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0일 국회도서관 소회의실에서 열린 한국노동정치연구소 창립보고대회에서 조준호 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사진=정기훈 기자)

“노조조직률이 10%다. 일하는 사람의 90%는 노조 밖에 있다. 소외된 노동자·민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조직노동자를 위한 길이다. 90% 노동자 권리가 확대되고 삶의 질이 향상되는 노동정치가 요구된다.”

지난 10일 한국노동정치연구소(소장 조준호)가 출범했다. 연구소는 “더 이상 노동 없는 대리정치가 아닌 노동자 스스로 정치에 나서야 한다”고 노동정치 실현을 기치로 내걸었다. <매일노동뉴스>가 지난 15일 오후 서울 사당동 한 커피숍에서 조준호(57·사진) 한국노동정치연구소장을 만났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조 소장은 민주노동당 정책당대회 의장·통합진보당 공동대표·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진상조사위원장·진보정의당 공동대표를 역임한 바 있다.

▲ 연윤정기자
“노동 없는 정치 더 이상 안 돼”

- 한국노동정치연구소 창립 배경은.

“노동자 정치세력화 좌절 뒤 노동자는 절박한데 정치에는 노동이 없다. 정치인은 말로는 노동자를 위해 정치한다고 하지만 고민 없는 선언적 수사에 불과하다. 대리정치에는 한계가 있다. 노동자 스스로 노동 없는 정치를 극복해야 한다. 지난해 말부터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과 논의했다.”

민주노총 출신 노동정치인은 권영길·단병호·홍희덕 전 민주노동당 의원과 심상정·정진후 정의당 의원 등이 있다. 조 소장은 노동정치의 전통은 단절되거나 축소됐다고 진단한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으로서 진보정당 위기 때마다 구원투수로 나섰던 조 소장으로서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이런 고민의 결과가 한국노동정치연구소다.

“노동자 스스로 자신의 문제를 정치 의제화하고 확장하는 것이 필요한데 대리정치 구조에서는 쉽지 않다. 지금은 필요 이상으로 법조인 출신 정치인이 많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노동자를 대표하는 정치인은 부족하다. 연구소는 노동정치 의제 발굴과 대안을 제시하고, 스스로 정치할 수 있는 노동자 후보 발굴을 목표로 한다.”

- 연구소에는 누가 참여하고 있나.

“노동정치가 필요하다고 동의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다. 옛 민주노동당 출신도 있고 정의당 현직 의원도 함께했다. 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공공운수노조·사무금융노련·전교조 등 산별노조 출신 인사들이 의기투합을 했다. 한국노총 출신 인사들도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앞으로 저변을 확대하는 데 노력할 것이다.”

연구소에는 전·현직 진보정치인과 노동운동가들이 고루 참여했다. 고문은 권영길·천영세 전 민주노동당 대표, 이사장은 홍희덕 전 민주노동당 의원이 맡았다. 이사에는 정진후 정의당 의원·김태일 노동정치연대포럼 대표·박승흡 전 민주노동당 최고위원·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박정곤 전 금속노조 기아차지부 부지부장·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장·김익태 변호사가 이름을 올렸다. 감사는 서동기 기아차 해고자가 맡는다.

“노동정치 반성으로부터 다시 시작해야”

- 노동정치는 실패한 것인가.

“실패라면 단절을 의미한다. 그것은 아니다. ‘깊은 침체’라고 규정할 수 있다. 이른바 노동정치 시즌2다. 단절이 아닌 새로운 노동정치로의 도약을 하자는 것이다. 기존 노동운동이 가진 제한성과 편협성, 관성적 사고를 넘어서는 것이다. 노동시장에는 조직노동자를 넘어 비정규직·특수고용직 등 광범위한 소외 노동자가 있다. 그 심각성은 사회적 현상으로 나타난다. 우리 노동운동이 여기에 관심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운동을 해 왔는가라고 평가하면 박한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미흡’했다. 민주노동당이 노동시장 문제를 의제화하고 노동정책에 반영했는가 역시 마찬가지다. 과거로부터 단절이 아니라 반성으로부터 새롭게 시작할 때다. 이것이 노동정치,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시작이다.”

- 노동운동의 편협성과 관성적 사고란 뭔가.

