 철회해야 논의 가능하다

박성식
민주노총 대변인

전체 노동자의 임금과 고용조건을 하향평준화해 재벌의 돈벌이 기반을 구축하려는 행위를 “노동개혁”이라고 부를 수는 없다. 정부가 이를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더욱 용납할 수 없는 행정 폭거다. 여기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노동개혁’이 아니라 ‘노사관계 개혁’이다. 현재 노사관계는 사용자의 강화된 지배수단과 전횡으로 퇴행을 거듭하고 있다. 또한 노사정위원회는 용도 폐기해야 한다. 사회적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정부는 늘 노사정위를 들러리로 활용하려 했으나 이미 실패했다. 책임은 정부에 있다. 독단적인 정부안을 내놓고 합의하라고 종용하는 방식으로는 대화가 가능하지 않으며, 시도해서도 안 된다. 그런 식의 논의는 사회적 대화가 아니다.

그럼에도 정부·여당은 또 다시 노사정위를 등장시켜 개악 정책을 종결지으려 하고 있어 우려가 크다. 이를 위해 최근 당·정·청이 총동원돼 강행 드라이브를 걸며 새삼 노동계를 압박하고 나섰다. 이러한 강요가 중단되지 않으면 대화는 없다. 사회적 토대인 노사관계를 개선하기 위한 논의는 당사자와 민심에 따라 국회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또한 국회에서 논의하더라도 구악을 청산하기 위한 전제가 필요하다. 첫째, 국회논의가 사안을 노사정위로 끌고 들어가기 위한 요식행위가 돼서는 안 된다. 결론이 나든 못 나든 국회 논의구조 안에서 이뤄져야 한다. 둘째, 공정하고 열린 대화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 정부안은 철회돼야 한다. 노와 사를 중심으로 논의 안을 새롭게 제시하고 정부와 국회는 공정한 중재자로서 역할을 해야 하는 것이 상식이다.

노사 기득권 내려놓고 대화하자

이형준
한국경총
노동정책본부장

노사정 대화가 재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노동개혁 특위를 구성해 노사정 논의를 이어 간다는 방침이다. 야당도 국회 차원의 논의기구에서 사회적 대화를 재개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서로의 생각에 차이가 있지만 노사정 대화 재개가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형성되고 노동개혁이 다시 국가적 의제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반가운 마음만큼이나 기성세대와 미래세대가 상생협력할 수 있는 노동개혁을 이뤄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뒤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이번에도 결실을 맺지 못하고 실패로 돌아간다면, 그 비난의 몫은 오롯이 대화 주체들에게 쏟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노사정 대화에 참여한 각 주체들은 노동시장의 정상화와 경쟁력 확보, 양질의 일자리 창출을 위해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더욱 책임 있는 자세로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대화의 초점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과 직무·성과중심의 임금체계 개편으로 집중돼야 한다. 정년 60세 연장으로 더욱 심각해질 청년들의 고용절벽을 막기 위해서는 고용유연화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개선 이외에 해법이 없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독일의 슈뢰더 전 총리는 정권을 잃는 대신 노동개혁을 일궈 냈다. 노사는 자기가 속한 집단의 단편적 이익만을 대변하기보다는 노조와 기업에게 쓴 소리를 들을 각오로 대화에 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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