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동희 공인노무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상판결/ 대법원 2011두32898 유족보상금부지급처분취소 등 5건

1. 사건의 개요
최근 대법원에서 자살이 업무상재해 또는 공무상재해를 인정하면서 5건의 사건을 파기환송했다. 산재 사건에서 대법원의 파기환송 사건이 많지 않은 현실에 비춰 보면 최근 5건의 판결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모두 동일하게 자살의 업무(공무) 기인성이 쟁점이 된 사안이다. 이 중 3건은 일반 노동자의 업무상재해이며, 2건은 공무원의 공무상재해 사건이다. 법원은 자살의 업무 기인성 법리와 공무 기인성 법리를 동일하게 적용하기 때문에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 이러한 5건 판결의 1심 판결(항소심 판결은 대부분 특별한 사유를 제시하지 않고 기각판결을 했음)과 대법원 판결의 차이점, 접근법, 법리 차이 등을 분석한 이후 법원 판결의 문제점과 과제를 제시한다.

대상판결은 판결 시점 순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일단 대상판결 1은 소위 영어스트레스 자살 산재 사건(대법원 2015.1.15. 선고 2013두23461판결, 1심 서울행정법원 2013.3.21 선고 2011구합17462 판결)이다. 대상판결 2는 인수합병 뒤 권고사직 불안감 자살 사건(대법원 2015.1.15. 선고 2013두7230 판결, 1심 서울행정법원 2012.9.14 선고 2012구합14033 판결)이다. 대상판결 3은 공무원의 화상 치료 중 자살 사건(대법원 2015.1.29 선고 2013두16760 판결, 1심 서울행정법원 2012.10.26 선고 2011구합4411 판결)이다. 대상판결 4는 관리직(리더) 승진 이후 스트레스로 인한 자살 사건(대법원 2015.5.28 선고 2013두21328 판결, 1심 창원지방법원 2012.10.24 선고 2010구단2341 판결), 대상판결 5는 예비군 지역대장 자살 사건(대법원 2015.6.11 선고 2011두32898 판결, 1심 2011.6.2 선고 2010구합44580 판결)이다.

2. 대상 판결 분석의 시사점
가. 자살(자해행위)의 산재 인정기준
산업재해보상보험법 제37조제2항은 “근로자의 고의·자해행위나 범죄행위 또는 그것이 원인이 돼 발생한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은 업무상의 재해로 보지 아니한다. 다만 그 부상·질병·장해 또는 사망이 정상적인 인식능력 등이 뚜렷하게 저하된 상태에서 한 행위로 발생한 경우로서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사유가 있으면 업무상의 재해로 본다”고 규정한다. 이에 따라 산재법 시행령 제36조에서 자해행위(자살)가 업무상 재해가 될 수 있는 세 가지 사유를 제시하고 있다. 즉 “업무상의 사유로 발생한 정신질환으로 치료를 받았거나 받고 있는 사람이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업무상의 재해로 요양 중인 사람이 그 업무상의 재해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한 경우, 그 밖에 업무상의 사유로 인한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제1호의 사유에 해당되는지 여부다. 제2호의 경우 업무상재해로 요양 중 정신적 이상 상태 또는 정신질환이 발생해 자해행위를 한 경우다. (1호·2호의 경우 구법 당시 시행규칙에 규정된 바 있다.) 제3호의 경우 정신질환의 치료병력이 없더라도 전체적으로 보아 정신적 이상 상태에서 자해행위를 했다는 것이 의학적으로 인정되는 경우다. 제3호의 경우 2008년 법률 개정 당시 도입됐으며, 개정 이전에도 대법원에서는 수차례 정신 병력이 없는 경우에도 자살의 업무 기인성을 인정한 바 있다(대법원 2006.1.26 선고 2005두14325 판결, 대법원 2007.4.26 선고 2007두3442 판결 참조).

나. 대상판결의 1심 법원은 과도한 사회 평균인 기준을 적용하고 있다. 1심 법원의 업무(공무) 기인성을 부정하는 법리는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로 인해 1심 법원은 “그 자살이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보아 도저히 감수하거나 극복할 수 없을 정도의 업무상 스트레스와 그로 인한 우울증에 기인한 것이 아닌 한 상당인과관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대법원(2008.3.13 선고 2007두2029) 판결(가 판결)과 “당해 근로자가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는 사회 평균인의 입장에서 제반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것”이라는 대법원(2012.3.15 선고 2011두24644) 판결(나 판결)을 제시하고 있다.

