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박표균(56·사진) 국민건강보험공단노조 위원장은 자신감이 넘쳤다. 노조는 지난해 10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와 한국노총 공공연맹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조가 통합해 올해 1월 정식 출범했다. 출범 7개월을 맞이한 노조는 빠른 속도로 조직이 안정화되고 있다.

임금협상 결렬에 따라 이달 15일 실시한 쟁의행위 찬반투표는 90%가 넘는 높은 투표율을 기록했다. 투표자 85%가 쟁의행위에 찬성했다. 임금인상·인력충원 같은 내부 현안뿐 아니라 정부가 추진하는 2단계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 저지를 내세운 집행부에 조합원들이 힘을 실어 준 것이다. 쟁의행위 찬반투표와 함께 실시한 상급단체결정 투표에서는 조합원 63%가 민주노총을 선택했다.

박 위원장은 "한번 싸워 보자는 조합원들의 의지가 투표에서 확인됐다"고 평가했다. 조합원도 지속적으로 늘고 있다. 통합 전 옛 사회보험지부와 옛 직장노조로 조직된 조합원은 9천800여명이었다. 이달 초를 기준으로 노조 조합원은 1만600명을 웃돈다. 조직률은 86%다.

노조는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투쟁본부 계획에 따라 9월11일 파업에 돌입한다. 9월 이후 투쟁도 준비 중이다.

박 위원장에게 통합 이후 노조·조합원 분위기와 상급단체 가입계획을 물었다. 인터뷰는 23일 낮 서울 마포구 국민건강보험공단 노조회의실에서 이뤄졌다. 박 위원장은 2007년 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 초대지부장을 지냈다.

"노조 통합 반년, 화학적 결합 가능"

- 통합노조가 출범한 지 반년이 지나고 있다. 분위기는 어떤가.

"조합원들의 화학적 결합은 큰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 서로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굉장히 조심스러워한다. 서로 배려하는 거다. 상대 조직의 과거에 대해 비판을 자제하는 분위기가 조성돼 있다. 이런 분위기가 2년만 더 지속되면 완전한 통합 조직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집행부를 구성하면서 양측 출신을 고루 기용한 것도 조직융합의 밑거름이 됐다고 본다. 옛 조직에서 대략 절반씩 참여하고 있다."

- 올해 임금협상이 결렬됐는데.

"공단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3.8% 이상은 올릴 수 없다고 주장한다. 노조는 조합원들의 숙원인 차별임금 철폐를 위해 임금인상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노조가 통합되면서 조합원들의 기대감이 어느 때보다 높다. 공단이 임금인상 계획을 내놓지 않으면 노사 전면전이 불가피하다."

노조에 따르면 공단은 다른 공공기관보다 임금이 적은 축에 든다. 이를테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공단에서 지급하는 비용으로 운영된다. 그런데 심사평가원 임금수준이 공단보다 높다. 이 같은 격차가 발생한 원인은 200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공단 적자 문제가 불거지면서 같은해 임금이 동결됐다. 반면 다른 공공기관은 정부 가이드라인에 따라 5.6% 가량 인상됐다. 2005년 성과급을 거부한 것도 임금격차를 발생시킨 요인이 됐다. 박 위원장은 "한 번 발생한 격차가 십수 년이 지나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며 "통합노조가 임금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조합원들의 열망이 크다"고 말했다.

- 노조가 쟁의행위를 가결했다. 내부 현안뿐 아니라 임금피크제 저지계획도 밝혔는데.

"기획재정부의 2차 공공기관 정상화 대책을 깨려면 노정관계 틀에서 싸워야 한다. 단위 사업장 노조가 아무리 강해도 독자적으로는 해결할 수가 없다. 공공기관 문제는 노정관계 속에서 풀어야 하기 때문에 공동투쟁을 할 수밖에 없다.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투쟁본부 계획에 따라 9월11일 파업에 돌입할 것이다. 9월이 지나면 내부 투쟁도 전개해야 한다. 쟁의행위는 대내외적인 요구를 모두 쟁취하기 위한 조합원들의 선택이다."

"산별 대신 민주노총 직가입 추진"

- 조합원들이 정부 대책에 반대하는 파업에 대해 거부감을 표시하지는 않나.

"양대 노총을 포함해 우리 조합원들이 정부의 2차 정상화 대책의 실상을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전체 조합원을 대상으로 한 교육을 이미 끝냈다. 임금피크제·개별성과연봉제·퇴출제 도입이 어떤 문제가 있는지, 왜 반대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다. 조합원들이 역대 어느 노조 교육보다도 이번 정상화 대책에 대한 교육에 높은 관심을 보였다. 상급단체결정 투표에서도 이런 교육의 효과가 나타났다고 평가하고 있다."

