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위기는 여러 가지 이유에서 찾을 수 있을 거다. 비단 무능한 야당만 욕할 문제만이 아니라고 본다. 한국 사회 전반에 말하자면 ‘야썽’이 심하게 약화된 것 자체를 인지해야 한다. 야성(wildness) 아니고, ‘야썽(opposition character)’ 말이다.

대학의 성격 변화와 대학생의 지위 변화에 주목하고 싶다. 일제 강점기부터 근래까지, 약 한 세기 동안 우리 사회에서 고등교육(higher education)을 받은 사람들은 엘리트로 취급받았다. 그들은 '많이 배운 자'로, 사회적 강자가 되는 길에 접어든, 잠재적 기득권층이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서민과 대중을 살피는 일종의 정신적인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사회적 책무를 암묵적으로 품기도 했다.

기억하는가. "대학의 존립 근거는 사천만 민중이다." 오랜만에 들어 보는 낯선 문장이다. 허나 이 땅에서 더 긴 대학과 대학인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 문장이 낯설어진 이 시대 자체가 어쩌면 새롭고 이상한 시대일 수 있다.

필자의 대학 시절만 해도 대학 교정에 소위 지랄탄이라고 불리는 최루탄과 몰로토프 칵테일(화염병)들이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했다. 거대한 정치적 구호를 담은 전단지를 뿌리고 도서관에서 몸을 던지거나, 교내 광장 한구석에서 분신을 기도하며 공익 지향적인 정치적 열망을 호소하고 국가와 기득권자들을 비판하는 학생 열사들의 모습도 대학의 일상에서 그리 낯설지 않았다.

그 시대 대학은 한마디로 ‘야썽’으로 충만했다. 학생운동은 한국 사회에서 가장 선도적으로 깨어 국가의 월권을 민감하게 견제하는 세력으로 맞서고 있었다. 때로는 노선투쟁과 극한의 이념화로 치달을지언정 공익적 가치 실현을 향한 정신으로 충만한 성난 젊음의 패기로 가득 찼지만 덜 영근 나라 사랑, 민중 사랑의 표현이었다고 그들의 몸짓을 낭만적으로 진단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학도가’를 불렀다면, 그 시대에는 ‘철의 노동자’나 ‘결전가’를 불렀을 뿐. 여하튼 멸사봉공의 정신으로 충만한, 사회적 가치 지향적인 청년 엘리트들의 얼과 행동이 담긴 공간이라는 면에서 대학의 성격은 일관되게 유지돼 온 거였다.

아팠던 그 시대를 놓고 반드시 이상적이고 정상적이었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다만 오늘날의 이 한없이 무력한 대학, 자본에 잠식된 대학, 합리화의 숫자주의라는 감옥에 갇힌 대학, 그리고 엘리트라고 불리기조차 불가능한, 노동시장의 높은 진입 장벽 아래에서 한없이 약해져 있는 그 공간 안과 주변 청년들의 모습은 더더욱 비정상이고 더욱더 문제다. 오늘날 청년실업이 본격화하면서 취업을 통한 사회진출,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에게 걸맞은 성격의 일자리 취득의 길이 바늘구멍만 남기고 봉쇄됐다. 이 시대 노동시장 진입 장벽 앞에서 소외된 청년세대의 넓은 범주에는 대부분이 대학진학률 80% 시대의 고등교육을 받은 젊은이들이다.

이제 고등교육 수혜자와 엘리트 간의 등식, 성나서 포효하고 행동하는 젊은 지성들의 공간으로서의 대학이라고 하는 인식은 우리에게 없다. 대학은 어느새 취업준비소이자 대기소, 취업실패자들의 일시 수용소가 돼 버렸다. 교수들도 제자들의 취업으로 그 역량을 평가받는 시대가 됐고, 마찬가지로 계량화된 실적주의 그늘에서 사회참여 기회가 차단당하는 시대가 됐다.

진리를 논하고 실천으로 실험해 가면서 때로는 사회를 향해 날 선 목소리를 뿜어 대는 장으로서의 대학 본연의 사회적 기능이 그립다. 그러한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대학 내부에서 사회적 각성과 자정을 향한 행동이 자발적으로 나와 주기를 기다리는 것은 외부자의 과욕일까.

적어도 집단적 응집력에 기초한 공익 지향적 실천의 기회를 모색하는 전통만 회복해도, 최소한 지금처럼 개개인으로 각개 격파돼 스펙주의 프레임에 갇혀 패배와 좌절을 반복하는 빈도는 줄어들지 않을까. 사회도 살리고 스스로도 구하는 묘안을 찾아내는 임무를 이 이상한 시대, 이상한 사회의 어색한 엘리트들에게 기대한다면 무리일까.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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