“시선이 내부에 국한됐다. 조직노동자 중심으로 사고했다. 조성주 정의당 대표선거 후보가 ‘노동운동 밖의 노동’을 말했는데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노동운동 내 정파 역시 내부로 시선을 좁혔다. 처음엔 노동자·민중이 주인 되는 사회를 목표로 시작했지만 어느새 정파가 완고한 내적 존재가 되면서 전체 노동운동이 왜곡됐다. 나쁜 관성이다. 조직노동자를 넘어 노동운동 밖의 노동으로 확장하는 운동으로 나아 갔어야 했다.”

조 소장은 노동운동의 한계가 조직노동자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고 진단한다. 조 소장은 “노동자 현실은 무한퇴행이라는 악순환 속에서 질곡을 거듭하고 있다”며 “노동시장 불안정·사회 구조적 문제는 대공장 노동자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왜곡된 현상도 발생했다”고 밝혔다.

노동정치는 이를 바로잡는 역할을 해야 한다. 그는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을 위한 노동정치와 노동운동이 활성화돼야 한다”며 “1차 분배가 제대로 진행돼 저임금 노동을 극복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통합진보당 해산으로 진보정치가 큰 타격을 입었다.

“박근혜 정권은 멀쩡한 정당을 해산하는 비상식적인 짓도 서슴지 않았다. 헌법재판소는 박근혜 정권의 하수인으로 전락했다. 통합진보당이 비례대표 경선 파행과 분당을 겪지 않았더라면 박근혜 정권도 그런 엄두를 내기 어려웠다. 우리 역시 충분히 막아낼 수 있었다. 되돌아보면 우리가 통합진보당을 엄호하지 못한 조건을 자초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그는 2012년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문제가 터졌을 때 진상조사위원장을 맡았다. 조 소장은 “조사 결과 총체적 부실·부정이었다”며 “당시 정부가 개입할 여지없이 이를 인정하고 투명하게 처리했더라면 어땠을까 생각한다”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노동정치 시즌2 연구소가 촉매제 될 것”

지난해 말 새로운 정치세력 건설을 촉구하는 ‘국민모임’이 출범했다. 국민모임과 정의당·노동정치연대 3자가 진보정치 통합 논의를 벌이고 있다.

“정의당 당원으로서 나는 통합 논의를 긍정적으로 본다. (진보정치 통합 움직임이) 노동의제와 소외계층을 위한 새로운 진보정치를 위한 신호가 될 수 있다. 얼마 전 공공부문 노조간부와 진보적 교수들이 지지선언을 했다. 이런 흐름이 모인다면 진보정치는 새로운 돌파구를 열 수 있다.”

- 진보정치 시즌2를 위한 연구소의 역할은.

“노동정치는 노동정치인이 나와야 가능하다. 아무리 좋은 정책이 있어도 국회의사당에 들어가지 못하면 실현하기가 어렵다. 그러니 노동자들이 스스로 정치인이 돼 출마해야 한다. 나 역시 다음 총선에 출마하려 한다. 정진후 의원도 지역구 출마를 계획하고 있다. 연구소는 노동정치인을 발굴하고 노동의제를 쟁점화하고 싸우는 촉매제가 될 것이다.”

그는 시즌2의 진보정당은 노동자·민중의 지지를 받지만 종전 민주노동당과는 달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타적 지지 역시 지금 시기엔 맞지 않는다고 했다.

“과거 회귀는 답이 아니다. 배타적 지지가 필요한 시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가능하지도 않고 맞지도 않다. 새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을 계승하면서 통합진보당의 좌절을 딛고 다수 노동자와 민중의 강력한 지지를 받는 단계로 넘어가야 한다. 그리고 누군가 이를 위해 나서야 한다. 연구소가 그 역할을 자임하려 한다.”

- 내년 총선 출마 의사를 밝혔다.

“군산이 고향이다. 군산에는 대우자동차·현대중공업·OCI가 들어선 공단이 있다. 그곳에서 진보정치 모범을 만들고 싶다. 민주노동당이 가능했던 것은 권영길 의원이 대선과 총선에서 지속적인 출마로 동력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런 촉매제가 되고 싶다. 노동자 후보들이 보다 많이 나와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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