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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 "대법원 판결 굴복 안 해 … 싸워서 공사 직원 인정받겠다"
▲ 김승하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

KTX 승무원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보여 준 대법원의 얼굴은 냉혹했다. 세월호 참사로 안전업무에 대한 중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사회적 관심으로 떠올랐지만 대법원은 이를 모른 체했다. 대법원은 올해 2월26일 KTX 승무원 오아무개씨 등 해고자 34명이 한국철도공사를 상대로 낸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재판부는 "승무원들이 안전과 무관한 업무를 했고 이례적인 상황에서만 안전업무를 했다"는 근거를 내세웠다.

공사 직접고용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2006년부터 시작한 이들의 복직 싸움은 대법원 판결로 끝나는 듯했다. 하지만 KTX 승무원들은 투쟁을 멈추지 않고 있다. 대법원 판결을 규탄하는 1인 시위·촛불시위를 진행 중이고, 이달 24일부터 시작되는 파기환송심 심리 준비도 본격화하고 있다.

2006년 조합원 370여명으로 출범한 철도노조 KTX열차승무지부는 이제 33명의 조합원만 자리를 지키고 있다. 당초 34명이었는데 대법원 판결 직후인 3월16일 조합원 한 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김승하(36·사진) 노조 KTX열차승무지부장은 "싸워서 복직하겠다"며 "남은 33명 조합원들의 공통된 희망"이라고 말했다.

김 지부장에게 대법원 판결에 대한 입장과 조합원 반응, 앞으로 진행할 복직투쟁에 대해 들었다. 인터뷰는 21일 오전 서울 용산구 철도노조 회의실에서 이뤄졌다.

한편 철도노조는 22일 오전 서울역광장에서 'KTX 승무원 직접고용과 시민안전 외주화 중단 촉구 시민 3천명 선언'을 발표한다.

“파기환송심 재판부에 기대 없다 … 싸워서 복직할 것”

- 24일부터 서울고법에서 파기환송심 심리가 시작된다.

“대법원에서 결론을 내지 않은 쟁점이 있다. 서울고법은 충분한 심리를 진행한 뒤 판결을 내려야 한다. 이를테면 대법원은 불법파견 문제에 대해서는 이렇다 할 판단을 내리지 않았다. 파기환송심은 이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뤄야 한다. 물론 대법원이 결론을 내린 상황이어서 극적인 반전은 없을 것이다.”

- 사법부에 기대가 없는 듯한데.

“법적으로 싸울 수 있는 여지가 없다. 어이없기는 하지만 이게 우리나라 현실 아닌가. 사법부가 노동을 바라보는 편향적 시각은 KTX 승무원 사건뿐만 아니라 이미 수차례 확인된 바 있다. 다른 노동사건 재판 결과를 쭉 지켜봐서 그런데 우리 재판 결과를 받고도 무덤덤했다. 싸워서 복직을 쟁취하는 수밖에 없다.”

- 대법원 패소 판결 직후 조합원들의 반응은 어땠나.

“아직도 현실감이 없다. 1·2심 승소 때는 우리가 이겼다는 감격이 있었는데 지금은 담담하다. 파기환송심 결과에 따라 지부 분위기가 급격히 변할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 패소하면 우리가 공사에 반환해야 할 돈이 1인당 1억원 정도다. 파기환송심이 끝나면 철도공사가 정식 청구를 할 것이다. 청구서가 조합원 각 가정에 날아가기 시작하면 우리가 졌다는 게 실감날 것 같다. 아직은 졌다는 현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분위기가 있다.”



2008년 12월 서울중앙지법은 공사와 KTX 여승무원 사이의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공사에 월 180만원을 KTX 승무원에게 지급하라고 명령했다. 2012년 12월 공사가 가처분 소송을 통해 임금지급 중단 결정을 받을 때까지 48개월간 지급됐다. 파기환송심에서 패소하면 이들은 4년간 받은 임금 9천여만원을 토해 내야 한다. 소송비용까지 포함하면 1억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옆에 서 있는 친구가 먼 길 가는 원동력”

- 10여년 동안 이어진 싸움을 계속할 수 있었던 지부의 힘 혹은 원동력은 무엇인가.

“돌이켜 보면 우리가 순진했구나 싶다. 당시는 우리가 철도공사 직원이라는 게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라서, 이 싸움에서 질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철도노조가 적극 도와줬고, 우리가 옳다고 지지해 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내 옆에 친구가 서 있기 때문이다.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동료가 있어 자리를 지킬 수 있었다. 포기하지 않는 친구가 한 명이라도 있으면 등 돌리고 떠날 수 없는 성격을 가진 이들이 지부를 지키고 있다. 그래서 지부 조합원들 관계가 특별한 것 같다.”