대상판결 1의 1심 법원은 ‘가·나 판결’, 대상판결 2의 1심 법원은 ‘가 판결’, 대상판결 3의 1심 법원은 ‘가 판결’, 대상판결 4의 1심 법원은 ‘가·나 판결’, 대상판결 5의 1심 법원은 ‘가 판결’을 제시하고 있다. 결국 하급심 법원에서는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자살 사건의 업무(공무) 기인성을 판단하고 있다. 이에 반해 대법원은 파기환송의 논리로 대법원 2011두3944 판결(다 판결)을 제시하고 있다. 대상판결 1은 기준 판례를 지시하지 않지만 대상판결 2·3·4·5는 ‘다 판결’을 제시하고 있다.

다. 대법원의 잘못된 사회 평균인 기준설로 인해 하급심의 오류가 초래되고 있다. ‘다 판결’ 전에 대법원에서는 ‘나 판결’을 통해 “근로자가 자살한 경우에도 자살 원인이 된 우울증 등 정신질환이 업무에 기인한 것인지는 당해 근로자의 건강과 신체조건 등을 기준으로 판단하게 되나, 당해 근로자가 업무상 스트레스 등으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자살에 이를 수밖에 없었는지는 사회 평균인 입장에서 앞서 본 모든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당해 판결은 정신질환에 있어서는 본인 기준설을 제시하는 반면 자살은 결국 사회 평균인 입장을 내세우고 있다.

일반 질병이나 사고에서 근로자 본인 기준설(대법원 1991.9.10 선고 91누5433 판결, 대법원 2005.11.10 선고 2005두8009 판결 등 참조)은 대법원의 확립된 기준이다. 그러나 자살에 있어서 대법원은 엄격하게 사회 평균인 기준설을 제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법원은 업무 기인성의 인정범위가 넓은 공동원인설의 입장보다 엄격한 상대적 유력원인설의 입장에 있었다고 평가되거나 이를 혼용해 인과관계를 판단하는 것으로 분석되기도 했다.

자세히 살펴보면 대법원 ‘나 판결’의 문제는 중요한 논리적 모순이 있다. 즉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정신질환이 발생한 경우 당해 근로자 본인을 기준으로 하는 반면 이러한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질환으로 자살한 경우에는 사회 평균인 입장”으로 한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에는 이미 업무상 스트레스 인해 정신질환이 발생한 상태, 즉 업무기인성의 판단 이전에 ‘사실적 상태에서 비정상적 범주’다. 또는 ‘일반적 사회 평균인 상태’가 아니다. 이미 업무상 스트레스로 인해 정상 범주에 있지 아니한 자를 대상으로 ‘사회 평균인’ 입장을 적용하는 것 자체가 논리모순이다. 결국 ‘나 판결’은 법률적 타당성 이전에 사실적 측면에서 적용 불가능한 법리다.

라. 1심 법원은 ‘사회 평균인 기준설’ 적용으로 인해 업무가중성 및 발병경위, 자살경위 등에 대한 심리미진의 위법을 초래하고 있다.

1심 및 하급심은 사회 평균인 기준설에 의한 관점과 법적 논리에 근거해 당해 근로자 본인이 받는 스트레스를 과소평가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구체적 심리를 미진하거나 명백한 증거를 배척하는 경향이 나타난다. 즉 대상판결 1의 1심 법원은 의학적 감정 회신서에 반하는 논리를 제시하며, 망인의 수첩 기재내용을 간과한 심리미진의 위법을 초래하고 있다. 대상판결 2의 1심 법원은 구체적 진술 및 사실인정의 오류를 초래하고 있으며, 유서 작성을 정상적 인식능력 보유 근거로 판단했다. 대상판결 3의 1심 법원은 사고 이후 우울증 발생의 객관적 판단 근거인 의학적 감정회신 등을 배척했다. 대상판결 4의 1심 법원은 우울증이 유발된 경위에 대한 증언 및 각 진술서를 배척했다. 대상판결 5의 1심 법원은 업무변경으로 인한 업무량 및 업무시간의 증대, 의학 소견서 및 사실 조회서를 배척했다. 반면 대법원은 자살에 이르게 된 경위 및 동기, 우울증세의 발현, 우울증세의 악화 및 변화 등을 구체적 증거와 내용을 통해 원심의 심리미진 내역을 밝히고 있다.

3. 소결
대법원 판결은 미흡한 하급심의 심리미진 사항을 적극적으로 분석해 지적하고 있고, 본인 기준설 법리에 입각해 적극적인 심리를 했다. 그러나 대법원이 사실심 역할을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결국 문제는 대법원 스스로 이런 상황을 야기한 책임에 있다는 것이다. 즉 자살사건의 사회 평균인 기준설(가·나 판결)대 본인 기준설(다 판결)에서 대법원이 명확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아 하급심에서 혼동을 초래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전원합의체 판결이 필요한 시점이며, ‘나 판결’의 논리적 모순을 극복해 자살사건에 있어서도 ‘재해자 본인 기준설’이라는 업무상재해 대원칙을 확인해야 한다.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