노조는 지난 15일 조합원 총투표를 통해 민주노총을 상급단체로 결정했다. 재적 조합원 1만563명 가운데 9천651명(91.37%)이 투표에 참여했다.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놓고 선호도를 묻는 방식으로 진행한 투표에서 조합원 6천85명(63.05%)이 민주노총을 선택했다. 3천379명(35.01%)은 한국노총을 선호했다. 지난해 공공운수노조 사회보험지부와 공공연맹 국민건강보험공단직장노조는 공단노조로 통합을 하면서 조합원 60% 이상이 선택하는 상급단체에 가입하기로 합의한 바 있다.

- 상급단체 가입절차는 어떻게 진행되나.

"일단 중앙집행위원회에서 어떤 형태로 총연맹에 가입할 것인지 토론하고 결론을 내야 한다. 여기서 나온 결론을 다시 조합원총회에 부의한다. 현재 대다수 본부장들은 민주노총 직가입을 원한다. 산별연맹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해 3분의 2 이상 동의를 받아야 한다. 산별연맹에 들어가는 것에 거부감을 표시하는 조합원들도 적지 않다. 그래서 일단 민주노총 직가입을 추진해 보려고 한다. 직가입이 어렵다면 민주노총에 산별연맹 체제 혁신을 요구할 생각이다."

답변을 하는 박 위원장은 매우 신중했다.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손깍지를 끼며 자세를 고쳐 잡았다. 박 위원장은 특히 "민주노총 연맹 체제를 대산별·대연맹으로 재편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공공·일반·제조를 포함해 5개 이내 대산별로 민주노총을 재편하자는 주장이다. 그는 "조직이 난립하고 조합원 결속력이 떨어져 중앙 사업이 현장에서 실천되지 못하는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며 "조직을 재편해 변화를 모색해 보는 것도 좋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최근 박 위원장은 비슷한 생각을 가진 민주노총 현직 연맹 위원장과 의견을 주고받기도 했다.

"싸울 준비 돼 있다 … 취업규칙 일방개악 저지할 것"

- 쟁의행위·상급단체결정 투표 결과는 어떻게 평가하나.

"조합원들이 대단하다고 느꼈다. 파업에 거부감을 가지는 신규조합원이 전체의 30%나 되는데도 조합원의 85%가 찬성표를 던졌다. 상급단체결정 투표는 절묘한 결과가 나왔다. 옛 사회보험지부 활동가들은 60% 이상 득표가 가능할지 조마조마했다. 옛 직장노조 조합원이 3천200여명이었다. 이번 투표에서 조합원 3천379명이 한국노총을 선택하면서 옛 직장노조는 체면을 세우게 됐다. 양측이 모두 윈윈하는 결과가 나왔다. 투표 결과가 나온 뒤 내부 잡음이 말끔히 사라졌다."

- 양대 노총 공공부문노조 공동투쟁본부에서 노조에 거는 기대가 큰 것 같다.

"조합원들은 싸움을 각오하고 민주노총을 선택했다. 우리는 준비가 돼 있다. 9월11일 공동투쟁본부의 파업 결정이 나오기 전에 우리 노조는 8월 경고파업과 9월 10만명이 모이는 1박2일 투쟁을 공투본에 제안했다. 파업으로 임금이 다소 깎이더라도 공공부문 노동자들 생계에 큰 지장은 없다. 버틸 수 있는 조직, 큰 조직이 앞장서 싸워야 한다고 말했다. 조합원을 믿었기에 자신 있게 제안할 수 있었다."

- 이달 4일 공공·금융노동자 투쟁 결의대회에서 "선배 노동자로 후배들에게 미안하다"는 말했는데.

"군사독재 시절에도 노조가 말을 안 들으면 집행부를 감방에 보내거나 노조 와해 작업을 했다. 그러나 취업규칙을 노조 동의 없이 개악시키려 하지는 않았다. 노동운동을 30여년 하면서 조금은 나은 세상을 만들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군사독재에서도 하지 않던 말을 지금 관료들이 버젓이 하고 다닌다. 취업규칙을 정부·사용자 마음대로 개악시키려는 세상이 도래하는 것을 보며 노동운동 과거를 돌아봤다. 후배들에게 미안했다. 최근 노조 교육을 하면서 나이 든 조합원들에게 '우리가 정년퇴직하기 전에 이것만큼은 지키자. 후배에게 과제로 남겨 두지 말자'고 말했다. 제대로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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