- 근로자지위확인 소송에 참여한 조합원들로 지부가 구성돼 있다. 어떻게 살고 있나.

“가정을 이뤄 아이를 키우는 사람이 가장 많다. 대부분 두세 살 아기 엄마들이다. 직장에 다니거나 프리랜서로 일하는 친구들도 적지 않다. 사실 KTX 승무원은 우리 사회에서 주홍글씨로 낙인찍혀 있다. 이력서를 쓸 때마다 승무원 경력을 쓸지 말지를 두고 고민한다. 투쟁했던 20대의 3년을 이력서에서 쓰고 나면 면접 때 질문이 빠지지 않고 나온다. 여기 와서도 그때처럼 노조 만들고 싸울 거냐고. 그러다 보니 조그마한 회사에 다니거나 강사 같은 프리랜서 일을 하게 되는 거다.”

- 34명이던 조합원이 최근 33명으로 줄었다.

“그 친구는 부산에서 일하던 승무원이었다. 부산 승무원 중 조합원으로 남아 있는 친구가 10명 정도 된다. 34명 중에도 소수이다 보니 서로 돈독하고 각별하다. 이 친구의 자살로 부산 조합원들의 충격이 굉장히 크다. 많이 힘들어하고 있다. 이달 10일 부산역광장에서 촛불집회를 개최한 이유다.”

지부 조합원이던 박아무개씨는 올해 3월16일 충남 아산의 한 아파트에서 뛰어내렸다. 대법원 판결이 나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서른다섯 살이던 그에게는 세 살 여자아이가 있었다. 소식은 지부에 늦게 전해졌다. 친부모가 사실을 알리기 꺼려했기 때문이다.

지부는 이 사실을 한동안 외부에 알리지 않았다.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언론에도 보도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김 지부장은 "가족들이 노조를 미워하고 자신의 딸이 언급되는 것조차 싫어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합원 중에서도 강하고 밝은 친구였는데 그런 선택을 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고 안타까워했다. 지부는 대법원 판결이 영향을 준 것으로 보고 있다.

"가족·시댁과 불화도 없었다고 하는데 대법원 판결 말고는 그 이유를 찾을 수가 없었다"는 게 김 지부장의 설명이다. 박씨 이야기를 하던 김 지부장은 인터뷰 중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 조합원들의 충격이 컸을 것 같다.

“조합원들이 심리상담을 받았다. 다행히 심각한 스트레스나 우울증을 호소하는 조합원은 없었다. 하지만 앞으로가 걱정이다. 파기환송심이 끝나고 결과를 받아들면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모르겠다. 조합원들이 대부분 재정적으로 넉넉하지 않다. 여기에 1억원의 빚이 더해지는 것이다.”

“대법원 판결로 안전업무 외주화 길 열려 … 공사 직원 인정될 때까지 싸우겠다”

- 철도노조가 공사에 KTX 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교섭을 요구했지만 진척이 없다.

“대법원 판결 이후 공사 입장이 꼿꼿해졌다. 법대로 하자고 하더라. 대법원은 우리가 공사 직원이 아니라고 했다. 안전과는 무관한 업무를 했고 이례적인 상황에서만 안전업무를 했다는 주장이다. 이례적인 상황에서만 안전업무를 한다는 설명을 갖다 붙였는데, 앞으로 안전업무 전반을 외주화할 수 있는 길을 터준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간접고용 문제가 논란일 때 공사는 승무원과 안전업무는 무관하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최근 승무원 업무를 공사로부터 도급받은 코레일관광개발은 승무원을 대상으로 대규모 안전교육을 실시했다. 공사가 얼굴에 철판 깔고 안전업무 외주화를 본격화하려는 것이다.”

- 언제 이 싸움이 끝날까.

“광주민중항쟁 피해자들이 수십 년이 지나 유공자로 인정받는 사례가 남의 일 같지 않다. 나중에 정년퇴직할 나이가 돼서 복직하면 어쩌나 싶다.(웃음) 그렇게 되면 오기로라도 승무복 입고 서비스하러 나갈 거다. 공사 직원으로 인정받고 복직해서 일터로 돌아갈 것이다. 우리 모두의 바람이다.”

제정남  jjn@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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